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 보도 시점에는 엄벌 여론이 들끓었던 동물학대 사건들이 속속 집행유예로 마무리되며 ‘용두사미’라는 지적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다른 사건들과 후속 재판이 더 남아 있지만 사법부와 입법부의 전향적인 변화 없이는 개선이 어려울 것이라는 비관적인 전망이 우세합니다.
지난달 24일, 제주지방법원 형사1단독 재판부는 동물보호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30대 여성 A씨와 40대 남성인 공범 B씨에게 징역 6개월, 집행유예 2년, 사회봉사 80시간을 선고했습니다. 이들은 지난해 4월, 제주시 애월읍 공터에서 기르던 푸들 품종 반려견을 생매장해 기소됐습니다.
발견 당시 푸들은 입이 묶여 있는 채 눈만 간신히 보일 정도로 매장됐습니다. 발견 당시 묻힌 땅 위에는 돌까지 얹어져 있었습니다. 목격자에 따르면 구조 당시 강아지는 몸이 매우 말라 있었고, 벌벌 떨면서 아무것도 먹지 못했었다고 합니다. 경찰이 구조된 강아지의 몸에 내장된 마이크로칩을 조사해 본 결과 A씨가 보호자였습니다.
보호자로 지목된 A씨는 첫 경찰 조사에서 “사건 사나흘 전 개를 잃어버렸다”고 진술했지만, 이 주장은 허위였습니다. 경찰 수사망이 좁혀오자 A씨는 공범 B씨와 함께 경찰에 자수했습니다. 이들은 “개가 죽어가고 있었다”며 범행 이유를 밝혔지만, 경찰이 확보한 CCTV에 따르면 개는 살아서 움직이고 있었습니다. A씨는 홀로 범행을 저지를 수 없다고 판단해 B씨와 함께 삽을 이용해 땅을 파 개를 매장했습니다.
이처럼 개를 파묻은 행동은 계획적인 범죄였지만, 재판부의 판단은 솜방망이 처벌이었습니다. A씨의 변호인은 법정에서 “당시 A씨가 개인적인 일로 스트레스를 크게 받아 우발적으로 이 사건 범행을 저질렀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리고 법원은 이 점을 참작한 듯한 판결문을 내놓았습니다. 법원은 “범행 동기를 고려해 볼 때 죄질이 나쁘다”면서도 “피고인들이 모두 초범인 점, 피해견이 구조된 점을 참작해 형을 결정했다”고 밝혔습니다.
"범행 잔혹성 심각하다"면서도.. 기계적인 판결 "초범이고 반성한다"
이보다 하루 앞선 지난달 23일에도 잔인한 동물학대범에게 집행유예가 선고됐습니다. 부산지방법원 형사5단독 재판부는 동물보호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조모씨에게 징역 8개월에 집행유예 2년, 벌금 200만원을 선고했습니다. 조씨는 지난해 3월, 카카오톡 오픈채팅방에서 ‘고목죽’이라는 이름으로 활동하며, 고양이를 목 졸라 죽인 뒤 그 영상을 유포해 법정에 섰습니다. 활동명 고목죽은 ‘고양이 목 졸라 죽인다’는 의미가 담겨 있었습니다.
조씨 외에도 채팅방을 개설한 백모씨(활동명 ‘요원M’)도 함께 기소됐습니다. 그러나 재판부는 백씨에게도 벌금 200만원을 선고하며 관대한 처벌을 내렸습니다. 재판부는 이들이 초범이고 사건에 대해 깊이 반성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해 형량을 결정했다고 밝혔습니다.
그러나 이 판결에 대해 동물보호단체들은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입니다. 재판을 직접 참관한 동물권행동 ‘카라’의 최민경 정책변화팀장은 동그람이에 “재판부도 사람과 동물의 공존이 중요하다는 걸 판결문에 언급했지만, 결국 판결 내용은 여타 솜방망이 처벌과 다르지 않았다”며 안타까움을 표했습니다.
무엇보다 과연 피고인들이 반성하고 있는지 의문이라고 최 팀장은 밝혔습니다. 선고 공판 이외의 공판 과정에서 채팅방 개설자 백씨는 수차례 억울함을 호소했다고 합니다. 백씨는 1,2차 공판 당시 재판정에서 “고양이로 피해를 입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을 뿐”이라며 “우리가 피해자인데 채팅방 운영이 무엇이 문제냐”고 주장하기도 했습니다. 물론 3차 공판 이후로는 이 같은 표현을 자제하긴 했지만, 재판정 밖에서 시민들과 대치할 때는 이 주장을 다시 꺼냈었다는 게 최 팀장의 설명입니다. 그는 “이런 점을 종합해 봤을 때 과연 이들의 반성에 얼마나 진심이 담겨있었을지 의문”이라고 말했습니다.
동물학대 신고 10% 늘었지만.. 판결 이러면 누가 신고하나
시민들의 동물학대 인식은 점점 늘고 있습니다. 과거보다 동물학대 신고가 늘어난다는 점이 이를 뒷받침합니다. 농림축산식품부에서 지난 17일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최근 2021년~2022년 사이 동물학대 신고 건수는 총 1만2,091건이었습니다. 이 중 2021년(5,497건)보다 2022년(6,594건)이 1,097건(약 20%)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그러나 이처럼 시민들이 관심을 가지고 신고를 하더라도 경찰 조사와 검찰 기소, 법원 판결에 이르는 과정에서 점점 처벌이 가벼워진다면 그 의미가 퇴색될 수밖에 없습니다. 특히 이번에 판결이 나온 ‘생매장 사건’이나 ‘동물학대 오픈채팅방 사건’은 사건을 목격한 일반 시민들의 적극적인 신고로 적발이 이뤄졌다는 점을 기억해야 합니다.
물론 엄벌을 내린 사례가 없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문제는 똑같이 동물을 잔인하게 살해하거나 다치게 하더라도 재판부마다 판단이 다르다는 점입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대법원 9기 양형위원회가 동물학대 범죄의 양형기준 수립을 세우겠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그러나 양형위원회의 일정상 동물학대 범죄 양형기준 수립은 임기 하반기인 2024년 4월부터 논의가 시작될 예정입니다. 즉, 양형기준이 세워지기까지 더 긴 시간이 남았다는 뜻입니다.
그렇다면 양형기준이 세워지기까지 동물학대 범죄는 판사 개개인의 인식에 기댈 수밖에 없는 걸까요? 최 팀장은 한 가지 기대해 볼 만한 부분으로 ‘동물 비물건화’ 민법 개정을 들었습니다. 현재 국회에 계류중인 민법 개정안에는 ‘동물은 물건으로 보지 않는다’는 내용이 담겨 있습니다. 이 법안이 통과되면 동물학대 사건을 대하는 법원의 시각도 다소 달라질 수 있다는 뜻입니다. 그는 “민법 개정은 동물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변하고 있다는 신호가 될 것”이라며 “법원도 이러한 사회적 합의를 완전히 무시하긴 어렵다”고 말했습니다.
오는 10월에는 고양이에게 화살을 발사한 뒤 도살하고 그 영상을 오픈채팅방에 게재한 ‘동물판 N번방 사건’의 행동대장 이모씨의 2심 선고 공판이 예정돼 있습니다. 또한 제주에서 유기견에게 화살을 발사한 학대범의 재판도 7월부터 시작돼 있습니다. 이 사건에 대한 재판부의 판단은 어떨지, 우리 사회가 다 함께 지켜봐야 할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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