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금 아닌 백성·길채 위해 움직이는 장현부터
철부지에서 주체적 여성으로 거듭난 길채까지
남궁민의 직감 또 통한 MBC '연인'
"제목도 잘 몰랐어요. '연인' 파이팅." SBS 드라마 '소방서 옆 경찰서 그리고 국과수' 제작발표회날, 주연 배우 김래원은 같은 날 첫 방송을 앞둔 경쟁작 MBC '연인'을 향해 이렇게 너스레를 떨었다. 남궁민은 이렇게 화답했다. "래원 씨, 전 자신 있어요."
초반엔 남궁민의 자신감이 무색할 정도였다. 병자호란을 배경으로 한 도령 이장현(남궁민)과 아씨 유길채(안은진)의 사랑 이야기는 어딘가 한가해 보였다. 하지만 3화부터 서서히 반전이 시작됐다. 방송 3주 차에 금토드라마 1위 자리로 올라서더니, 7회부턴 시청률 10%를 돌파했다. "(작품을 선택할 때) 분석하는 스타일이 아니고 '너무 재미있는데?' 싶으면 해요. 아직까진 잔머리를 쓰지 않고 느껴지는 걸 믿는데, '연인'도 그랬어요."(tvN '유퀴즈온더블럭'에서 남궁민의 말) SBS '스토브리그', MBC '검은 태양' 등 손대는 것마다 터지는 남궁민의 '직감'이 또 맞아 떨어진 셈이다.
'연인'의 모티프가 된 건 미국 남북전쟁 전후를 배경으로 하는 소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다. 스칼렛 오하라와 레트 버틀러는 각각 길채와 장현에 투영됐고, 남북전쟁 대신 병자호란을 끌어왔다. "시대적 고난이 개인의 서사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잘 풀어냈다"(윤석진 충남대 국문학과 교수)는 말처럼 '연인'은 멜로의 외피를 쓴 사람 이야기에 가깝다.
장현(남궁민)은 '국난'의 시대에 다소 튀는 인물이다. 오랑캐에 의해 남한산성에 갇힌 임금을 지키려 나서는 성균관 유생들과는 달리 "의병에 나설 생각이 없다"고 당당히 말한다. 조선시대에 '비혼주의'를 외치기도 한다. 하지만 금세 장현의 진심은 드러난다. "임금이 백성을 버리고 도망을 하였는데 왜 백성이 임금을 구해야 한단 말입니까." 결국 장현은 전쟁에 뛰어들지만, 그를 움직인 건 임금이 아닌 백성, 그리고 사랑하는 여인 길채다.
시청률 역시 이야기 전개와 함께 상승했다. 윤석진 교수는 "임금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해 결국 각자가 스스로를 지켜야 하는 설정이 각자도생의 시대인 현재를 떠올리게 한다"면서 "장현은 완벽한 영웅이 아닌 내적 갈등도 겪는 인간적 면모를 보여 흥미로운 캐릭터"라고 짚었다. 김성용 감독도 연출을 맡은 이유에 대해 "사극 형식을 빌렸지만 주인공의 모습은 현대인의 치열함과 크게 다르지 않다"면서 "현재를 가치 있게 사는 사람들이 위안 받았으면 한다"고 설명한 바 있다.
MBC '옷소매 붉은 끝동'(2021)에서의 궁녀 성덕임(이세영) 등 사극에서도 여성 캐릭터의 주체성이 부각되는 최근 트렌드도 반영됐다. 길채(안은진)는 초반 철없는 아씨처럼 비치지만, 전쟁을 겪으며 입체적 인물로 성장한다. 피난 과정에서 강한 리더십과 기지를 발휘해 친구를 살리고, 부상 병사를 돕는다.
흥행에는 외부 요인도 작용했다. 경쟁작 '소방서 옆 경찰서 그리고 국과수'에서 서브 남자 주인공 손호준이 3회 만에 갑작스럽게 사망, 인기몰이가 주춤하면서 '연인'에겐 호재가 됐다. 남은 변수는 '연인'의 편성 방식이다. 총 20회인 '연인'은 두 파트로 나눠 방송된다. MBC에서 기획 단계부터 파트제를 도입한 건 최초다. 파트 1은 이제 2회 만을 남겨뒀다. 파트 2는 오는 10월 방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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