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개발 과정서 100년 된 나무 벌채
도쿄도는 2036년까지 공사 종료 의지
“누군가가 슬픔에 탄식하고 있었다. 아름다운 숲이 소멸한다고. (중략) 아름다운 오아시스가 아스팔트 정글로 변해버린다고.”
일본 국민 밴드 ‘사잔 올 스타즈(Southern All Stars)’가 지난 3일 발표한 신곡 ‘릴레이~ 숲의 시’의 가사다. 밴드 리더인 구와타 게이스케는 심야 라디오 방송에서 이 곡을 발표하면서 “도쿄 메이지신궁 외원(明治神宮外苑.메이지진구가이엔) 재개발을 재검토할 것을 요구한 고(故) 사카모토 류이치의 마음을 이어받아 만들었다”고 말했다.
세계적 아티스트 사카모토 류이치는 말기 암의 극심한 고통에 시달리면서도 지난 3월 사망하기 직전 고이케 유리코 도쿄도지사에게 메이지신궁 외원 재개발 중단을 호소하는 편지를 보냈다. 이후 수많은 예술가와 시민들이 사카모토의 뜻에 동조하며 서명 운동을 벌였다.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도 지난 6월 자신이 진행하는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한번 부서진 것은 다시는 원래대로 돌아갈 수 없다”며 재개발에 반대했다.
메이지신궁 외원이 어떤 곳이기에 재개발 반대 여론이 이렇게 뜨거운 것일까.
예술가에 영감 준 공원... 대규모 벌채에 시민 반발
도쿄 시부야구에 있는 메이지신궁은 일본인들이 막부 시대를 종식하고 일본의 근대를 열었다고 여기는 메이지 일왕과 왕비를 봉헌한 신사다. 메이지신궁 외원은 신사 밖의 부속시설로, 야구장, 럭비장, 공원 등 공공시설이 있다. 하루키가 1978년 메이지진구 야구장에서 2루타가 나오는 순간 소설가가 되기로 결심한 일화는 유명하다. 수백 그루의 키 큰 은행나무가 늘어선 가로수 길은 도쿄 시민이 사랑하는 산책로로, 매년 가을이면 노랗게 물든 은행나무길에서 축제가 열린다.
사업비 3,490억 엔(약 3조1,641억 원)이 소요되는 도쿄도의 재개발 계획에 따르면 낡은 야구장과 럭비장부터 새로 짓는다. 외원과 맞닿은 이토추 상사 사옥을 100m 높이에서 190m 높이로 다시 짓는 것을 포함해 초고층 빌딩 2동도 들어선다. 예술가와 시민의 반발을 부른 것은 수령 100년 이상의 나무를 1,000그루 가까이 베어야 한다는 사실이었다.
예술가들이 반대하고 반대 서명자가 19만5,000명에 이르자 3m 이상 나무 1,904그루 중 743그루만 벌채하고 대신 나무 837그루를 새로 심는다는 수정안이 나왔다. 외원의 상징인 은행나무 가로수길도 그대로 두기로 했다. 하지만 새로 심는 나무로는 현재의 아름답고 키 큰 나무를 대체할 수 없다는 것이 반대파의 논리다. 예술가에게는 영감을, 시민들에게는 휴식을 선사한 공원을 초고층 빌딩이 솟은 삭막한 곳으로 바꾼다는 구상도 반발을 불렀다.
시민 "도쿄도 환경영향 평가 불충분"... 고이케는 강행 태세
반대 여론이 커지자 사업주체들이 지난 7월 설명회를 열었다. 이번 재개발로 막대한 이익을 올릴 것으로 예상되는 종교법인 메이지신궁과 개발업체인 미쓰이부동산, 일본 스포츠부흥센터, 이토추상사 등이 참여했다. 참석한 학자와 시민들은 “스케치 형태의 조감도 말고는 구체적 건설 계획이 제시되지 않았다”며 실망을 표했다. 이에 이달 4일 작가, 영화감독, 배우, 학자 등 78명이 성명을 내고 “도쿄도의 환경 영향 평가가 불충분했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고이케 유리코 도쿄도 지사는 이달 중 나무 벌채를 시작하고 올해 안에 공사를 시작해 2036년에 끝낸다는 계획을 굽히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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