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 '반민주' 사법 개편 우려 속
양 정상, 뉴욕서 만나 1시간 넘게 회담
"미, 중동 내 중국·이란 견제 위한 목적"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가 20일(현지시간) 미국 뉴욕에서 유엔총회를 계기로 만나 회담했다. 지난해 12월 네타냐후 총리가 재집권한 지 9개월 만에 이뤄진 회동이다. 이스라엘 정상이 새로 취임하면 미국 대통령이 몇 주 안에 워싱턴으로 초청했던 기존 관행과는 달리 시기적으로 한참 늦은 데다, 회담 장소도 백악관이 아니라 뉴욕이었다는 점에서 최근 들어 불편해진 양국 관계가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다만 바이든 대통령과 네타냐후 총리 모두 서로를 만나야 할 필요성은 있었다. 일단 바이든 대통령으로선 중동에서 영향력을 키우고 있는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역내 최대 우방국인 이스라엘과의 긴밀한 협조가 불가피한 상황이다. 네타냐후 총리도 ‘사법부 무력화’ 등 정책을 두고 쏟아진 국제사회의 우려와 비판에서 벗어나 안팎으로 지지 기반을 다지려면 미국과의 관계 회복이 절실한 처지였다. 결국 이번 회동에선 양국 우의를 다지기보단, 현안 위주의 ‘건조한’ 대화가 오갔을 공산이 크다는 얘기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뉴욕에서 열린 제78차 유엔총회에 참석 중인 바이든 대통령과 네타냐후 총리는 이날 뉴욕의 한 호텔 연회장에서 1시간이 넘는 회담을 가졌다. 두 정상은 15분가량 참모 없이 단독 회담을 갖기도 했다.
"사우디·이스라엘 관계 정상화, 함께 역사 만들자"
회담의 핵심 의제는 역시 ‘이스라엘·사우디아라비아 관계 정상화’였다. 미국은 최근 팔레스타인 문제를 두고 수십 년째 대립해 온 두 나라가 정식 수교를 맺도록 설득하는 데 공을 들이고 있다. 중동의 적대국인 이란을 견제하는 동시에, 중국의 세력 확장에 대응할 지렛대를 확보하려는 목적이다. 실제 이스라엘과 사우디의 화해 논의는 진전을 보이고 있는 상태다.
이를 감안한 듯, 네타냐후 총리는 모두발언에서 “사우디와의 관계를 정상화하면 아랍과 이스라엘 간 분쟁을 종식하고, 팔레스타인과의 진정한 평화를 이루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함께 역사를 만들 수 있다”며 미국의 노력에 화답하는 모양새를 취했다. 바이든 대통령도 ‘함께’라는 단어를 반복하면서 “몇 년 전에는 상상할 수 없었던 일”이라고 큰 의미를 부여했다.
로이터는 “바이든 대통령 입장에서 이번 회담은 네타냐후 총리가 이스라엘·사우디 관계 정상화에 어느 정도의 의지가 있는지를 (직접) 확인할 수 있는 기회였다”며 “미국 관리들은 ‘중국의 걸프만 지역 영향력 확대에도 대응할 수 있다’고 홍보하고 있다”고 전했다.
바이든, '이스라엘 사법부 무력화'에 우려 표명
네타냐후 총리가 추진해 온 ‘사법 개편’을 둘러싼 논란도 의제에 올랐다. 극우 정당과의 연립정부를 이끄는 그는 대법원 권한을 대폭 축소한 법안을 밀어붙여 ‘민주주의를 위협한다’는 나라 안팎의 거센 비판을 받았다. 특히 본인도 부패 혐의 수사를 받는 처지다. 바이든 대통령이 네타냐후 총리의 재집권 이후 9개월간 회담하지 않은 것도 그런 이유였다.
백악관은 성명을 통해 “바이든 대통령이 회담에서 이스라엘 민주주의 체제의 근본적 변화에 대한 우려를 거듭 강조했다”고 밝혔다. 네타냐후 총리는 “분명하고 변하지 않는 하나의 가치는 민주주의에 대한 이스라엘의 약속”이라고 강변했다. 대화 분위기가 화기애애하진 않았을 것으로 짐작되는 대목이다.
데이비드 마코프스키 워싱턴 근동정책연구소 연구원은 “네타냐후 총리가 다시 총리직에 오른 지 265일 만에 미국 대통령을 만났는데, 이는 1964년 이후 가장 긴 시간”이라고 짚었다. 그러면서 “바이든 대통령은 ‘이스라엘·사우디 거래’의 엄청난 잠재력 때문에 (지금이라도) 네타냐후 총리를 만날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고 해석했다. 백악관은 “바이든 대통령이 연말 이전에 네타냐후 총리를 워싱턴으로 초청할 계획”이라고 밝혔으나, 구체적 시기를 특정하진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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