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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서 쿠데타가 잦은 이유?... "민주주의 이식 실패, 시민들은 환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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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서 쿠데타가 잦은 이유?... "민주주의 이식 실패, 시민들은 환호"

입력
2023.09.01 04:30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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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제르 이어 가봉서 또 쿠데타... "3년 새 8번"
'56년 장기집권' 부패·무능 정부에 민심 돌아서
민주주의 표방 정권 축출… 러·중 영향력 키우나

쿠데타를 일으킨 아프리카 가봉 군인들이 지난달 30일 수도 리브르빌에서 과도 지도자로 임명된 브리스 올리귀 은구마 장군을 헹가래 치고 있다. 리브르빌=AP 연합뉴스

쿠데타를 일으킨 아프리카 가봉 군인들이 지난달 30일 수도 리브르빌에서 과도 지도자로 임명된 브리스 올리귀 은구마 장군을 헹가래 치고 있다. 리브르빌=AP 연합뉴스

아프리카가 민주주의의 위기를 맞고 있다. 지난 7월 말 니제르에 이어, 가봉에서도 선거로 뽑힌 대통령이 군부에 의해 쫓겨났다. 한 달 만에 아프리카 대륙에서 일어난 두 번째 쿠데타다. 2020년 이후로 따지면 벌써 여덟 번째다.

직접적 이유는 당연히 정부의 실정이다. 무능하고 부패한 정권은 빈곤과 폭력에 내몰린 국민을 돌보지 않았다. 실망과 분노는 쿠데타 지지로까지 이어졌다. 하지만 쿠데타가 '나쁜 통치'의 해결책이 될 수 있을까.

"선거 무효" 가봉 군부의 쿠데타

지난달 30일(현지시간) 가봉 군부는 국영 TV 방송을 통해 군사 쿠데타의 주역 중 한 명인 브리스 올리귀 은구마 장군이 새 과도 정부 지도자인 '재건위원회 의장'에 선출됐다고 밝혔다. 나흘 전(26일) 치러진 대선에서 3연임을 확정한 알리 봉고 온딤바 대통령은 축출돼 가택 연금 상태가 됐다.

"선거 결과는 무효"라며 군부가 내세운 쿠데타 명분은 '56년 장기독재 종식'이다. 봉고 온딤바 대통령은 42년 장기 집권한 부친 오마르 봉고 온딤바 대통령(1967~2009년 재임)의 뒤를 이어 14년간 이 나라를 통치해 왔다. 사실상 '세습 정치'였다.

쿠데타 소식에 가봉 국민들은 "해방됐다!"를 외치며 환호했다고 미국 CNN방송은 전했다. 거리로 쏟아져 나온 시민들은 춤추고, 군인들을 향해선 박수 쳤다. '아프리카 리스크 컨설팅'의 타라 오코너 디렉터는 "수십 년간 이어져 온 왕조 스타일 정치가 깊은 분노를 산 것"이라며 "니제르부터 말리, 부르키나파소 등 아프리카 서부·중부에서 발생한 쿠데타도 같은 맥락에서 봐야 한다"고 알자지라방송에 말했다. 약 40년간 장기 독재가 이어지는 카메룬, 콩고공화국 등에도 쿠데타가 번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알자지라에 따르면, 아프리카에선 2020년 8월 말리를 시작으로 차드, 기니, 수단, 부르키나파소(2회), 니제르, 가봉까지 최근 3년간 총 8회의 쿠데타가 일어났다. 1950년 이후 아프리카 대륙 54개국 중 45개 나라가 최소 한 차례의 쿠데타 시도를 겪었다. 총 214번의 정권 전복 시도 중 106건이 성공했다.

지난달 30일 군부의 쿠데타 소식에 가봉 국민들이 수도 리브르빌의 거리에 나와 국기를 흔들며 환호하고 있다. 리브르빌=AFP 연합뉴스

지난달 30일 군부의 쿠데타 소식에 가봉 국민들이 수도 리브르빌의 거리에 나와 국기를 흔들며 환호하고 있다. 리브르빌=AFP 연합뉴스


민주주의 이식 실패… 민심 이반 불렀다

그런데 유독 아프리카에서 쿠데타가 빈번한 이유는 무엇일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민주주의가 여전히 정착되지 못한 게 가장 큰 이유다.

니제르와 가봉은 1960년까지 프랑스의 식민 지배를 받았던 나라다. 300년 이상 서구 열강의 '먹잇감'이었다. 자로 잰 듯 반듯한 국경선이 그 증거다. 서방은 아프리카의 수많은 민족과 종족, 자연 경계를 무시하고 편의대로 식민지를 구획해 자원을 수탈해 갔다. 잦은 내전의 씨앗도 이때 뿌려졌다.

독립 후 민주주의 국가를 표방했으나 빈껍데기였다. 선거도 유명무실했다. 시민 참여나 법치 존중, 사법부 독립 등 민주주의 요소는 결여됐고, 정치권력 세습도 잦았다. 오랜 식민 지배로 국가 운영 능력을 배양할 기회와 역량이 부족했던 탓이다. 정권은 무능한 데다 부패했고, 경제난까지 겹쳤다. 최근 들어선 코로나19 대유행,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까지 터지면서 빈곤을 부채질했다.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오랫동안 서방의 지지하에 명목상 민주주의 통치를 했던 정권이 국민에게 번영과 기회를 제공하는 데 실패했다"고 짚었다. 되레 정권은 서방의 꼭두각시로 비쳤고, 반감은 극에 달했다. '식민 지배→잦은 내전→경제난·정치 불안→민심 이반→쿠데타'라는 불행한 경로를 상당수 아프리카 국가가 밟게 된 배경이다.

지난 7월 20일 니제르 수도 니아메에서 수천 명의 군중이 니제르 국기와 러시아 국기를 들고 쿠데타 지지 집회를 하고 있다. 니아메=로이터 연합뉴스

지난 7월 20일 니제르 수도 니아메에서 수천 명의 군중이 니제르 국기와 러시아 국기를 들고 쿠데타 지지 집회를 하고 있다. 니아메=로이터 연합뉴스


서방 영향력 약화…러시아·중국엔 기회

식민 지배의 상처가 여전한 아프리카 대륙을 넘보는 '제국'은 지금도 있다. 미국과 유럽의 입김이 줄어드는 틈을 호시탐탐 노리는 중국과 러시아다.

니제르에는 프랑스와 미국 등의 군대가 대테러 작전을 명분으로 주둔 중이지만, 쿠데타를 사전에 억제하지 못했다. 내정 문제엔 신중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반면 러시아는 민간용병기업 바그너그룹을 내세워 직접 분쟁에 개입하고 있다. 대가로 각종 이권을 챙긴다. 실제로 말리와 부르키나파소의 군정은 프랑스군을 몰아내고, 바그너 용병을 끌어들였다.

중국도 일대일로(육·해상 실크로드)를 내세워 아프리카에서 경제적 영향력을 키우고 있다. 가봉의 최대 무역 파트너로, 석유와 망간 등 광물 자원까지 쓸어가고 있다고 WSJ는 전했다.

국제사회와 주변국들은 한목소리로 우려를 표했다. 스테판 뒤자리크 유엔 대변인은 사무총장 명의 성명에서 "선거 이후의 위기를 해결하려는 수단으로 벌어진 쿠데타 시도를 단호히 규탄한다"며 "모든 당사자가 자제력을 발휘하고 대화에 참여해 법치와 인권을 존중하도록 요청한다"고 밝혔다. 무사 파키 마하마트 아프리카연합(AU) 집행위원장도 "가봉의 상황을 깊이 우려하고 있으며 군부의 쿠데타 시도를 강력하게 규탄한다"고 군부를 비판했다.

권영은 기자
이유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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