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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인은 자신을 어루만졌던 손길이, 사람이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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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인은 자신을 어루만졌던 손길이, 사람이 그립다

입력
2023.09.05 04:30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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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숙 연기 인생 60년 기념 연극 '토카타' 리뷰
독백과 춤이 악보처럼 연주되는 '삶의 존재론적 고독'

연극 '토카타'의 한 장면. 신시컴퍼니 제공

연극 '토카타'의 한 장면. 신시컴퍼니 제공

"나는 손잡이가 반질반질해진 오래된 현관문을 열고 오래된 집으로 들어가죠. 오래된 신발장에 신발을 넣고 오래된 실내화를 신고 오래된 주방으로 가서 오래된 냉장고를 열고 오래된 가스레인지를 켜서 오래된 냄비에 국을 덥히고 오래된 그릇에 반찬을 차리고 밥을 푸고 오래된 수저로 밥을 먹지요.(…) 괜찮아요. 걱정 마세요. 오래된 것들이 나를 둘러싸고 있고 감싸주고 있고 나는 그것들을 어루만질 수 있으니까요. 그런데 이상하지요. 오래된 내 몸은 아무래도 익숙해지지 않네요. 그런 생각이 들 때면 잠들기 전에 스위치를 내리듯이 이 오래된 생을 탁, 꺼버리고 싶어요."

배우 손숙(79)의 연기 인생 60년을 기념하는 연극 '토카타'는 즉흥풍의 건반 음악 형식을 가리키는 동명의 음악 용어를 차용한 제목 그대로 하나의 연주곡을 닮았다. 무대 장치라고 해 봐야 경사진 바닥을 덮은 말라버린 누런 풀밭과 앙상한 가지만 남은 나무, 의자 하나가 전부다. 노년의 여인은 이 풀밭 위에서 담담히 대사를 읊조릴 뿐이지만 고독한 노년의 삶이 그림처럼 심상으로 다가왔다. 유일하게 곁을 지키던 늙은 개를 떠나보낸 후 홀로 남은 노인은 오래된 생을 탁, 꺼버리고 싶을 만큼 고독이 마음 깊이 사무친다.

연극 '토카타'의 한 장면. 신시컴퍼니 제공

연극 '토카타'의 한 장면. 신시컴퍼니 제공

배삼식 작가는 인간의 접촉이 불순하고 위험한 것이었던 코로나19 팬데믹을 겪으며 촉각이 이야기의 축이 된 희곡 '토카타'를 썼다. '토카타'는 '접촉하다' '손대다'라는 뜻의 이탈리아어 '토카레'에서 유래했다.

연극엔 '접촉'을 상실한 두 사람의 화자가 등장한다. 여인은 반려견마저 떠나보내 모든 접촉할 상대를 잃고 홀로 풀밭을 거닌다. 감염병으로 병원에서 인공호흡장치를 단 채 사경을 헤매는 중년의 남자(김수현)는 자기 육체 안에 갇혀 있다. 연극은 두 사람이 각각 쏟아내는 독백과 그 사이를 채우는 '춤추는 사람'(정영두)의 피아노 선율에 맞춘 몸짓만으로 흘러간다. 뚜렷한 내러티브는 없지만 연주곡의 각 성부가 모여 화음을 이루듯 공히 접촉을 갈망하는 두 사람의 이야기는 묘하게 서로 연결돼 있다.

연극에선 무대에서 60년을 보낸 노배우의 인생도 겹쳐 보인다. 손숙은 지난해 12월 남편을 떠나보냈고 올해 초 다쳐 3개월간 제대로 걷지도 못했다. 그는 이런 경험이 "연극에는 어떤 면으로는 도움이 됐다"며 "삶은 참 아이러니하다"고 말했다. 데뷔 후 처음 감행한 상반신 노출 장면에선 홀로 삶을 견뎌 내고 있는 노년의 고독한 삶의 흔적이 극적으로 전해졌다.

배 작가는 "정해진 목적지를 향해 가는 일반적 연극과 달리 관객이 배우들의 말과 움직임 속에 떠오르는 이미지와 상념을 조용히 떠올리길 바랐다"고 했다. 작가의 의도대로 존재론적 고독을 말하는 대사를 음미하며 자연스럽게 여러 생각을 떠올리다 보면 울컥하게 되는 장면도 많다. 공연은 10일까지 LG아트센터 서울 U+스테이지.

연극 '토카타'. 신시컴퍼니 제공

연극 '토카타'. 신시컴퍼니 제공


김소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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