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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크게, 더 길게, 더 높이' 만들면 관광객이 우르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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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크게, 더 길게, 더 높이' 만들면 관광객이 우르르?

입력
2023.10.01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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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 각 지자체 랜드마크 조성 잇따라
'세계 최대' 대관람차, 성경책 등 추진
화제성만 부각… 애물단지 전락 우려
"도시 문화·정체성 담아야 지속 가능"

서울시가 마포구 상암동에 조성 예정인 대관람차 '서울링' 조감도. 서울시 제공

서울시가 마포구 상암동에 조성 예정인 대관람차 '서울링' 조감도. 서울시 제공

지방자치단체들이 잇따라 랜드마크 조성에 나서고 있다. 관광객 유치를 위해서라지만 최대, 최장, 최고 등 타이틀 경쟁에 치우친 경우도 많아 과시용 치적 사업에 그치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1일 전국 각 지자체 등에 따르면 서울시는 2027년 12월 완공을 목표로 상암동에 대관람차 영국 런던아이와 유사한 서울링을 건설한다. 사업비는 4,000억 원 수준이다. 기존 대관람차와 달리 바큇살이 없는 고리 형태로, 높이는 180m에 달한다. 아랍에미리트연합의 아인 두바이에 이어 세계 2위 규모이자, 살이 없는 고리형 디자인 기준으로는 세계 최대다. 서울시는 서울링으로 연간 350만 명 이상의 관광수요가 발생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경북 경주시는 신라시대 화랑들의 훈련장이었던 황성공원에 내년 3월까지 대형 태극기 게양대를 설치한다. 호국정신을 기리고 관광자원도 확보하겠다는 취지다. 태극기 게양대 높이는 신라왕 56명을 기념하는 뜻에서 56m로 정했다. 아파트 22층 높이와 맞먹는다. 게양대에는 가로 10m, 세로 8m 크기의 태극기가 내걸린다. 사업비는 6억5,000만 원이다.

태권도 성지화를 외치고 있는 전북 무주군은 70억 원을 들여 12m 높이의 태권V 로봇을 만들고 있다. 태권V 로봇은 2025년 개장하는 태권브이랜드에 설치된다. 당초 무주군은 무주읍 향로산 정상에 33m 높이의 로봇을 만들 예정이었으나 환경파괴 등 논란이 일자 장소를 옮기고 크기를 줄이는 대신 움직이는 로봇을 제작하기로 했다. 현재 공정률은 80%로, 내년 상반기 완성된다.

울산시는 울주군 언양읍에 있는 천주교 성지 살티공소에 세계 최대 크기의 성경책을 제작해 전시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살티공소는 천주교 박해시기에 순교한 김영제(베드로ㆍ1827~1876)의 묘가 있는 공소(본당보다 작은 단위의 천주교회)로 천주교 대표 성지다. 앞서 울산시는 지난 6월 250억 원을 들여 울주군 언양읍 일원에 높이 40m 규모 초대형 기업인 흉상 2개를 건립하려다 시민 반발에 부딪쳐 백지화하기도 했다. 김두겸 울산시장은 “타 지역과 똑같이 해선 관광객을 유인할 수 없다”며 “세계 최초ㆍ최대 등 ‘일류’의 결과물을 내놓으면, 전 세계 사람들이 찾아오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울산시는 울주군 언양읍에 있는 천주교 성지 살티공소에 전시관을 건립하고, 세계 최대 크기의 성경책을 제작·전시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울산시는 울주군 언양읍에 있는 천주교 성지 살티공소에 전시관을 건립하고, 세계 최대 크기의 성경책을 제작·전시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잘 만든 랜드마크는 도시의 인지도를 높이고, 지역 경제를 활성화시킨다. 그러나 화려한 외관에만 치중해 예산만 낭비하고 애물단지로 전락한 사례도 적잖다. 16년째 방치되고 있는 충북 괴산군의 초대형 가마솥이 대표적이다. 괴산군은 2005년 군민 성금 등 5억1,500만 원을 모아 둘레 17.85m, 지름 5.68m, 무게 43.5t에 달하는 무쇠 솥을 제작했다. 기네스북 등재를 위해 만들었지만 호주의 더 큰 질그릇에 밀려 등재가 무산됐다. 당시 화합 차원에서 “군민 4만 명이 한솥밥을 먹겠다”고 호언했지만 이마저도 솥 바닥이 두꺼워 실현하지 못했다. 8월에는 충북도가 가마솥 활용방안을 찾는 대국민 공모전까지 열었지만 적용 여부는 불투명하다. 충북도 관계자는 “9월 말에 공모전 결과를 괴산군에 전달했다”며 “예산이 필요하거나 장기 검토를 거쳐야 하는 아이디어도 많아 실행 여부는 알 수 없다”고 답했다.

무게 43t이 넘는 충북 괴산 가마솥. 기중기로 솥뚜껑을 여닫아야 하는 초대형 무쇠 솥이다. 괴산군 제공

무게 43t이 넘는 충북 괴산 가마솥. 기중기로 솥뚜껑을 여닫아야 하는 초대형 무쇠 솥이다. 괴산군 제공

전문가들은 랜드마크의 기본은 화제성이 아닌 지속성에 있다고 입을 모은다. 무조건 크고, 길고, 높은 것이 답은 아니라는 얘기다. 실제 덴마크 동화작가 안데르센의 ‘인어공주’에서 영감을 얻어 1913년 수도 코펜하겐에 만들어진 인어공주상은 크기가 80cm에 불과하지만 100년 넘게 세계적인 랜드마크로 손꼽힌다. 김재호 인하공전 관광경영학과 교수는 “성공한 랜드마크는 하나같이 그 도시의 문화나 정체성과 이어진다는 공통점이 있다”며 “도시 브랜드 위원회 등 전문적인 심의기관이나 객관적인 평가 지표를 마련해 계획 단계에서부터 면밀한 검토가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울산= 박은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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