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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은행, 물가안정의 파수꾼이자 금융안정 최후의 보루

입력
2023.08.29 04:30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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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비밀의 사원에서 경제문제 해결사로
1668년 설립된 스웨덴 중앙은행이 최초
1차대전 후 독일, 배상금 마련에 돈 찍어
0.5마르크 빵이 4000억 배로 껑충 뛰어
인류사에 씻을 수 없는 상처, 2차대전으로
이후 중앙은행의 최우선 목표는 '물가안정'
유동성 위기 시엔 '최종 대부자' 역할도

편집자주

주로 수치로 묘사되는 경제학은 추상적인 사회과학의 영역입니다. 하지만 인간의 삶으로 결국 구현되는 것은 경제 현상이라고 다르지 않겠죠. 경제 분야 대표 국책연구기관인 한국개발연구원(KDI)의 연구원들이 문학과 역사학, 철학에 등장하는 경제 이야기를 소개하는 ‘인문학 속 경제’를 3주에 한 번씩 화요일마다 연재합니다.


1907년 금융위기를 다룬 책 '1907년의 혼돈' 표지.

1907년 금융위기를 다룬 책 '1907년의 혼돈' 표지.


제이피 모건과 미국의 중앙은행

1907년 10월 구리회사인 유나이티드 회사의 주가가 폭락하자 회사에 거액을 투자한 당시 미국 3위 신탁회사 니커보커(Knickerbocker)에는 뱅크런(대규모 자금인출)이 발생했다. 뱅크런 사태는 다른 신탁회사까지 번져 월스트리트는 붕괴 직전에 이르렀다. 이때 제이피 모건은 뉴욕의 은행장들을 자신의 도서관에 가두고 금융시장 안정화 대책에 합의하기 전까지 문을 열어주지 않았다. 이는 1907년 금융위기에서 미국을 구제한 제이피 모건의 유명한 일화다(The panic of 1907). 마치 올해 초 실리콘밸리은행(SVB)에 뱅크런이 발생했을 때 미국 중앙은행의 역할과 흡사하다. 1907년 금융위기를 계기로 미국은 금융위기가 발생했을 때, 이를 해결할 수 있는 중앙은행의 필요성을 절감했고 1913년 마침내 중앙은행을 설립하게 됐다.


1920년대 독일에서는 초인플레이션으로 화폐 가치가 폭락했다. 돈의 가치가 없어지면서 지폐는 쓰레기처럼 취급됐다. 히스토리디파인드

1920년대 독일에서는 초인플레이션으로 화폐 가치가 폭락했다. 돈의 가치가 없어지면서 지폐는 쓰레기처럼 취급됐다. 히스토리디파인드


중앙은행은 무슨 일을 할까?

심장이 혈액의 양을 조절하여 우리가 건강하게 생활할 수 있도록 하는 것과 같이 중앙은행은 돈의 양을 조절하여 물가와 금융시장을 안정시킨다. 한마디로 중앙은행은 물가안정의 파수꾼이자 금융안정의 최후의 보루인 셈이다.

물가 상승 즉, 인플레이션은 속도가 빠르지 않을 때는 기업의 수익이 증가하고 일자리가 창출돼 경제성장을 촉진하기도 한다. 그러나 물가 상승이 매우 빠르게 되면 가계 생활이 궁핍해지고 미래 생활을 예측할 수 없게 해 경제에 매우 큰 해악을 끼친다. 1920년대 독일(바이마르 공화국)의 초인플레이션은 인플레이션 해악의 극단적 사례를 보여준다. 제1차 세계대전에 패한 독일은 전쟁 배상금을 지불하기 위해 돈을 마구 찍어 냈다. 물가가 걷잡을 수 없게 올라 0.5마르크짜리 빵 한 덩어리가 2,000억 마르크로 4,000억 배에 달하게 되었다(영화 ‘도박사 마부제 박사’(1922)). 이런 초인플레이션은 실물자산을 가진 사람들은 더 부유하게 만든 반면 대다수의 국민을 벼락거지로 만들었다. 히틀러와 나치당은 패전국이라는 상실감에 빠진 독일 국민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던지며 집권했으며, 제2차 세계대전이라는 인류사에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겼다.

물가가 널뛰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는 돈의 양을 적절하게 조절하는 것이 필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국민에게 물가를 안정시키겠다는 의지를 보여주는 것이다. 이를 위해 많은 중앙은행들은 물가안정목표제(inflation targeting)를 실시하고 있다. 물가안정목표제는 국민에게 물가를 안정시키겠다는 중앙은행의 약속으로, 예를 들면 향후 5년 동안 물가 상승률을 2% 이내로 유지하겠다고 천명하는 것이다. 마치 율리시스가 사이렌의 유혹에 빠지지 않도록 돛대에 묶도록 한 것처럼 중앙은행이 인플레이션이라는 망령에 빠지지 않도록 스스로를 구속하는 것이다. 한편, 대부분의 중앙은행은 물가안정목표제를 달성하기 위한 수단으로 금리정책이라는 고삐를 활용해 돈의 양을 조절한다.

신체의 반은 새이고 반은 사람인 사이렌은 아름다운 노랫소리로 뱃사람을 유혹해 배를 난파시킨다. 트로이 전쟁의 영웅 율리시스는 이 유혹에 빠지지 않기 위해 선원들의 귀를 왁스로 막고, 자신은 움직이지 못하도록 돛대에 묶으라고 지시한다. 중앙은행도 인플레이션이라는 망령에 빠지지 않도록 물가안정목표제를 세워 스스로 구속한다. 존 윌리엄 워터하우스의 1891년 작품.

신체의 반은 새이고 반은 사람인 사이렌은 아름다운 노랫소리로 뱃사람을 유혹해 배를 난파시킨다. 트로이 전쟁의 영웅 율리시스는 이 유혹에 빠지지 않기 위해 선원들의 귀를 왁스로 막고, 자신은 움직이지 못하도록 돛대에 묶으라고 지시한다. 중앙은행도 인플레이션이라는 망령에 빠지지 않도록 물가안정목표제를 세워 스스로 구속한다. 존 윌리엄 워터하우스의 1891년 작품.


중앙은행의 또 다른 중요한 역할은 금융위기를 구제하는 것이다. 우리가 건강하게 생활하기 위해서는 장기, 혈액, 신경 등 다양한 인체 구성요소가 서로 상호작용하면서 원활하게 작동해야 하듯 경제활동도 가계, 기업, 정부 등 각 구성요소들이 금융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상호작용(거래)을 하고 있다. 특히 금융거래는 서로 밀접하게 연결돼 있어 어느 한 곳에서 문제가 발생(금융경색)하면 도미노처럼 삽시간에 전체를 붕괴(금융시스템 붕괴)시킬 수 있다. 중앙은행은 금융위기가 발생했을 때 금융시스템 위기로 번지지 않고 조기에 진화될 수 있도록 경제 내에 유동성(돈)을 충분히 공급하는 역할을 한다.

경제주간지인 이코노미스트 편집장이었던 월터 배젓(Walter Bagehot)은 중앙은행의 금융위기 해결사 역할을 강조하기 위해 금융 위기 시 중앙은행은 최종 대부자(lender of last resort)로서의 임무를 충실히 수행해야 한다고 설파했다(롬바드 거리, Lombard Street: A Description of the Money Market, 1873). 서브프라임 모기지 대출 부실 등 부동산 버블 붕괴로 발생한 글로벌 금융위기를 해결하기 위해 금리를 제로 수준까지 낮추고 국채 매입을 통해 대규모 유동성을 시중에 직접 풀었던 정책(양적완화)은 중앙은행의 대표적인 최종 대부자 역할의 사례이다.



세계에는 어떤 중앙은행들이 있을까?

최초의 중앙은행은 1668년에 설립된 스웨덴 중앙은행(Sveriges Riksbank)으로 중앙은행의 역사는 수백 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하지만 오늘날과 같은 통화·금융정책 결정자로서의 면모를 갖추게 된 것은 1900년대 이후의 일이다. ‘중앙은행(central bank)’이라는 단어는 앞서 소개한 1873년 월터 배젓의 ‘롬바드 거리’에서 처음 사용됐다.

중앙은행이 만들어진 본래의 목적은 물가안정이나 금융시스템 안정을 위해서가 아니라 정부 재정을 충당하기 위해서였다. 1694년에 세워진 영란은행(Bank of England)은 프랑스와의 전쟁 비용을 대기 위해 설립됐다. 특히, 1797년에 프랑스가 선전포고하자 윌리엄 피트 더 영거 당시 영국 수상은 중앙은행에 도움을 요청했다. 만평가인 제임스 갈레이는 이 상황을 젊은이(수상)가 노처녀(영란은행)에게 구애하는 모습으로 그렸고, 그 이후 영란은행을 ‘스레드니들 거리의 노처녀(Old Lady of Threadneedle Street)’라고 부르기도 한다.


영란은행을 묘사하는 스레드니들 거리의 노처녀에게 젊은이(윌리엄 피트 더 영거 당시 영국 수상)가 키스하고 있다. 제임스 갈레이 작품.

영란은행을 묘사하는 스레드니들 거리의 노처녀에게 젊은이(윌리엄 피트 더 영거 당시 영국 수상)가 키스하고 있다. 제임스 갈레이 작품.


한편, 미국의 중앙은행은 1913년 설립되었는데 연방준비제도(Federal Reserve System), 약칭으로 FRB 또는 Fed로 불린다. 미국은 건국 초기 연방정부의 권한을 제한하기 원하는 주정부의 견제와 금융권력의 집중을 우려해 중앙은행을 설립하지 않았다. 그러나 1907년 금융위기를 수습하는 과정에서 민간인 제이피 모건의 금융권력에 과도하게 의존하게 되면서, 정부가 금융을 통제해야 한다는 의견이 대두됐다. 다만 중앙은행이 창설되면 경제권을 중앙정부에 뺏길 수 있다는 각 주의 반발을 감안하여 12개 주에 준비은행(Federal Reserve)을 설치하고 워싱턴에 연방준비제도 이사회를 두는 형태로 중앙은행을 설립했다. 이후 연준은 월리엄 그레이더가 1987년 출간한 ‘사원의 비밀(secrets of the temple)’에서 ‘정부기관인 연방준비제도에 대해 어떤 면에서는 CIA보다 더 비밀스럽고, 대통령이나 의회보다 강한 권력을 지닌 곳’으로 묘사되면서 ‘비밀의 사원’이라는 별명을 얻게 됐다.

유럽중앙은행(European Central Bank)은 유럽연합의 출범과 함께 1998년 설립돼 프랑크푸르트에 본부를 두고 있으며, 스위스 바젤에 본부를 두고 있는 국제결제은행(Bank for International Settlement)은 중앙은행 간의 통화결제나 예금을 받아들이는 업무를 수행하는 중앙은행들의 중앙은행 역할을 하고 있다(바젤탑: 국제결제은행의 역사, 금융으로 쌓은 바벨탑, 2014). 1900년대 초 전 세계에서 18개만 존재했던 중앙은행은 2023년에는 179개로 크게 증가했다.

한국은행 전경. 한국일보 자료사진

한국은행 전경. 한국일보 자료사진


한국의 중앙은행은?

우리나라의 중앙은행은 한국은행(Bank of Korea)으로, 1950년 6월 12일 설립됐다. 한국은행은 창립 직후인 6·25전쟁 중에는 전쟁비용을 조달하고 전쟁으로 인한 인플레이션을 수습하는 데 업무의 역점을 두었으며 한국전쟁 이후에는 경제발전에 필요한 중추적 역할을 수행해 왔다. 개발경제 시대에는 경제성장에 필수적인 금융자금을 공급했으며 경제안정기 시대 이후에는 물가안정과 국제수지 개선을 위해 애써왔다. 한국은행은 설립 시에는 ‘중앙은행의 독립성과 중립성 보장을 위해 한국은행 총재가 금융통화위원회 의장을 맡도록 제도화’돼 있었으나, 1962년 경제개발계획을 추진하면서 정부의 수요에 따라 금융자원을 용이하게 동원할 수 있도록 금융통화위원회를 금융통화운영위원회로 변경하고 재무부 장관이 의장을 맡도록 제도를 개편했다. 1997년 12월 29일 한국은행법 개정으로 1998년 4월부터 금융통화위원회가 환원됐으며 한국은행 총재가 그 의장을 맡게 됐다. 그 과정에서 36년간 정부에 대한 예속은 ‘재무부 남대문 출장소’라는 피해 의식과 함께 통화정책 이외에는 관여하지 않는 ‘고독한 절간 한은사(寺)’라는 부작용을 야기하기도 했다.

지난 4월 한국은행은 6여 년간의 공사를 마치고 통합별관을 개관했다. 안정성과 효율성을 갖춘 현대화된 건물은 고대 그리스의 아고라처럼 ‘연결과 소통’의 구현에 초점을 두고 있다고 알려지고 있다. 마침 최근 한국은행은 통화정책뿐만 아니라 노동, 환경, 산업 등 경제 전 분야에 대한 연구 보고서를 수시로 발표하고 있다. 한국은행이 고독한 절간에서 나와 국민과 소통하면서 국내 유수의 싱크탱크를 넘어 국제적으로도 경쟁력 있는 지적 리더로서 자리매김하기를 기대해 본다.


구자현 KDI 글로벌 경제연구실장

구자현 KDI 글로벌 경제연구실장

구자현 KDI 글로벌 경제연구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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