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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아 나 몰라라, 시댁 편만 드는 남편... 이혼이 답일까요

입력
2023.09.25 04:30
2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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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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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박구원 기자

일러스트=박구원 기자

시댁과의 갈등으로 남편과 감정의 골이 깊어지면서 이혼 위기에 있는 주부입니다. 시어머니와 결혼 초부터 사이가 좋지 않았어요. 갈등이 있을 때마다 남편은 제 입장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원가족을 우선시했습니다. 그런 문제로 다투면서 남편과의 관계도 악화됐고 자연스레 '독박육아'를 하게 됐습니다.

불화의 씨앗은 상견례 자리에서였습니다. 시어머니가 친정어머니를 보자마자 뜬금없이 "손주 낳으면 사돈이 키우세요"라고 하시면서 친정 식구들이 시댁에 대한 부정적인 인상을 갖게 됐어요. 결혼 후에도 시댁 어른들은 며느리에 대한 애정이나 존중이 전혀 없었습니다. 딸이 시댁에서 존중받지 못하고 살까 봐 걱정하는 친정에는 문제가 없는 듯 시댁을 두둔하며 지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시어머니가 좁은 신혼집에 대가족인 자신의 친정 식구들을 데리고 오셨습니다. 빈손으로 오신 탓에 손님 접대는 제 차지가 됐습니다. 남편은 저에게 양해를 구하기는커녕 그런 모습을 당연한 듯 여겼어요. 그 이후로도 시어머니께서 자신의 친척 집에 저와 남편을 오게 하고, 정기적으로 조부모님을 찾아뵙게 하는 등 '도리'를 강요하면서 불만이 쌓여갔습니다. 시댁 행사를 소소한 부분까지 챙기는 남편은 친정 경조사는 전혀 챙기지 않았습니다.

제가 출산을 했을 때도 시댁에선 전화 한 통 하지 않았습니다. 남편에게 '서운하다'는 내색을 했지만 "어머니가 오시다 길을 잃으셨다"는 말도 안 되는 변명을 늘어놓았습니다. 시댁에서 산후조리원에 들어간 비용을 지원해주겠다고 했지만 남편이 극구 거절해서 안 받았다는 사실도 나중에 알게 됐습니다. 저에게 들어온 출산 축하금으로 선심 쓰듯 산후 도우미를 고용하고 조리원 비용을 충당하는 남편의 모습을 보면서 실망했습니다. 첫 손주가 태어난 지 세 달 무렵까지도 아무 연락이 없다가 갑자기 시어머니가 친정아버지 구순 잔치에 태어난 지 백일도 안 된 아기를 불러내면서 갈등이 생겼습니다. 남편은 여전히 시어머니의 편을 들며 저를 무시했습니다. 그러다 큰 싸움이 났고, 남편은 충동적으로 친정 부모님에게 "딸을 칼로 찔러 죽이겠다"며 협박성 문자를 보냈습니다. 남편은 부모님에게 사과를 하기는커녕 친정에 발길을 완전히 끊어버렸습니다.

육아는 제가 도맡게 됐습니다. 남편은 집에 들어와도 피곤하다는 이유로 아이를 돌보지 않았고, 불만을 말하면 집을 나가버리는 패턴이 반복됐습니다. 한번 싸우면 계절이 바뀔 때까지 독박육아를 하는 생활의 연속입니다. 남편과 대화로 해결해보려고 했지만 대화가 이어지지 않고 큰소리만 납니다. 아이 어린이집 관련하여 상의를 하는 것조차 제가 얘기를 많이 하는 게 싫다고 합니다. 저는 아무도 얘기를 나눌 대상이 없습니다. 얼마 전엔 일이 힘들다는 이유로 '육아휴직'을 내겠다고 통보했습니다. 집을 사느라 빚을 진 상황에서 무책임하게 행동하는 남편을 보면서 더 이상 함께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남편에게 이혼을 요구했지만 '능력껏 해보라'라는 윽박과 무시만 돌아왔습니다.

친정어머니가 많이 편찮으신 상황이라 친정에 사정을 알리지 못했습니다. 가정에 소홀하고 엄마를 함부로 대한 친정아버지 때문에 홀로 어렵게 남매를 키운 어머니 슬하에서 자라면서 늘 외로움을 느꼈습니다. 그래서 급히 한 결혼이 결국 다시 도돌이표처럼, 도망치고 싶은 가정으로 돌아왔다는 생각에 자괴감이 듭니다. 세상에 아이와 저, 둘뿐인데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너무 두렵습니다. 제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이 뭘까요.

박성희(가명·35·주부)

성희씨, 사연을 읽으면서 결혼 생활 내내 느꼈을 외로움과 서운함이 느껴져 마음이 아팠습니다. 당신은 배우자인 남편에게 온전히 의지할 수 있길 기대했지요. 특히 시댁과 갈등이 있었을 때 성희씨의 입장을 헤아리고 성희씨의 편이 되어주기를 바랐을 겁니다. 하지만 매번 돌아오는 남편의 무심함에 많이 서운하고 힘들었을 것 같습니다. 홀로 육아와 살림을 도맡으며 아이를 키우느라 정말 고생 많았다는 이야기를 먼저 해주고 싶습니다.

성희씨에겐 시댁과의 갈등이 결혼 생활의 가장 큰 장애물이었던 것 같습니다. 남편과의 불화를 부추기고 독박육아를 하게 한 결정적인 요인이라고 생각해왔지요. 남편이 중재는커녕 시부모를 두둔함에도 불구하고 두 사람이 결혼 생활 동안 이 문제에 대해 진지하게 이야기를 나눈 경험이 없었던 것 같아요. 성희씨 입장에서는 배우자에게 응당 기대할 만한 수준의 감정적인 역할과 책임을 요구하고 있다고 생각할 수 있어요. 하지만 평소 두 사람 사이에 정서적 교류뿐 아니라 형식적인 대화조차 부족한 상태였기 때문에 남편 입장에서도 성희씨가 시댁과 남편에게 느끼는 불만을 알아차리기 어려웠던 부분이 있었을 걸로 보입니다. 성희씨 본인이 시어머니가 무리한 요구를 했을 때나 남편이 무책임한 행동을 했을 때 실제 생각이나 감정보다 훨씬 소극적으로 대응했다면 더욱 그랬겠지요. 아무리 불합리한 상황이라고 할지라도 당사자가 정확한 액션을 취하지 않으면 남이 보기엔 상황을 수용하고 있는 것으로 착각하고 함부로 대하기 쉽기 때문이죠.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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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희씨가 결혼 생활 동안 이 모든 짐을 끌어안고 얼마나 힘들게 살아왔을지 눈에 선합니다. 시댁 어르신들의 무례한 행동을 참고, 지지가 충분히 필요한 임신과 출산 과정에서 느꼈던 서러움을 억누르며 홀로 전전긍긍했지요. 아마 마음 한편에는 두려운 마음이 있었기 때문일 겁니다. 내 불만을 겉으로 표현하거나 거절하면 과거에 그랬던 것처럼 혼자 남겨질 수 있다는 막연한 불안감 말입니다. 그런 패턴이 반복되면 인간관계에서 자신의 생각을 드러내고 분명하게 거절하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어쩌다 불만을 조금이라도 표현하면, 상대도 집을 나가버리거나 대화를 거부하는 식으로 성희씨에게 가장 취약한 외로움과 두려움을 공격해 잠재우게 됩니다.

성장과정에서 외로움을 많이 느꼈다고 했었지요. 가정에 무책임한 아버지를 대신해 홀로 힘겹게 남매를 키우는 어머니를 보며 어린 성희씨는 외로움과 무력함, 죄책감과 두려움을 동시에 느꼈던 것 같습니다. 그 부담감에서 벗어나고 싶은 창구로서 결혼을 선택했을 만큼 성희씨에겐 너무나 버거운 감정이었을 겁니다. 결혼이라는 안전한 울타리 안에서 배우자인 남편에게 의지해 빈자리를 채울 수 있기를 원했지만 기대했던 수준의 정서적인 지지나 공감을 받지 못하면서 그 좌절감이 더욱 커졌겠지요.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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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야기를 털어놓고 도움을 구할 사람이 없다", "친정도 친척도 없이 세상에 아이와 나 단 둘뿐이라 두렵다"라는 성희씨의 마지막 절규를 보고 안타까웠습니다. 다만 그 말에 성희씨가 겪는 괴로움의 핵심이 담겨 있다는 점을 알려드리고 싶습니다. 성희씨는 이미 독립한 성인이고, 책임질 자녀가 있는 부모입니다. 하지만 내면 깊은 곳에 누군가의 도움을 갈구하고, 끊임없이 의지할 대상을 찾는 어린 아이가 있지요.

남편과의 관계를 개선하거나 정리하기에 앞서 홀로서기 연습이 필요합니다. 무의식적인 패턴으로 자리 잡은 내면의 의존성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내 스스로 질문을 던져야 합니다. 스스로에 대한 확신이 부족하고, 혼자 남겨질 것 같은 두려움에 쉽게 사로잡히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롯이 혼자 직면하는 경험이 중요합니다. 원가족에서 경험한 결핍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그 감정들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이 시작입니다.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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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정하게 따져 보면 정서적인 교류가 없고 경제적으로도 무책임한 배우자와의 결혼 생활을 애써 유지할 이유가 없을 거예요. 다만 당장 이혼을 결정하기보다 '혼자가 되더라도 내 의견은 분명하게 전하겠다'는 태도로 상대에게 감정과 태도를 표현하는 연습을 해보라는 조언을 드립니다. 그런 과정을 뚝심 있게 반복하다 보면 자신감이 쌓이고, 관계도 원하는 방향으로 조금씩 바꿀 수 있습니다. 눈앞에 있는 갈등 상황을 해결하는 방법이기도 하지만, 보다 근본적으로는 패턴화된 내 안의 의존성을 극복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기도 합니다.

성희씨는 아직 젊습니다. 내게 주어진 인생을 행복하게 보내려면, 내 딸을 독립적인 성인으로 성장하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진지하게 고민하고, 용기를 냈으면 좋겠어요. 스스로 독립하지 못한 부모는 독립적인 자녀를 키워낼 수 없습니다. 엄마처럼 홀로 아이를 책임지며 살게 되고 아이에겐 외로움이 대물림될까 봐 참 두렵겠지만, 그럴수록 성희씨가 눈앞의 갈등에서 한발 떨어져서 두려움의 근원이 되는 과거 상처를 조금씩 마주하길 바랍니다. 그 첫걸음을 시작으로 자유롭고 소신 있는 인생을 살아가시길 진심으로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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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리= 손효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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