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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들면 딴사람 되는 남편... 불치병인가? 귀신 들린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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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들면 딴사람 되는 남편... 불치병인가? 귀신 들린 건가?

입력
2023.08.29 11:50
수정
2023.08.29 19:08
22면
0 0

5월 칸영화제 초청 '잠' 6일 개봉
수면 행동장애로 공포 웃음 빚어
신인감독의 개성과 패기 감지돼

영화 '잠'은 결혼한 지 얼마 되지 않은 남자 현수가 어느 날 갑자기 잠만 들면 돌변하는 모습을 통해 공포와 스릴, 웃음을 빚어낸다.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영화 '잠'은 결혼한 지 얼마 되지 않은 남자 현수가 어느 날 갑자기 잠만 들면 돌변하는 모습을 통해 공포와 스릴, 웃음을 빚어낸다.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누가 들어왔어." 어느 날 밤 현수(이선균)가 자다 일어나 뜬금없이 던진 말이다. 집에 도둑이 침입했다는 말인지, 자신의 머릿속에 뭔가가 침투했다는 의미인지 알 수 없다. 무표정한 얼굴에 덤덤한 말투가 서늘하다. 다시 곯아떨어지는 현수를 보며 아내 수진(정유미)은 불안감을 감추지 못한다. 이날 이후 현수는 잠만 들면 딴사람으로 돌변한다. 갑자기 일어나 냉장고를 뒤져 날생선을 우걱우걱 먹거나 창밖으로 뛰어내리려고 한다. 현수와 수진은 병원을 찾아 '병'을 고치려 하나 증세는 나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영화 '잠'은 가장 편안해야 할 수면 시간이 악몽의 시간으로, 가장 안락해야 할 집 안이 공포의 공간으로, 가장 믿을 만해야 할 배우자가 통제할 수 없는 악당으로 각기 돌변한다는 설정부터가 흥미롭다. 공포물의 장르적 규칙을 주요 틀로 삼아 스릴러와 코미디를 다룬다. 무섭고 섬뜩하면서도 웃긴다. 가부장제와 독박 육아, 층간 소음 등 사회적 문제를 에둘러 다루며 현실을 비판하기도 한다. 사회성을 띠면서도 장르 영화로서의 재미를 놓치지 않는다.

현수의 수면 행동 장애는 진료나 투약으로도 진전되지 않는다. 수진의 어머니는 무속의 힘에 기대 현수의 증상을 치료하려 한다. 현수의 몸에 귀신이 붙었다는 무당의 진단이 나오면서 영화는 심령물로 급변한다. 현수와 수진은 신혼부부로 수진은 아기를 낳는다. 수면 중 현수의 폭력은 수진을 넘어 아기까지 위협하는 단계에 이른다. 현수에게 깃든 무의식적 폭력성은 어쩌면 전통적인 남성성에서 비롯된 것인지 모른다고 영화는 암시한다. 마지막 장면은 꽤 상징적이다. 배우인 현수가 연기를 한 건지, 심령 현상이 정말 벌어진 건지, 수진의 환각인지 알 수 없게 표현하며 관객에게 해석의 몫을 남긴다.

현수가 잠만 들면 이상 행동을 하자 아내 수진은 남편을 더 이상 믿을 수 없게 된다.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현수가 잠만 들면 이상 행동을 하자 아내 수진은 남편을 더 이상 믿을 수 없게 된다.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잠'은 유재선 감독의 장편영화 데뷔작이다. 유 감독은 각본을 쓰기도 했다. 유 감독은 봉준호 감독의 '옥자'(2017) 연출부 출신이다. '잠'은 지난 5월 열린 제76회 칸국제영화제 비평가주간에 초청됐다. 비평가주간은 우수 신인감독 등용문으로 유명하다. 유 감독은 '잠'에서 신인답지 않게 여러 장르적 요소를 능숙하게 다룬다. 현수가 뛰어내리려고 하는 모습처럼 투박하게 묘사된 장면이 있기도 하나 전체적으로 빼어난 연출력이 감지된다. 화면 구성과 편집 등 영화 전반을 제어해 자기 색깔을 드러내려는 신인 감독의 패기가 느껴진다. 한국 상업 영화에서 오랜만에 마주하게 되는 점이다. 6일 개봉, 15세 이상 관람가.

라제기 영화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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