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도도 모르고, 무작정 '예산 낭비'
호우 특보 와중 해외 출장 나서
현지 도착해서야 '정부가 권한'
3박 5일 성과는 단순 간담회 3건
본보 취재 하자 부실 출장 보고서
이상익 전남 함평군수가 지난달 초 "계절근로자를 유치하겠다"며 캄보디아를 찾았지만, 협약도 맺지 못하고 그냥 돌아온 것으로 나타났다. 캄보디아는 계절근로자 협약 권한이 지방자치단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정부에 있는데, 이 같은 사실도 제대로 확인하지 않은 채 무작정 해외 출장에 나서, 비난을 받고 있다. 특히 함평군은 정부 국외출장연수 정보시스템에 출장보고서도 등록하지 않다가 한국일보 취재가 시작되자 하루 내용이 두 줄 남짓한 보고서를 올린 것으로 알려졌다.
28일 함평군 등에 따르면 이상익 함평군수와 함평군의회 의장 등 10여 명은 지난달 5일부터 9일까지 5일 간 일정으로 캄보디아 해외 출장길에 나섰다. 당시 함평군에선 기록적 집중 호우로 인명 피해까지 발생한 상황이었지만, 계절근로자를 유치하겠다는 명목으로 이를 추진했다. 출장비 1,607만 원은 전액 함평군 예산을 사용했다.
이 군수 일행은 일정 대부분을 특별한 스케줄 없이 소요한 것으로 나타났다. 함평군이 공개한 당시 출장 내역에 따르면 3박 5일 간 총 3건의 간담회를 가진 게 모든 해외 출장 일정의 전부다. 첫 날인 지난달 5일은 캄보디아 현지에 도착하는 것으로 모든 일정을 마무리했고, 6일은 오전 10시쯤 캄보디아 경제사절단 리치사이협회와 간담회를 갖고 일정을 끝냈다.
또 7일은 애초 출장 목적이었던 외국인 계절근로자 업무협약(MOU)이 있는 날이지만 ‘우호 교류 의사’ 확인만 하고 돌아왔다. 이들 일행은 이날 오전 10시쯤 계절근로자 MOU 체결을 위해 캄보디아 시아누크빌을 방문했다. 그러나 현지에 도착하고 나서야 계절근로자 교류 협약을 위한 최종 권한이 지자체가 아닌 캄보디아 노동부에 있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된 것.
함평군 관계자는 “계절근로자 입국 관련 업무협약은 각 해외 기초지자체장과 맺었기 때문에 당연히 지자체장과 업무협약을 하는 것으로 알고 방문했다”며 “현지에서 급하게 캄보디아 노동부 장관과 면담을 추진했으나, 사전에 논의되지 않아 일정을 맞추기 어려웠고 결국 그냥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고 해명했다. 그러면서 “계절근로자 관련 협약이 난무하다 보니 이를 막기 위해 정부가 최근 장관까지 관련 기준을 상향 조정하면서 발생한 착오”라고 덧붙였다.
하지만 ‘최근 계절근로자 기준이 달라진 탓’이라는 함평군 해명과는 달리 캄보디아의 경우 애초부터 계절근로자 심사 권한이 중앙부처에 있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지자체장이 직접 해외까지 가는 일에 제대로 된 사전 조사도 없이 출장길에 오른 셈이다.
이 군수 일행은 계절근로자 MOU가 무산되자 기념 촬영과 간담회를 갖고 오후엔 인근 사원과 시장을 방문하는 것으로 모든 일정을 소화했다. 8일 역시 오전 일정이 전무하고 오후 3시 캄퐁스페우 오랄 군수 미팅이 전부였다. 9일은 국내 복귀로 해외 출장 일정을 마무리했다.
함평군은 출장 이후 작성해야만 하는 해외 출장보고서도 공개하지 않다가 본보 취재가 시작되자 ‘단순 실수’라며 한 달여만인 지난 25일에야 부랴부랴 공개했다. 그러나 공개된 보고서는 8페이지 분량이었고, 대부분 기념사진에 할애했다. 출장 내용은 하루에 2줄, 결론은 300자 남짓이다. '캄보디아 주요 문화·예술·관광·농업 분야 등의 정책 교류 등 우호 교류 의사 확인', '외국인 계절근로자 송출에 대한 긍정적 논의',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한 교류'가 함평군이 출장보고서를 통해 공개한 이번 해외 출장의 성과다.
함평군 관계자는 “방문 예정지역 간 거리가 멀다 보니 동선이 길어져 이동에 대부분 시간을 소요한 것이지 관광이 목적은 아니었다”며 “현지에서 캄보디아 아가씨들이 한국으로 시집오고 싶다는 이야기를 듣고 관련 TF팀을 꾸리는 성과를 얻을 수 있었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군민 A씨는 "군수나 군의회 의장, 공무원 등 해외출장 간 10명 모두가 제도도 모르는 결과를 자초했다"면서 "국내는 물난리로 군민들이 불안에 떨고 있는데, 정작 지도자들은 군 예산으로 놀고 왔다"고 비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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