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말 '전승절' 친서 교환에서
최근 푸틴 공식 초청 의사 전달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이달 중 러시아를 방문해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과 회담할 계획이라고 뉴욕타임스(NYT)가 4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우리 정부 고위관계자도 "대체로 맞다"며 이 같은 내용을 부인하지 않았다.
김 위원장의 러시아 방문이 성사될 경우 2019년 4월에 이어 4년여 만이다. 코로나19 발생 이후 김 위원장이 북한 밖으로 나가는 첫 사례이기도 하다. 한미일 3국이 안보협력 수위를 끌어올리자 북한이 러시아와 결탁하며 고립에서 벗어나려 안간힘을 쓰고 있다.
이번 방러는 7월 27일 북한의 '전승절(정전협정기념일)'이 도화선이 됐다. 세르게이 쇼이구 러시아 국방장관이 축하사절로 사흘간 평양을 찾았는데, 이때 전달한 푸틴 대통령 친서에 김 위원장이 친서로 화답하면서 속도를 냈다는 게 외교가의 관측이다. 당시 김 위원장은 쇼이구 장관에게 양국 군사 협력 강화 방안을 제시하며 푸틴 대통령의 북한 방문을 요청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푸틴 대통령이 2019년 김 위원장의 방러에 대한 답방 형식으로 평양을 찾을 수도 있었던 셈이다.
이후 지난달 15일 열린 11차 모스크바 국제안보회의를 거치면서 푸틴 대통령의 의중이 북한 측에 전해졌다. 김 위원장을 러시아로 초청하는 내용이었다. 당시 회의에는 강순남 국방상이 참석했는데, 그는 "김정은 국무위원장 겸 총사령관이 '여러 차례' 세르게이 쇼이구 러시아 국방장관과 만나 양국의 협력과 전술·전략적 교류를 더욱 발전시켜 가자는 의지를 강조했다"며 러시아와의 협력을 재차 강조했다.
지난달 말에는 사전 준비 정황이 포착됐다. 김 위원장의 경호·의전 담당 인원이 다수 포함된 북한 대표단 20여 명이 열차 편으로 평양에서 블라디보스토크로 이동한 뒤 비행기로 갈아타고 모스크바로 날아갔다. 블라디보스토크는 4년 전 김 위원장과 푸틴 대통령의 첫 회담이 열린 곳이다. 이미 현지 답사를 마쳤다는 의미다. NYT는 "답사에 약 열흘 정도 시간이 소요됐다"고 미국 정부 관계자를 인용해 보도했다.
김 위원장을 초청하는 푸틴의 공식 친서는 최근 북한에 전달됐다. 쇼이구 장관이 재차 북한을 방문한 자리에서다. 종합하면, 김 위원장이 먼저 방북을 요청한 이후 한 달여 만에 푸틴 대통령이 반대로 김 위원장을 러시아로 공식 초청한 것이다.
홍민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한미일 정상회의 등의 정세 속에 북한과 러시아로서는 서로 간 밀착해야 하는 절실함이 생겼고, 외부에도 이를 과시할 필요가 있다고 느꼈을 가능성이 높다"며 "북러가 협력하는 구도가 공식화했을 때 얻는 효과가 크다고 판단해 정상회담까지 빠르게 추진하게 된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2019년 양측의 첫 정상회담은 푸틴 대통령의 공식 초청 이후 11개월이 지나서야 성사됐다.
김 위원장과 푸틴 대통령이 만난다면 역대 19번째 북러 정상회담이 된다. 5일 통일부에 따르면 김일성 주석 집권 당시 13차례, 김정일 위원장 집권 당시 4차례 열렸다. 통일부 관계자는 "김 주석의 경우 외교 문서 등으로 추가로 파악된 비공식 회담 4차례를 포함한 수치"라고 설명했다.
워싱턴= 권경성 기자 ficciones@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