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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리스크

입력
2023.09.11 00:00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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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태섭
금태섭전 국회의원·변호사

편집자주

진짜 중요한 문제들은 외면한 채 양쪽으로 나뉘어 분열과 반목을 거듭하는 한국 정치의 문제점을 구체적 사례로 분석하고 해결책과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한다.

‘할 일’보다 ‘싸움거리’에 몰두하는 여ㆍ야ㆍ정
권위주의 제도에서 비롯된 ‘대통령 리스크’
통치 구조의 문제점, 원점에서 재검토해야

서울 용산구 국방부 청사 앞에 설치된 고 홍범도 장군 흉상 모습. 연합뉴스

서울 용산구 국방부 청사 앞에 설치된 고 홍범도 장군 흉상 모습. 연합뉴스

요즘 기업에 계신 분들을 만나면 금리 걱정들을 많이 한다. 한국은행 기준금리는 3.5%. 미국 연준 기준금리인 5.5%와 2%포인트나 차이가 난다. 이렇듯 큰 격차가 지속되면 환율이 급등하고 자칫 대규모로 외환이 유출돼 IMF 사태와 같은 위기가 올 수도 있다. 그렇다고 추세에 맞춰 우리도 따라 올리면 이미 위험수위에 오른 기업부채와 가계부채 부담으로 인해 연쇄 부도의 우려가 있다. 한마디로 진퇴양난인데, 현장에서 오가는 얘기는 ‘3.75%까지는 어떻게 버틸 수 있지만 그 이상 올라가면 줄도산이 올 것’이라는 둥 ‘기준금리를 올리더라도 금융당국이 시중은행의 팔을 비틀어서 최소한 총선까지는 대출 금리를 못 올리게 할 것’이라는 둥 흉흉하기 짝이 없다. 혹시라도 이런 예상이 들어맞는다면 우리 사회에서 가장 힘없고 어려운 사람들이 일자리를 잃고 절망에 빠지게 될 것이 틀림없다.

이런 상황에 정부가 어떻게 대처하고 있는지 고개를 돌려보면 기가 막힌다. 카드 대금 연체율, 집값 등 각종 지표가 요란하게 경고음을 울리는 가운데 가장 중요하게 다뤄지는 것은 홍범도 흉상 이전 문제다. 대통령부터 “제일 중요한 것은 이념”이라면서 앞장선다. IMF 사태나 2008년 금융위기 때를 떠올려 보자. 거리에 나앉을 처지에 놓인 서민들 앞에서 80년 전에 돌아가신 분의 공과를 놓고 싸우는 게 정말 우리가 해야 할 일일까.

왜 이런 부조리가 생길까. 총리나 장관, 세계적으로 우수하다는 평을 듣는 우리나라 관료들이 지금 무엇에 집중해야 하는지 모를 리가 없을 텐데.

가장 큰 원인 중 하나는 대한민국 특유의 '대통령 리스크'라고 생각한다. ‘제왕적’이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막강한 권력을 휘두르면서도 다음 선거나 유권자들의 반응을 크게 의식할 필요 없는 5년 단임제, 제도적으로나 현실적으로나 지지층을 강하게 결집시키는 것이 정권을 차지하는 데 가장 유리한 길이기 때문에 집권 세력이 태생적으로 소수파가 될 확률이 높은 선거 제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통령의 뜻이다"라는 한마디가 모든 일에 우선하는 권위주의적 문화. 이런 상황에서 보수든 진보든 최강 권력을 한 손에 쥔 대통령이 된 사람은 자신의 정당성을 입증하기 위해서 엉뚱한 일에 몰두할 위험성이 크다. 어렵고 힘든 과제보다는 본인이 이해하기 쉽고 즉각적인 반응을 이끌어 낼 수 있는 싸움거리를 들고나오기 일쑤다. 역사를 바로 세우고 정체성을 확립해야 한다면서 과거와 싸운다. 나머지 사람들은 그런 모습을 보며 갈팡질팡한다. 여당이든 야당이든 정작 진짜 중요한 문제는 뒷전에 미루고 절대복종하거나(여당) 혹은 무조건 발목 잡기에(야당) 나선다.

지금은 때아닌 이념전쟁을 벌이는 윤석열 정부가 비판받고 있지만 역대 집권 세력들도 다르지 않다. 대통령이 대면보고를 회피해서 장관이 몇 달씩 대통령 얼굴도 못 보는 황당한 일이 벌어지는데도 한 사람도 문제 제기를 못 했던 박근혜 정부, 자식들 입시를 위해 문서를 위조한 사람을 법무부 장관으로 임명해서 검찰 개혁을 시키겠다는 비상식적인 행태를 여당이 나서서 옹호한 문재인 정부도 똑같은 지적을 받아 마땅하다.

이제는 문제를 직시하고 근본적으로 재검토해야 한다. 21세기 대한민국 정치의 가장 고질적인 모순 대통령 리스크. 국민들을 통합시키기는커녕 리더로 인해 더 분열하고 갈등이 증폭된다. 사람을 바꾸어도 똑같은 일이 반복되면 제도에 문제가 있는 것이다. 개헌 논의를 포함해서 통치구조의 문제점에 대해 본격적으로 고민할 때가 됐다. 박근혜, 문재인, 윤석열. 그만큼 시달렸으면 우리도 스스로 깨달아야 하지 않나.

금태섭 전 국회의원·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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