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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00년... 백두대간마저 숨죽인 '살아있는 전설' 속으로

입력
2023.09.27 04:30
2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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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선 두위봉 주목과 영월 솔고개 소나무

편집자주

느린 만큼 보이는 사람, 마을, 자연. 매주 수요일 여행 감성을 자극하는 풍경을 찾아갑니다.


정선 두위봉 능선 부근에 뿌리 내린 국내 최장수 주목. 30m 간격으로 자리 잡은 세 그루 중 가장 아래 나무가 가장 곧은 수형을 유지하고 있다.

정선 두위봉 능선 부근에 뿌리 내린 국내 최장수 주목. 30m 간격으로 자리 잡은 세 그루 중 가장 아래 나무가 가장 곧은 수형을 유지하고 있다.

오래된 나무는 자체로 경이롭다. 제천에서 고속도로를 빠져나와 태백으로 이어지는 왕복 4차선 국도로 접어들면 마음 바쁜 운전자가 많아 보인다. 상당수 차량의 목적지는 카지노의 도시 정선 사북읍이다. 그러나 여행자에게 이 길은 스쳐 지나기 아깝다. 영월읍을 통과하면서부터 좌우로 솟은 웅장한 산세가 드라이브의 재미를 더한다. 힘들게 찾아가야 볼 풍광을 차 안에서 편안하게 감상할 수 있는 길이다. 한때 대한민국 산업발전을 이끌었던 탄광지대는 이제 강원도의 대표 휴양지가 됐다. 가을이면 억새가 하얗게 뒤덮이는 민둥산, 고원 휴양지 하이원리조트, 해발 1,330m 만항재에서 이어지는 운탄고도까지 깊어가는 가을을 만끽할 수 있는 여행지다. 국내에서 가장 나이가 많은 1,400년 된 주목도 이 산중에 숨어 있다. 아직은 찾는 사람이 많지 않은 두위봉(1,466m) 자락이다.


1400년을 산다는 것은...

두위봉 주목까지 가는 등산로는 사북4리 도사곡자연휴양림에서 시작된다. 사북읍은 동원탄좌로 기억되는 도시다. 동원탄좌 사북광업소는 1962년 개광해 2004년 폐광에 이르기까지 40년 넘게 산업화 시기 대한민국의 성장을 견인했다. 1980년대에는 탄광노동자만 5,000여 명에 달해 동양 최대 규모의 석탄 생산지로 성장했다. 농경지를 찾아보기 힘든 산골마을 사북을 읍으로 승격시킨 주역이기도 했다.

광산이 문을 닫은 지 어언 20년, 사북은 또 다른 의미에서 황금을 꿈꾸는 도시이자 고원 휴양지로 자리 잡았다. 도사곡마을은 사북에서도 후미진 읍내 서쪽 골짜기에 있다. 함백산 자락에서 발원한 지장천 물줄기가 서북쪽으로 흐르는 곳이다. 도사가 탄생할 만하다고 해 도사골로 부르기도 했다.

도사곡자연휴양림 입구의 '탄전기념탑'. 사북의 전성기를 회고하는 조형물이다.

도사곡자연휴양림 입구의 '탄전기념탑'. 사북의 전성기를 회고하는 조형물이다.


두위봉 주목으로 가는 등산로가 시작되는 도사곡자연휴양림.

두위봉 주목으로 가는 등산로가 시작되는 도사곡자연휴양림.

탄광 이전 아픈 역사도 깃들어 있다. 1908년 의병장 이강년 휘하의 부대가 대오를 재정비하던 중 일본군의 습격을 받아 80여 명이 장렬하게 전사한 격전지였다. 1986년 마을 입구에 당시 지역 의병장이던 김시중 전적비를 건립했다는데 온라인 지도가 잘못됐는지 찾을 수 없었다. 마을에는 40여 년 된 주공아파트만 탄광 도시의 흔적으로 남아 있다.

도사곡자연휴양림은 아파트 바로 옆이다. 휴양림 숙소와 야영시설이 작은 물줄기 좌우에 자리 잡고 있다. 등산로는 찻길이 끝나는 휴양림 꼭대기 주차장에서 시작된다. 처음 완만한 흙길이던 등산로는 곧장 돌길로 변하고 경사도 조금씩 가팔라진다. 주목이 뿌리 내린 곳까지는 약 3.2km, 해발 780m 부근에서 1,200m까지 고도를 높이는 동안 단 한 번의 평지도 없이 꾸준히 오르막이다.

대신 울창한 숲과 맑은 물소리가 계곡을 가득 메운다. 인공 조림 없이 전체가 천연 원시림이다. 군데군데 군락을 이룬 사스래나무와 거제수나무가 눈길을 잡는다. 순백의 자작나무와 달리 종잇장처럼 얇게 벗겨지는 껍질에 약간 붉은빛이 감돈다. 등산로 주변으로 흐르는 계곡물은 때로 넓게 퍼져 늪지대를 형성한다. 바윗돌이며 주변에 고사한 나무에는 초록 이끼가 덮여 신비로움을 더한다. 어둑한 숲에 야생화는 많이 보이지 않는다. 졸졸 흐르는 물가에 푸른빛 투구꽃이 듬성듬성 피어 있다.

두위봉 주목까지 가는 등산로에는 자작나무를 닮은 사스래나무가 군데군데 자라고 있다.

두위봉 주목까지 가는 등산로에는 자작나무를 닮은 사스래나무가 군데군데 자라고 있다.


두위봉 주목으로 가는 등산로에 투구꽃이 곱게 피었다.

두위봉 주목으로 가는 등산로에 투구꽃이 곱게 피었다.


두위봉은 아직 등산객이 많지 않은 산이다. 주목으로 가는 등산로는 원시림 그대로다.

두위봉은 아직 등산객이 많지 않은 산이다. 주목으로 가는 등산로는 원시림 그대로다.


두위봉 주목으로 가는 등산로 주변에 회나무가 빨간 열매를 매달고 있다.

두위봉 주목으로 가는 등산로 주변에 회나무가 빨간 열매를 매달고 있다.


길 중간 두 곳에 샘터가 있다. 퐁퐁 솟아나는 샘물은 아니지만 차고 달다. 갈증을 해소하기에 부족함이 없다. 주변에 벤치까지 놓였으니 잠시 숨을 고르기에 좋은 쉼터다. 두 번째 샘터를 지나 조금 더 가면 느닷없이 등산로를 자르고 대로가 나타난다. 산림관리를 위한 비포장 임도인데 이렇게 넓을 필요가 있을까 싶을 정도다. 잘려 나간 산허리가 깊은 흉터자국처럼 이어진다.

임도를 가로질러 이어지는 등산로는 폭이 한결 좁아지고 경사도 심해진다. 그럼에도 울창한 원시림의 면모는 한층 돋보인다. 오솔길처럼 이어진 돌계단 아래로 물 흐르는 소리가 들린다. 구들장 위를 걷는 듯 보이지 않는 물소리가 그윽하다.

두위봉 주목 서식지 바로 아래에 넓은 임도가 산허리를 가르고 있다.

두위봉 주목 서식지 바로 아래에 넓은 임도가 산허리를 가르고 있다.


두위봉 주목으로 가는 등산로 주변에 맑은 계곡물이 크고 작은 폭포를 이루고 있다.

두위봉 주목으로 가는 등산로 주변에 맑은 계곡물이 크고 작은 폭포를 이루고 있다.


두위봉 주목으로 가는 등산로 돌에 이끼가 잔뜩 끼어 있다.

두위봉 주목으로 가는 등산로 돌에 이끼가 잔뜩 끼어 있다.


그렇게 약 500m를 걸으면 드디어 1,400년 주목과 마주한다. 두위봉 능선 동북 경사면에 세 그루가 약 30m 간격으로 뿌리 내렸다. 주목은 워낙 천천히 자라기 때문에 나이에 비해 키나 굵기가 다른 수종보다 작은 편이다. 첫인상이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이유다.

제일 아래와 위쪽 주목은 단단한 원줄기에 원뿔 모양의 늠름한 자태로, 가운데 주목은 아랫부분에서 두세 가지로 갈라져 서로 호위하듯 하늘로 치솟았다. 일부분은 속이 훤히 드러났음에도 서로 의지하며 곧은 수형을 유지하고 있다. 나선형으로 뒤틀리며 자란 나무는 키 17m, 가슴높이 둘레 4.36m, 직경 1.39m로 세 그루 중에서 가장 크다. 볼수록 경이롭고 강인한 생명력이 느껴진다.

세 그루 주목은 2002년 ‘정선두위봉주목’이라는 이름으로 천연기념물로 지정됐다. 수령 1,200~1,400년으로 추정되는 노거수로 남한에서 가장 장수하고 있는 주목이다. 1973년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소백산 정상의 주목 군락이 수령 200∼500년 정도임을 감안하면 얼마나 큰 어른인지 짐작할 수 있다. 흔히 ‘살아 천 년 죽어서 천 년’이라 하는데 두위봉 주목은 살아서만 천 년을 넘겼다.

두위봉 주목 세 그루 중 가운데 나무. 밑동 심재가 비었지만 3~4가지가 뒤틀리며 하늘로 곧게 자랐다.

두위봉 주목 세 그루 중 가운데 나무. 밑동 심재가 비었지만 3~4가지가 뒤틀리며 하늘로 곧게 자랐다.


두위봉 주목 세 그루 중 가운데 나무. 밑동 심재가 비었지만 3~4가지가 뒤틀리며 하늘로 곧게 자랐다.

두위봉 주목 세 그루 중 가운데 나무. 밑동 심재가 비었지만 3~4가지가 뒤틀리며 하늘로 곧게 자랐다.


두위봉 주목 뒤편으로 백두대간의 웅장한 산세가 펼쳐진다.

두위봉 주목 뒤편으로 백두대간의 웅장한 산세가 펼쳐진다.


정선 두위봉 능선 부근에 뿌리 내린 국내 최장수 주목. 30m 간격으로 자리 잡은 세 그루 중 가장 아래 나무가 가장 곧은 수형을 유지하고 있다.

정선 두위봉 능선 부근에 뿌리 내린 국내 최장수 주목. 30m 간격으로 자리 잡은 세 그루 중 가장 아래 나무가 가장 곧은 수형을 유지하고 있다.


주목은 껍데기가 붉은 빛깔을 띠어 함부로 대할 수 없는 신성한 나무로 대접받는다. 두위봉 주목이 지금까지 벌채되지 않고 살아남아 있을 수 있었던 건 이런 이유보다 온전히 사람의 접근이 어려운 높고 깊은 산속에서 자라고 있기 때문이다. 나무가 발견된 것도 1990년이었다. 이만 한 나무에 그럴듯한 전설 하나 전해지지 않는 이유다. 시답잖은 이야기가 필요 없는, 존재 자체가 전설이자 역사다. 곧게 펴진 가지 아래로 멀리 백두대간 산줄기와 산골짜기 마을이 아른거린다. 오른쪽 끝자락으로는 매봉산 풍력발전단지 바람개비가 성냥개비처럼 보인다. 노거수의 위용이면 세상이 발아래다.

‘소나무’ 하면 떠오르는 바로 그 모습

두위봉 남쪽 자락은 영월군 산솔면이다. 상동읍과 하동면(현 김삿갓면) 사이에 위치해 중동면이라 불렸던 곳이다. 단순한 방위 개념을 담은 지명을 2021년 산솔면으로 변경한 데에는 소나무 한 그루가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산솔면에서 상동읍으로 이어지는 31번 국도를 따라가다 보면 도로 왼편 언덕에 잘생긴 소나무 한 그루가 단번에 눈길을 잡는다. 소나무에 대한 애정이 유달리 강한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머릿속에 떠올리는 전형적인 모습이다. 일정한 높이에서 갈라진 여러 가지는 휘어지면서도 강한 힘이 느껴지고, 균형을 잃지 않은 모양새다. 300년가량 된 이 명품 소나무는 그래서 오래전 담뱃값 모델로도 활용됐고 제약회사 로고로도 쓰였다. 소나무가 위치한 고갯길과 마을 이름이 ‘솔고개(松峴)’인 것도 모두 이 나무에서 비롯됐다.

영월 산솔면의 솔고개 소나무. 머릿속에 떠올리는 전형적인 모습이어서 단박에 눈길을 끈다.

영월 산솔면의 솔고개 소나무. 머릿속에 떠올리는 전형적인 모습이어서 단박에 눈길을 끈다.



수령 300년가량 된 영월 솔고개 소나무. 겉으로 보이는 수형뿐만 아니라 속 가지도 우아하면서 강인하다.

수령 300년가량 된 영월 솔고개 소나무. 겉으로 보이는 수형뿐만 아니라 속 가지도 우아하면서 강인하다.


솔고개 소나무 아래 도로변에 수달 조형물이 세워져 있다. 바로 아래 옥동천이 청정 1급수라는 자랑이다.

솔고개 소나무 아래 도로변에 수달 조형물이 세워져 있다. 바로 아래 옥동천이 청정 1급수라는 자랑이다.


솔고개 소나무 아래 옥동천 주변에 산책로가 조성돼 있다.

솔고개 소나무 아래 옥동천 주변에 산책로가 조성돼 있다.


영월은 청령포와 장릉 등 곳곳에 조선 6대 임금 단종의 애사가 깊이 서려 있는 고장이다. 숙부 세조의 핍박으로 폐위돼 머나먼 영월로 유배됐다 끝내 죽임을 당한 어린 임금에 대한 연민의 마음이 때로는 험준한 산줄기를 넘고, 때로는 동강과 서강 물줄기처럼 애잔하게 흐른다. 이 소나무에도 태백산의 산신령이 된 단종의 혼령이 솔고개를 넘을 때 배웅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소나무가 선 언덕 주변은 깔끔한 공원으로 조성돼 있다. 도로 양편에 주차장이 있어 잠시 쉬어가기 편하다. 뒤편으로는 우람한 바위 봉우리가 능선을 이루고 있다. 가을이 깊어지면 아름다운 자태를 뽐낸다고 해 단풍산이다. 공원 아래 도로와 나란히 옥동천이 흐른다. 하천으로 내려서는 길목에 물고기 한 마리를 옆구리에 낀 수달 조형물이 세워져 있다. 1급수 청정 계곡임을 자랑하는 표식이다. 하천 주변으로 산책로가 조성돼 있다. 훤한 대낮에 수달을 마주칠 가능성은 거의 없지만, 맑고 시원한 물소리가 길손의 마음을 어루만진다.

만항재에서 영월 상동읍으로 내려가는 길. 일부는 좁은 시멘트포장 도로여서 조심스럽게 운전해야 한다.

만항재에서 영월 상동읍으로 내려가는 길. 일부는 좁은 시멘트포장 도로여서 조심스럽게 운전해야 한다.


만항재에서 시작되는 고산 트레킹 길인 운탄고도. 오른쪽 아래가 정선 고한읍이다.

만항재에서 시작되는 고산 트레킹 길인 운탄고도. 오른쪽 아래가 정선 고한읍이다.


정선 두위봉주목과 영월 솔고개소나무 주변 여행 지도. 김문중 선임기자

정선 두위봉주목과 영월 솔고개소나무 주변 여행 지도. 김문중 선임기자


도사곡자연휴양림에서 솔고개 소나무까지 가는 가장 짧은 길은 만항재를 거친다. 정선 태백 영월의 경계인 해발 1,330m 고갯길이다. 남한에서 여섯 번째로 높은 함백산(1,573m)이 손에 잡힐 듯하고, 석탄을 날랐던 구름 위의 도로 운탄고도 트레킹이 시작되는 곳이다. 고한에서 만항재까지는 대체로 무난하지만 만항재에서 영월 상동읍으로 내려가는 길은 구불구불 구절양장이다. 더구나 일부 구간은 교행이 쉽지 않은 시멘트 포장도로다. 천천히 차를 몰면 강원도 가장 깊은 골짜기의 가을 서정을 느낄 수 있다.

정선·영월=글·사진 최흥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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