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칠에 진흙물 뒤집어쓰고... 미모 버리고 '신스틸러'로>
'마스크걸' 이한별... 춤, '마스크 연기' K팝 연습생처럼 '피 땀 눈물'
월세 허덕 "연기 포기하려 하다" 도전
'경소문2' 악귀 정유미... "엄마도 못 알아봐" 한국의 '골룸'으로 조명
음침하게 '못생김'을 연기하고 얼굴을 새까맣게 가릴수록 박수 소리는 커졌다. 넷플릭스 드라마 '마스크걸'에서 '못생긴 얼굴'을 이유로 학교와 회사에서 따돌림당하는 김모미로 분투한 이한별(31)과 tvN '경이로운 소문' 시즌2에서 마주석(진선규)의 영혼을 잠식한 악귀를 섬뜩하게 연기한 정유미(44)는 그렇게 국내외 시청자를 사로잡았다. 온갖 분장으로 미모(美貌)를 일그러뜨리고 진흙을 온몸에 발라가며 조명받은 '극한 직업'의 세계. 최근 서울 종로구 한 카페와 중구 한국일보 사옥에서 각각 만난 두 '신스틸러'가 들려준 촬영은 역경의 연속이었다.
"미안해요" 듣고 산 '마스크걸' 이한별
"미안해요". 이한별은 '마스크걸'을 촬영할 때마다 이런 소리를 들었다. 분장 감독이 이한별의 눈 밑이 먹구름이 낀 것처럼 퀭하도록 흑칠하고 얼룩덜룩하게 기미를 그려 넣은 뒤 한 말이다. 외모콤플렉스가 심해 마스크를 쓴 채 찍는 인터넷 방송 촬영도 곤혹스러웠다. "얼굴에 딱 맞는 마스크를 쓰고 촬영하다 보니 말을 할 때마다 마스크가 밀착돼 때론 숨쉬기가 어려웠죠."
준비 과정도 가시밭길이었다. 이한별은 2021년 9월부터 넉 달 동안 오디션을 봤다. 캐스팅된 뒤에도 그는 주 5일 동안 개인 운동 지도를 받고 연기와 춤 연습도 따로 했다. 춤은 YG엔터테인먼트 소속 안무가에게 혹독하게 배웠다. 데뷔 전 '피 땀 눈물'을 쏟는 K팝 연습생이 따로 없었다. 인터넷 방송을 진행하며 몸에 딱 맞는 원피스를 입고 '토요일 밤에' 등의 춤을 능숙하게 춰야 했기 때문이다. 이한별은 "몸을 워낙 많이 써야 했고 촬영 전 준비할 것들이 많아 체력적으로 고돼 툭 치기만 하면 울 것 같은 때"라고 당시를 떠올렸다.
'마스크걸' 합류 전 그의 마음은 사막 같았다. 대학생 때부터 품어온 연기에 대한 꿈은 오디션에서 번번이 떨어지면서 바싹 메말라갔다. "니 얼굴로 가수를 한다고?"라며 엄마의 외면을 받았던 모미처럼 그의 꿈도 집에서 환영받지 못했다. 모두 그에게서 등을 돌릴 때 이한별은 보증금 200만 원에 월세 40만 원의 허름한 집에 홀로 살면서 편의점 등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버텼다. 그는 "50만 원을 번 달은 차비가 없어 걸어 다녔다"며 "'이렇게 사는 게 맞나'라는 생각에 불안감이 커져 연기를 그만두려 했다"고 고백했다. 그때 만난 게 '마스크걸'이었다. 1,000대 1의 경쟁률을 뚫고 주인공을 꿰찬 이한별은 "모미가 놓지 않는 실낱같은 희망이 보이길 바라며 연기"했다.
데뷔작으로 단숨에 K콘텐츠 시장의 샛별이 된 그는 현재를 "빛 좋은 개살구"라고 웃으며 말했다. "저한테 일이 또 들어오겠죠? 영화 '윤희에게'처럼 감정을 켜켜이 쌓아가는 역할을 해 보고 싶어요".
"듣기 싫다"는 말이 축복 '경소문' 악귀 정유미
정유미는 '경이로운 소문'에 맨얼굴이 단 한 번도 나오지 않는다. 그는 얼굴을 검은색으로 먼저 칠한 뒤 진흙과 검은색 색소를 풀어 넣은 칠흑 같은 물을 온몸에 한 번 더 뒤집어쓴 뒤 매번 카메라 앞에 섰다. "보디페인팅 전문가도 촬영하며 이렇게 검은색을 많이 쓰기는 처음이라고 하더라고요. 어머니도 '너 어디에 나오니?'라며 못 알아보고요, 하하하".
드라마에서 악귀는 '검은 바다'에서 고개를 들며 등장한다. 악의 심연에서 악귀가 떠오를 때 그 악귀는 사람(진선규)을 잠식한다. 이 촬영을 정유미는 2m 깊이의 수조에 들어가 받침대를 밟고 올라오며 찍었다. 몸이 둥둥 뜨는 그를 가라앉히기 위해 수조엔 물엿이 잔뜩 들어갔다.
새까만 물이 젖과 꿀처럼 입안으로까지 흘러내리며 하얀 이가 까맣게 물들어 갈 때 악귀의 섬뜩함은 깊어졌다. "그 단 검은 물을 많이 마셨죠. 인체에 무해한 색소로 만들어 탈이 나진 않았어요. 다만 촬영 후 일주일 동안 검은 물이 귀로 나오더라고요." 이렇게 고생하며 악귀를 표현한 여배우는 목소리도 영화 '반지의 제왕'에서의 골룸처럼 허스키하게 긁어가면서 냈다. 그 소리를 촬영 스태프들이 "듣기 싫다"고 할수록 그의 희열도 커졌다. "오디션에서 추여사(염혜란)와 시즌1의 백향희(옥자연)의 대사가 주어졌어요. '악귀와 내면으로 이야기하는 장면이 있다'고 해 1인 2역처럼 목소리를 달리 내 연기했죠. 감독님이 그걸 인상 깊게 본 것 같아요. 언제 이런 경험을 해보겠냐는 마음으로 도전했죠." 얼굴 노출을 포기한 배우가 '신스틸러'가 된 배경이다.
2002년 대학로에서 연기를 시작한 정유미는 박혁권 김신록 등이 거쳐 갔던 극단 드림플레이에서 연기를 다졌다. 그는 드라마 '좀비탐정'(2020)에서도 얼굴을 분장으로 죄다 가린 뒤 좀비로 나왔다. '얼굴 없는 배우'에겐 아이러니하게도 요즘 섭외가 잇따른다. 드라마 '웰컴 투 삼달리' 촬영을 앞둔 그는 8일부터 24일까지 김재엽이 연출하는 연극 '자본3: 플랫폼과 데이터'로 무대(서울 연우소극장)에 오른다. "아버지가 서울로 용달차 끌고 올라와 제가 살던 옥탑방에서 짐을 뺀 적이 있어요. 연기하는 데 반대가 심했거든요. 삭발도 했죠. 앞으로도 포기하지 않으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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