샛노란 우산 뒤집어 놓은 듯 생긴 마타리 꽃
애써 가꾸지 않아도 한반도 전역에 살아
'쿰쿰한' 뿌리 향기마저도 약 되는 고마운 식물
편집자주
허태임 국립백두대간수목원 연구원이 격주 월요일 풀과 나무 이야기를 씁니다. 이 땅의 사라져 가는 식물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는 허 연구원의 초록(草錄) 이야기를 만나 보세요.
지천으로 마타리 꽃이 피었다. 애써 가꾸지 않아도 한반도 전역에 사는 식물, 마타리의 개화는 지금부터 초가을까지 이어진다. 어릴 때 나는 그 꽃이 피기 시작하면 다소 심란해졌다. 여름방학이 끝나고 있다는 뜻이었으므로. 마타리 꽃처럼 노랗게 뜬 얼굴로 밀린 방학 숙제를 어서 빨리 해결해야 했다. 반대로 어수선한 마음을 잠재워준 것도 마타리였다. 떼를 지어 핀 마타리 꽃 풍경에 홀리듯 다가가, 그 작은 꽃 한 송이 한 송이를 날마다 더 자세하게 관찰하다 보면 어느새 개학 이후의 생활에 적응해 있었으니까.
마타리의 꽃은 마치 샛노란 우산을 뒤집어 놓은 모양이다. 황순원의 소설 '소나기'에 마타리가 등장하는 대목을 처음 만난 게 중학교 2학년 때였던가. 소설 속 주인공 소녀는 자기 앞에 핀 마타리를 바라보며 소년에게 묻는다. "그런데, 이 양산같이 생긴 노란 꽃이 뭐지?” 그 꽃 모양을 흉내 내듯이 두 손을 모아 양산받듯이 해 보이면서. 정말로 그렇게 생겼다. 식물분류학 용어로 ‘산형화서(傘形花序)’ 또는 ‘우산모양꽃차례’라고 한다. 자잘한 별을 닮은 샛노란 꽃 수십 송이가 저마다 가느다란 꽃자루를 달고 한 지점으로 모이는 방식으로 종국에는 전체적인 꽃차례가 우산살 형태를 이루는 것이다.
마타리는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일본과 몽골 등 동북아시아에 자생하는 식물이다. 서양에서는 마타리를 이국적인 동양의 식물 ‘금빛레이스(Golden lace)’라고 소개하며 ‘정원사가 사랑하는 식물 10위’ 안에 넣는다. 예쁠 뿐만 아니라 자람이 까다롭지 않아 관리마저 수월하니 가드너들의 사랑을 받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지나치게 왕성한 생명력으로 너무 빨리 자라서 정원의 다른 식물을 뒤덮기도 하므로, 때로는 정원 돌보는 이들을 골치 아프게도 만든다.
그런데 마타리는 어쩌다가 마타리라는 이름을 얻게 되었을까? 항간에 떠도는 어원은 이렇다. 지게 위에 얹는 바구니를 닮았다고 그걸 가리키는 어느 지역의 방언 ‘바다리’를 따서 마타리가 되었다는 것과 꽃줄기가 가늘고 길어서 마치 훤칠한 말의 다리를 연상시킨다고 '마(馬)다리'에서 마타리가 되었다는 것. 옛날부터 구전된 식물의 이름일수록 지역별로 부르는 말이 달라 그 어원을 단정하기가 쉽지는 않다. 다만 기본명에 접두어나 접미사가 붙은 파생어가 많다는 것을 추정할 수는 있다. 그래서 나는 마타리라는 이름이 ‘터리풀’에서 비롯되었으리라 짐작하는 것이다. 터리는 털의 방언이다. 실제로 우리 식물 터리풀은 ‘터리개’라고도 부르는 먼지떨이를 거꾸로 꽂아 놓은 것처럼 생겼다. 마타리의 윤곽도 딱 그렇다. 터리풀을 닮았고 나물로 즐겨 먹기 때문에 접두어 ‘맛’이 붙어 지금의 마타리로 굳어졌을 것. 국내의 민속 식물을 기록한 자료에는 ‘맛터리’ 또는‘맛타리’라고 쓰여 있다. 마타리 새순을 따서 묵나물로 만든 후 다른 곡식과 섞어 계절 없이 즐겨 먹었다고도 설명한다.
마타리는 뿌리에서 나는 냄새로도 꽤 유명하다. 오래 묵힌 된장과도 같은 특유의 쿰쿰한 냄새 때문에 한방에서는 패장(败酱)이라고 부른다. '동의보감'은 “응어리진 피를 깨뜨려 고름을 물로 변화시키고, 산후의 모든 병에 쓰며 분만을 촉진한다”고 패장의 효능을 설명한다. 마타리와 거의 비슷한 모습으로 같은 시기에 하얀 꽃을 피우는 식물이 있다. 뚝갈이다. 마타리와 마찬가지로 새순을 나물로 먹기도 하고 뿌리는 약재로 쓴다. 한방에서는 그래서 마타리와 뚝갈의 뿌리를 통칭해서 패장이라 부른다. 마타리를 황화패장, 뚝갈을 백화패장으로 엄밀히 구분해서 부를 때는 꽃 색깔이 기준이 된다. 노란색은 마타리, 하얀색은 뚝갈.
황해도 황주 지방에 전해 내려오는 동요 ‘나물타령’에는 마타리와 뚝갈이 나란히 등장한다. “돌아보니 도라지/ ……/ 맡아보니 마타리/ 뜯어보니 뚜욱갓 '나물타령2'(창비 아동문고 66·신경림)” 그 전래동요를 듣고 따라 부르다 보면 나는 자연스럽게 돌아가신 할머니 생각에 잠긴다. 내가 전공한 식물분류학은 다양한 과학적 기술을 바탕으로 종과 종 사이의 관계를 밝히고 이름을 부여하는 학문이다. 마타리와 뚝갈을, 그보다 더 많은 식물을 일찍부터 내가 구분할 수 있었던 배경에 할머니의 가르침이 있었다. 마타리를 앞에 두고 이게 무슨 구린내냐며 코를 쥐던 어린 내게 할머니는 싱긋 웃으며 말씀하셨다. 그 고약한 냄새는 사람 몸에 약이 된단다. 우리에게 약이 되고 밥이 되고 꽃이 되는 마타리의 향기를 일찍이 할머니는 가르쳐주셨다. 살아 있는 모든 것들 사이에 존재하는 경계를 제대로 알기 위해서는 먼저 상대방의 편에 서서 바라봐야 한다는 것을 나는 그렇게 어렴풋이 익히기 시작한 것 같다. 마타리 꽃이 지천으로 피니 이 계절과 저 계절의 경계다. 여름이 가고 가을이 도착하는 중이다.
★ ’허태임의 초록목록'은 이번 원고를 마지막으로 연재를 마칩니다. 그동안 사랑해주신 많은 독자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허태임 한국수목원정원관리원 국립백두대간수목원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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