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이애나 그린 포스터 '턴어웨이: 임신중지를 거부당한 여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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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가 변해야 개인도 행복해질 수 있습니다. 때로 어설픈 희망을 품기보다 ‘사회 탓’하며 세상을 바꾸기 위한 힘을 비축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우리는 차별에 찬성합니다' '민낯들' 등을 써낸 사회학자 오찬호가 4주에 한번 ‘사회 탓이 어때서요?’를 주제로 글을 씁니다.
내년 미국 대선에서 가장 큰 이슈는 ‘낙태’다. 1973년의 ‘로 대 웨이드’ 판결이 작년에 뒤집히면서 현재 주별로 허용과 금지를 자체적으로 정하고 있는데 논쟁이 한창이다. 낙태 금지를 반대하는 시위 현장에는 ‘옷걸이’가 종종 등장한다. 낙태가 금지되면, 여성은 출산하자고 다짐하는 게 아니라 위험한 불법시술을 선택한다. 그 절박함은, 혼자서 낙태를 시도하면서 여러 도구를 동원하는 아찔한 상황으로도 이어지는데 이때 철제 옷걸이가 자주 사용되었다. 그래서 여성들은 옷걸이를 들고 과거로 돌아가지 않겠다고 외친다. 미혼자에게 피임약을 나눠주는 게 불법이 아니라는 ‘아이젠슈타트 대 베어드’(1972년) 판결을 이끌어낸 당사자 빌 베어드도 옷걸이로 낙태하는 실태를 목격하고 낙태 찬성 활동가가 되었다.
이처럼 낙태는, 개별 입장이야 다르겠지만 ‘법’으로 통제될 성질이 아니다. 낙태 찬반과 낙태‘죄’ 찬반은 비슷해 보여도 결이 다르다. 낙태에 반대해서 낙태‘죄’에 찬성하겠지만 별 효과도 없고 사람만 위험해진다. 더 큰 문제는, ‘태아도 생명이라는’ 걸 강조하려다가 낙태를 하면 이런저런 문제를 겪는다면서 그릇된 정보를 나열해 고정관념을 사회에 떠돌게 한다는 거다. 좁게는, 시술이 위험하고 난임 확률을 높인다 등의 이야기로 당사자의 중요한 판단에 개입한다. 넓게는, ‘낙태한 여성치고’라는 추임새로 당사자를 무례하게 판단하게끔 한다. 끝에는 ‘엄마 되길 포기한 사람이 잘 살겠는가’와 같은 전통적인 빈정거림이 있다.
다 틀렸다. '턴어웨이: 임신중지를 거부당한 여자들'은 8년 동안 1,000여 명의 여성을 인터뷰하고 추적하여 낙태‘한’ 여성들에게 따라붙는 이런저런 설명의 오류를 냉정하게 짚는다. ‘턴어웨이’는 낙태하려다가 거절당한 여성들을 뜻한다. 저자는 이 거절이 여성의 인생 계획이 ‘거부당하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의미에서 ‘턴어웨이 연구’를 수행해 원하지 않는 임신을 중지하는 게 왜 권리여야 하는지를 촘촘하게 짚는다.
의학적 시스템 안에서 이루어지는 낙태는 안전하다. 사랑니 발치보다도 합병증 발생률이 낮다. 난임은 입증된 바 없다. 그리고 제일 중요한데, 원하지 않는 임신을 이어가지 않겠다고 자발적으로 결정한 여성들은 전혀 우울하지 않고 행복하게 인생을 살아간다. 과거를 후회하지 않는 건 당연하다. 생명을 천시해서가 아니다. 그 중대한 순간에 ‘스스로’ 결심을 해서다. 엄마 되길 포기해서도 아니다. 낙태하는 사람들 중에는 이미 엄마인 사람이 많다.
저자는 임신 중지 결정이 ‘쉬워지도록’ 사회가 책임을 져야 함을 강조한다. 여기서 ‘쉽게’는 가볍다가 아니라 자신의 상황을 온전히 이해한 후, 단호하게 판단하고 실천할 수 있는 배경이다. 병원에 빨리 접근해 안전하게 시술받고 이후에도 사회적 편견에 구속받지 않는 편한 삶이 보장되어야 한다. 낙태가 ‘죄’가 되면 어느 것도 가능하지 않을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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