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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 좀비에게 위험할 수 있다?

입력
2023.09.16 04:30
1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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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보현 '누군가 이름을 부른다면'

편집자주

인공지능(AI)과 로봇, 우주가 더는 멀지 않은 시대입니다. 다소 낯설지만 매혹적인 그 세계의 문을 열어 줄 SF 문학과 과학 서적을 소개합니다. SF 평론가로 다수의 저서를 집필해 온 심완선이 <한국일보>에 4주마다 금요일에 글을 씁니다.

'지금 우리 학교는' 스틸컷. 넷플릭스 제공

'지금 우리 학교는' 스틸컷. 넷플릭스 제공

좀비는 이름을 불러도 답하지 않는다. 좀비가 되면 이지를 잃기 때문이다. 혹자는 좀비가 야기하는 가장 큰 공포는 가까운 사람이 돌변해 자기를 공격하는 점이라고 했다. 좀비는 기존에 축적된 친밀성을 퇴색시킨다. 그들은 변질되기에, 그러고도 사라지지 않고 배회하기에 무섭다. 좀비 바이러스가 횡행하는 세상은 언제 누가 습격할지 모르는 극도의 긴장 상태가 된다. 그런데 좀비가 위험하다는 생각과 반대로, 인간이 좀비에게 위험하다고 말해보면 어떨까?

‘인간’에 미달하는 존재를 손쉽게 배제하는 사회에서 좀비는 보호받지 못한다. 그들은 소외된 존재의 상징이기도 하다. 문화연구자 김형식은 저서 '좀비학'에서 주디스 버틀러를 빌려 좀비를 ‘규범의 경계에서 죽어가는 인간’이라 표현한다. “이 배제된 인간들은 공적인 영역에서 추방당했지만, 또한 공적인 영역에 유령처럼 나타나는 자들이다.” 하지만 만약 좀비를 무조건적으로 배척하지 않는다면, 그래도 괜찮은 평형상태가 유지된다면, 추방 없는 색다른 이야기가 가능할지도 모른다.

김보현의 소설 '누군가 이름을 부른다면'의 주인공 ‘차원나’는 좀비가 된 마을 사람들을 죽이려는 ‘정’을 막아서며 이렇게 말한다. “아줌마는 아프지도 않잖아요. 아줌마는 감염된 것도 아닌데 자기 자신을 잃었잖아요. 아픈 것도 아닌데 사람들을 죽이고 있잖아요. 현실을 직시하고 진실과 대면해야 하는 건 아줌마예요.”

누군가 이름을 부른다면·김보현 지음·은행나무 발행·384쪽·1만4,000원

누군가 이름을 부른다면·김보현 지음·은행나무 발행·384쪽·1만4,000원

원나는 농촌에서 학교를 다니며 펜싱을 익힌 소녀다. 마을 어른들의 안쓰러움을 사는 아픈 손가락이기도 하다. 원나의 아버지는 화재가 났을 때 원나를 구하다 사망했고, 어머니는 교통사고로 식물인간 상태가 되었다. 원나는 커다란 화상 흉터를 얻고 ‘괴물’이 되었다. 덩치 크고 음침하며 정체 모를, 괴물이다. 휴학 후에 만난 한 살 어린 동급생들은 아무도 원나의 이름을 부르지 않는다. 펜싱 마스크를 쓰고 경기장에 오를 때만 원나는 괴물이 아닌 ‘그냥 차원나’가 된다. 원나는 정신적으로는 물론 펜싱을 통해 물리적으로 타인과 거리를 유지하는 방법을 배운다.

농촌과 펜싱이라는 설정은 좀비 사태에 빛을 발한다. 펜싱복은 튼튼하므로 이걸 입으면 좀비에게 물리지 않는다. 마을 어른들은 좀비가 되었어도 대부분 노인이라 치아가 없거나 약하다. 위기상황이 장기화하여도 농촌에서는 식량을 자급자족할 수 있다. 침입해오는 외부인도 딱히 없다. 원나는 매일 마을을 돌며 좀비가 된 사람들을 돌본다. 예전에는 어른들이 원나에게 공들여 잔심부름을 시키며 원나가 혼자 침잠하지 않도록 돌봤다. 돌봄은 주고받을 수 있는 것이고, 이제 원나가 모두를 돌볼 차례다.

세상이 적막해진 후에도 라디오에서는 매일 똑같은 안내방송이 나온다. 속보를 기다려주십시오. 백신이 개발 중입니다. 감염자와 떨어져 계십시오. 원나는 녹음된 목소리에 꼬박꼬박 대답한다. 방송이 나온다는 건 누군가 사람들을 위해 방송을 내보내고 있다는 뜻이다. 백신을 만들고 있는 사람도 있으리라는 뜻이다. 소설의 결말은 다소 편의적이지만, 노력과 믿음이 보답받는 모습을 보면 어쩔 수 없이 가슴을 쓸어내리게 된다.

심완선 SF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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