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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로운 노동' 프리랜서 허울 속에... 플랫폼 노동자 61% "아파도 일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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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로운 노동' 프리랜서 허울 속에... 플랫폼 노동자 61% "아파도 일해요"

입력
2023.09.04 04:30
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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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만 플랫폼 노동자의 그늘: 300명 심층 설문조사 해보니>
주 25.6시간 근로, 월 157만 원 벌어
업종별로 근로시간·소득 천차만별
플랫폼 노동자 급증에 단가는 급감
극한 경쟁에 "아파도 일했다" 61%

배달의민족 배달 기사 '배민 라이더'들이 단체교섭 최종 결렬에 따라 하루 동안 파업을 개시한 올해 5월 5일 오전 서울 강남구 우아한청년들 자회사 '딜리버리N'에 배달용 오토바이들이 줄줄이 주차되어 있다. 연합뉴스

배달의민족 배달 기사 '배민 라이더'들이 단체교섭 최종 결렬에 따라 하루 동안 파업을 개시한 올해 5월 5일 오전 서울 강남구 우아한청년들 자회사 '딜리버리N'에 배달용 오토바이들이 줄줄이 주차되어 있다. 연합뉴스

"(플랫폼이) 알고리즘 실험을 자주 하는 것 같아요. 뭔가 자주 바뀌는 것 같긴 한데, 정확히 뭐가 바뀌는지는 몰라요. 신뢰는 없어요. 그래도 돈 벌려면 시키는 대로 일할 수밖에 없죠." (배달라이더 정모씨)

"제일 받아들이기 힘든 부분은 왜 낮은 평을 받았는지 알기도 힘들고 소명할 기회가 없다는 거예요. 일방적으로 평가받고 그게 그냥 배차로 이어지니 스트레스죠." (플랫폼택시 기사 A씨)

국내 플랫폼 노동자 수는 지난해 기준 80만 명으로, 15~69세 전체 취업자의 3%에 도달했다. 약 10년 전 처음 등장했을 때만 해도 개념조차 생소하던 플랫폼 노동은 이제 음식 배달과 택시뿐 아니라 가사·돌봄, 교육, 디자인, 웹툰·웹소설 창작 등 일상생활에서 쉽게 접할 수 있게 됐다. 재작년(66만 명) 대비 연간 종사자 증가율이 20%를 웃도는 빠른 신장세, 인공지능(AI) 발달에 힘입은 전방위적 노동의 플랫폼화를 감안하면 플랫폼 노동자는 이제 우리 취업시장의 한 축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플랫폼 노동은 구직자가 시간과 장소의 구애 없이 여러 계약을 동시에 맺고 일할 수 있는 이른바 '긱 경제(Gig Economy)'의 출현으로 여겨져 주목받았다. 그러나 실상은 이런 '자유로운 노동'에 대한 기대와 사뭇 다르다. 플랫폼 기업이 일감 중개, 서비스 평가, 단가 책정 등에 관여하는 새로운 노동 환경에서, 플랫폼 노동자들은 근로자로서 보호도, 프리랜서로서 자유도 제대로 누리지 못한 채 플랫폼이 추구하는 '효율적 인력 관리'에 스스로를 맞추고 있었다. 한국일보는 일하는시민연구소와 함께 플랫폼 노동자 300명에 대한 설문조사 및 일부 심층 인터뷰를 통해 플랫폼 노동자들이 어떤 상태에 놓여있는지 살펴봤다.

월평균 총수입 156만 원... 코로나 시기 폭증한 플랫폼 노동자

직종별 월 평균 수입 그래픽=강준구 기자

직종별 월 평균 수입 그래픽=강준구 기자

한국일보와 일하는시민연구소가 올해 6월 엠브레인리퍼블릭에 의뢰해 35개 업종(분석은 8개 업종으로 대분류)의 플랫폼 노동자 3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 이들이 플랫폼 및 그 외 노동을 통해 벌어들이는 월평균 수입은 156만8,000원이었다. 물류배송·대리운전이 215만6,000원으로 가장 많았고, 문서작성·번역·코딩은 평균 수입이 112만6,000원으로 낮은 편이었다.

평균 주당 노동시간은 25.6시간이었는데, 응답자 중 과외·레슨 등 15시간 미만 초단시간 노동자(43.3%) 비중이 높았던 영향이 컸다. 주 52시간 이상 일하는 노동자가 특히 많은 업종은 음식배달·심부름(30%)과 가사·청소·돌봄(21.4%)이었다. 일을 구하는 데 2개 이상의 플랫폼 앱을 이용한다는 응답자는 46%로, 특히 문서작성·번역·코딩과 물류배송·대리운전의 경우 3개 이상을 이용한다는 답변이 많았다.

이들이 플랫폼 노동을 해온 지는 평균 2.4년이었고, 46.3%는 이전에 특수고용직(특고) 또는 프리랜서였다고 답했다. 비대면 선호로 플랫폼 서비스가 비약적으로 성장하던 코로나19 시기에 대부분 플랫폼 노동 시장에 뛰어들었다는 뜻이다. 디지털 라벨링(데이터 수집·가공) 일을 해온 지 3년이 된 최모씨는 "원래 프리랜서 디자이너로 일을 하다 코로나 때 일이 끊겼고, 그때 알바처럼 시작하게 됐다"라며 "(플랫폼은) 쉽게 접근할 수 있는 데다 허들이 높지 않다는 점이 장점이었다"고 말했다.

AI가 공정할 것이라는 '착각'... 일방적으로 따를 수밖에 없다

플랫폼 노동자 경쟁 및 공정성 인식 그래픽=강준구 기자

플랫폼 노동자 경쟁 및 공정성 인식 그래픽=강준구 기자

플랫폼 노동은 특성상 노동자가 플랫폼 회사와 개별적으로 계약을 맺거나 근로조건을 조율하기가 어렵다. 플랫폼의 일괄적인 지시와 평가에 따라야 하고, 그게 싫다면 다른 플랫폼을 통해 일감을 구하는 것 외엔 해결책이 마땅치 않다.

그런 만큼 플랫폼 노동자에게는 AI 알고리즘 등으로 구동되는 플랫폼 운용 방식이 공정하다는 믿음을 갖는 게 중요하다. 하지만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플랫폼 기업의 일감이나 작업량 배분이 공정하다고 생각하냐는 질문에 28.4%가 '그렇지 않다'고 답해 '공정하다'는 응답률(25.6%)보다 높았다. 특히 단가·보수 책정 공정성에 대해서는 '공정하지 않다'고 답한 비율(40.3%)이 '공정하다'(15.3%)에 비해 2.5배 이상 높았다.

플랫폼 운용의 효율성, 합리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플랫폼택시 기사 A씨는 "AI가 최단거리라며 불법주차된 차량이 가득한 좁은 골목길로만 안내하는 경우가 더러 있다"라며 "빠른 길로 가려고 다른 길로 돌아갔다가 괜히 손님과 시비 붙을 수 있기 때문에 그냥 더 오래 걸리더라도 AI를 따른다"고 말했다. 배달라이더 허모씨도 "냉면과 약과의 배달 건이 묶여있으면 당연히 냉면이 먼저 배달되는 게 좋은데, 배달앱은 약과 배달부터 하라고 시킨다"라며 "주소를 안 보여주니 임의로 순서를 바꿀 수도 없어 하라는 대로 하지만 상식적으로 이해 안 가는 경우가 많다"라고 말했다.

알고리즘이 공개돼 있지 않기 때문에 기업이 임의 조작하는 게 아니냐는 의심도 있다. 실제로 공정거래위원회는 올해 2월 카카오모빌리티가 가맹 택시인 '카카오T 블루'에 승객 호출을 몰아주기 위해 알고리즘을 조작했다며 시정명령 및 과징금 257억 원을 부과했다.

그럼에도 노동자들은 플랫폼 기업의 지시를 따를 수밖에 없다. 자율적 조정이 불가능한 구조이기 때문이다. 허씨는 "고객센터에 문제를 항의하면 콜이 전보다 덜 들어오는 것 같긴 한데 확인할 방법은 없다"라며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날 수밖에 없지 않냐"며 한숨을 쉬었다. 노동 조건도 마찬가지다. 웹소설 작가 이모씨는 "창작 분량과 연재 주기, 정산 방식 등 기업에서 일방적으로 내건 조건을 못 맞추면 다른 플랫폼으로 가라고 하니 사실상 선택권이 없다"며 "작가들 사이에서 (플랫폼 기업은) '아주 심한 양아치와 그냥 양아치로 나뉜다'는 말이 있을 정도"라고 말했다.

장시간 노동, 생계 위해선 선택이 아니라 필수

플랫폼노동자 지난 1년간 아파도 참고 일한 경험 그래픽=강준구 기자

플랫폼노동자 지난 1년간 아파도 참고 일한 경험 그래픽=강준구 기자

'일한 만큼 벌 수 있다'는 매력에 이끌려 플랫폼 노동에 뛰어든 사람들은 스스로를 장시간 노동으로 내몰고 있었다. 배달라이더 허씨는 "최근 62일간 하루도 안 쉬고 하루 10~12시간 일했다"라며 "돈을 벌 수 있을 때 벌자는 생각 때문"이라고 말했다. 디지털 라벨러 최씨는 "한 달에 1,000만 원 가까이 번 적이 있는데, 당시엔 밥도 컴퓨터 앞에서 먹으면서 자는 시간 빼고 한 달 내내 하루 12시간 이상 일했다"라며 "단순 업무라 기준만 맞추면 건당 돈이 쌓인다는 점이 장점"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플랫폼 노동에 뛰어드는 사람이 점점 많아져 경쟁이 심해지다 보니 단가는 낮아지고 있다. 수입을 유지하려면 더 많은 시간을 일해야 한다는 의미다. 디지털 라벨러 최씨는 "예전에 1박스(디지털 라벨링 단위)에 100원 정도였다면 지금은 3~5원 수준"이라며 "30원을 잘못 적은 거 아니냐고 문의하기까지 했는데 3년 새 단가가 그만큼 떨어졌다더라"고 말했다. 배달라이더 정씨도 "작년 이맘때와 비교하면 콜 수도 줄고 금액도 많이 낮아졌다"라며 "예전엔 한두 건이라도 더 배달하면 확실히 더 벌 수 있다는 생각이 있었는데, 요즘은 4,000~5,000원 더 벌자고 목숨을 거나 싶어 콜을 포기하는 경우도 많아졌다"고 털어놨다.

불확실함 속에서 익명의 경쟁자들과 경쟁하다 보니 노동자들은 몸이 아파도 참고 일하는 경우가 많았다. 언제 일이 끊길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크기 때문이다. 설문조사 응답자의 61.3%는 지난 1년간 아파도 참고 일한 경험이 있다고 답했고, 특히 가사·청소·돌봄 직종에서는 '매우 많다(거의 매일)'는 응답이 14.3%나 됐다. 아파도 참고 일한 이유 중 1위로 꼽힌 건 '소득·보수 단절 등 경제적 문제 때문'(55.4%)이었다.

이런 가운데 플랫폼 노동에 생계를 의존하는 사람의 비중은 늘어나고 있다. 고용노동부와 한국고용정보원이 지난해 말 발표한 '2022년 플랫폼 종사자 규모와 근무 실태' 조사 결과에 따르면 지난해 플랫폼 노동을 주업으로 삼는 이들은 전체 플랫폼 종사자의 57.7%로, 전년과 비교해 비율은 10.5%포인트, 인원수는 47.0%(14만7,000명) 각각 증가했다. 이번 설문조사에서도 응답자의 51.7%는 플랫폼 노동이 주업이라고 답했다.

설문조사 데이터를 분석한 윤자호 일하는시민연구소 연구위원은 "플랫폼의 장점은 일감 찾는 게 투명하다는 것이기 때문에, 실업률 높고 불안한 노동시장에 던져진 구직자에게 도움이 되는 지점도 있다"면서도 "플랫폼이 성숙해갈수록 노동 조건이 안 좋아지는 건 보편적인 현상인데, 플랫폼 노동자들은 흩어져서 일하기 때문에 협상이나 저항이 어렵고 때문에 새로운 문제가 생겨날 확률도 높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아직도 플랫폼 노동 시장은 성숙기에 접어들지 못했다고 본다"라며 "플랫폼도 노동을 다루는 면에서 더 성장해 가야 하고, 정부는 정책으로 이를 세심하게 보완하고 안전망을 만들어 나가야 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곽주현 기자
오지혜 기자
최나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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