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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최전방' 폴란드의 망가진 민주주의

입력
2023.09.22 04:30
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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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편집자주

우리가 사는 지구촌 곳곳의 다양한 ‘알쓸신잡’ 정보를 각 대륙 전문가들이 전달한다.

마테우슈 모라비에츠키 폴란드 총리가 유럽의회 전체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스트라스부르=AP 연합뉴스

마테우슈 모라비에츠키 폴란드 총리가 유럽의회 전체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스트라스부르=AP 연합뉴스

지난해 2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후 폴란드는 자유 진영의 최전방 국가가 됐다. 과거 냉전 시대에 소련의 압제를 겪었던 나라로, 침략을 당한 이웃 나라의 아픔에 절실하게 공감했기에 무기 및 인도적 지원에 앞장섰다. 또 180만 명이 넘는 우크라이나 피란민을 기꺼이 품기도 했다. 그런데 이런 폴란드가 법치주의를 위반해 유럽연합(EU)과 심각한 갈등을 겪었고 아직도 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 있으니, 참으로 아이러니하다.

2004년 5월 EU에 합류한 폴란드는 대표적인 '가입 성공 사례'다. 공산주의 시절 계획경제에서 시장경제로 전환하며 고속 성장을 달성했는데, 여기에 EU의 역할이 크다. 시장경제로의 전환이 이뤄졌다고 판단한 외국인 투자가 급증했기 때문이다. 폴란드는 또 EU 예산의 주요 수혜국이다. 지난해 폴란드는 EU에 74억 유로를 납부했으나 EU로부터 187억 유로를 지원받았다. EU 예산의 70%가 농민과 낙후 지역에 지원되면서 폴란드는 납부 액수보다 2.5배나 더 지원받은 것이다.

그런데 2015년 포퓰리즘 성향이 강한 법과정의당(PiS)이 집권하면서 폴란드와 EU 관계가 계속 악화됐다. 특히 정권에 비판적인 판사를 징계할 수 있도록 대법원 산하에 판사징계위원회를 설치하는 법을 2019년에 만들어 실행했다. EU의 법원인 유럽사법재판소는 지난 6월 초 삼권분립에 위배되는 이 법을 폐지해야 한다고 판결했지만, 폴란드는 요지부동이다.

이에 EU 집행위원회는 '예산 지원' 카드로 압박하고 있다. 폴란드는 EU가 코로나19에 대처하기 위해 조성한 경제 회생기금 7,500억 유로(약 1,000조 원) 가운데 580억 유로를 지원받을 예정이었다. 그런데 폴란드가 판사징계위 해체를 거부하자, EU집행위도 지원을 보류한 것이다.

다음 달 15일 폴란드 총선이 치러진다. 가장 최근 여론 조사에 따르면 여당인 법과정의당의 지지율(34.9%)이 야당인 '시민연정'보다 5.7%포인트 높다. 이대로 법과정의당이 3선에 성공한다면 지난 8년간 EU와의 충돌을 넘어선 더 큰 갈등이 예상된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없었다면 EU는 폴란드에 더 강력하게 법치주의를 주문했을 것이다. 유럽의회는 '전쟁을 빌미로 민주주의 가치를 위반하는 폴란드를 더 강하게 압박해야 한다'고 집행위원회에 촉구했지만 쉽지 않다. '폴란드가 민주주의 국가인가'라는 질문이 여전히 유효한 이유다.


안병억 대구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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