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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도시를 사랑하는 태도

입력
2023.09.14 22:00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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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 황궁의 도시 '후에' 외곽에 위치한 카이딘 황제 능. 프랑스와 베트남식 건축 양식이 결합된 독특한 모습이다. 한국일보 자료 사진

베트남 황궁의 도시 '후에' 외곽에 위치한 카이딘 황제 능. 프랑스와 베트남식 건축 양식이 결합된 독특한 모습이다. 한국일보 자료 사진

도시연구실에서 2016년도부터 최근까지 동남아 도시를 연구했는데, 이 활동의 일환으로 방학 때마다 구로시오 해류와 연결된 동남아 도시들을 답사한 적이 있다. 해류를 따라 16개 도시를 거쳐 최종 거점인 일본 도쿄까지 짚어보는 과정이었다. 관광지도 아닌 옛 흔적의 길을 찾아 헤매던 기억은 마치 유격훈련처럼 아찔했다. 40도를 넘나드는 고온을 견디기 위해선 에어컨이 나오는 세븐일레븐을 찾는 것이 유일한 방법일 정도였다.

일본의 도시 문명은 16세기 임진왜란 이후 수도를 교토에서 지금의 도쿄로 옮기면서 본격화된다. 바다 접근성이 용이한 도쿄로 수도를 옮기면서 일본인들의 눈은 대륙보다는 바다를 향했고, 자연히 바다를 통해 서구 문명도 쉽게 유입될 수 있었다.

프랑스에 400년간 점령당했던 베트남을 비롯해 유럽 대륙에서 가까운 동남아시아의 많은 도시는 오래전부터 서구 열강들의 각축장이 된 채 그들의 영향권에 있었다. 도쿄 시내 한복판에 100년이 넘는 명소인 일본의 단팥빵 집. 사실 단팥빵의 원류는 포르투갈의 빵(PAO)이 일본에 전파되면서 일본인의 입맛에 맞게 변형된 것이라는 가설을 가능케 한다. 항공기가 없던 시절에 가장 빠른 운송 수단이었던 선박은 해류의 영향을 받았고 그 대표적인 태평양 해류가 구로시오 해류였던 것이다.

고백하자면, 사실 내 머릿속에는 동남아 도시를 ‘동남아인들의 도시’로 보기보다는 ‘서양인들의 도시’로 보는 시각이 지배적이었다. 실제로 당시 서양인들이 조성해 놓은 군사기지, 종교시설, 주거시설 등을 보면 서구 도시를 축소해 그대로 옮겨 놓은 것에 가까웠다. "프랑스에 가서 하대받으며 요리 먹지 말고 베트남에서 럭셔리하게 프랑스 요리를 즐겨"라고 권할 정도였다. 그런 이유로 나는 동남아를 여행할 때마다 “참 좋네! 역시 문명인들이 조성해 놓은 도시라 계획이 잘 세워져 있고 의미가 잘 살아있어”라고 그들의 근대 문명 흔적들을 칭찬하기에 바빴다.

그러면서 우리의 도시 인프라나 모습에 대해 부정적인 시각을 가진 것도 사실이었다. 서양인들이 오랜 체험을 통해 이룬 도시 문명에 비해, 우리의 도시는 비체계적이고 뒤죽박죽인 형태였기 때문이다. '도대체 한국 도시의 정체성은 무엇인가?' '왜 우리다운 도시를 만들지 못하고 천편일률적인 도시 형태를 전국적으로 똑같이 만들어 대고 있는가?' 하는 비판적인 생각을 갖고 있었다.

하지만 이런 생각들이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나 스스로를 속이고 있었음을 깨닫는다. 서양의 좋은 것들을 연구하면서 좋은 점만 보려는 태도가 있었던 것 같다. 당시 서양인들이 먼 나라까지 찾아왔다면, 그들은 대부분 당대의 귀족이거나 양식이 있는 상류층 사람들이다. 그런데 우린 그런 사람들만 보고 서양인들에 대한 환상을 갖는다.

그동안 건축과 도시를 다루면서 다른 나라의 잘된 점들만 보며, 그 기준에서 우리를 비교하고 평가했었음을 깨닫는다. 그리고 늦게나마 이런 태도를 조심스럽게 반성한다. 우리도 좋은 것을 만들면 된다. 그리고 실제로 우리 주변엔 좋은 것들이 하나둘 늘어가고 있다. 해방 후 70년이 넘는 동안 적지 않은 진통을 겪었지만 꿋꿋이 우리의 길을 걸어왔다. 이제 나는 나의 나라 나의 도시를 사랑하며 나 또한 나의 길을 걸어갈 수 있겠다.


김대석 건축출판사 상상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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