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기징역 선고' 미국 시민권자 혐의 상세 공개
"참전용사·영국 유학 등 거짓 경력 내세워 활동"
'방첩 강화' 속 중국인들에게 경각심 주려는 듯
중국 정부가 올해 5월 간첩 혐의로 무기징역을 선고받은 70대 중국계 미국 시민권자의 스파이 활동을 낱낱이 공개했다. 중국 안팎에서 첩보 활동을 벌이는 세력에 대한 경고성 조처로 풀이된다.
12일 홍콩 명보 등에 따르면, 중국 방첩기관인 국가안전부는 전날 공식 위챗(중국판 카카오톡) 계정을 통해 "홍콩 영주권자이자 미국 시민권자인 존 싱완 렁(78)이 30년 넘게 미국 스파이로 활동해 온 사실이 드러났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렁의 이력과 혐의를 매우 구체적으로 소개했다.
"중국 유력 인사 방미 계획 등 첩보 제공"
홍콩 출신인 렁은 1983년 미국으로 건너가 식당을 운영했다. 미국 정보기관이 그에게 접근해 '미국을 위해 일해 달라'고 요청한 건 1986년. 렁은 3년 후 미국 정보원이 됐다. 그 대가로 매월 1,000달러(현재 환율 기준 약 133만 원)를 지급받았다. 성과에 따라 상여금도 따로 받았다.
미국은 렁의 경력을 조작해 줬다. 미국 내 화교 및 외교관들에게 보다 쉽게 접근하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영국 유학, 유엔 근무, 베트남전 참전 용사 등의 '사회적 배경'이 만들어졌고, 중국에서 기부 사업을 했다는 내용도 포함됐다. 국가안전부는 이를 "애국적 박애주의자의 가면을 씌웠다"고 표현했다. 렁은 이를 토대로 화교 단체, 미국 내 중국 기관에 접근해 정보를 빼냈다고 한다.
구체적 사례를 설명하면 이렇다. 렁은 중국의 유력 인사가 공무 수행을 위해 방미한다는 정보를 미국 정보기관에 제공했다. 이에 미국 측은 해당 인사가 머물 호텔과 식당 등에 미리 감시 장비를 심었다. 때로는 첩보 활동을 위해 렁을 직접 중국에 잠입시키기도 했다.
앞서 중국 쑤저우시 법원은 지난 5월 렁의 간첩 혐의를 유죄로 인정, 50만 위안(약 9,500만 원)의 재산을 몰수하고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당시 주중 미국대사관은 "미 정부는 해외 미국 시민권자의 안전과 국가 안보를 최우선시한다"면서도 렁의 간첩 혐의에 대해선 "언급할 게 없다"는 입장만 냈다.
중, '안보지식 퀴즈 대회 개최' 등 방첩 교육 강화
중국이 렁의 혐의를 구체적으로 공개한 건 이례적이다. 발각된 첩보 활동에 대해선 공개적으로 문제 삼지 않는 게 국제적 관례다. 이에 반하는 중국 당국의 이번 조처는 지난 7월 반간첩법 개정안(방첩법) 시행과 동시에 방첩 활동을 강화하는 흐름에서 중국 안팎의 중국인들에게 경각심을 주려는 의도로 해석된다. 아울러 미국을 향한 경고도 담겨 있는 것으로 보인다. 리하이둥 중국외교학원 교수는 관영 글로벌타임스에 "이런 행동에 연루된 사람들에게 반성의 기회를 제공하고 자수를 유도할 수 있다"고 짚었다.
국가안전부는 최근 대학생들을 상대로 간첩 식별법도 교육하고 있다. 칭화대와 베이징항공우주대, 대외경제무역대 등에서 '국가안보 지식 퀴즈 대회'를 열거나 '간첩 상황극'을 선보이는 식이다. 국가안전부는 "학생들이 신체와 정신을 단련하며 국가안보 지식을 쌓았다"고 자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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