앤터니 비버 ' 베를린 함락 1945'
1944년 여름 동부전선에서 승리로 독소전쟁의 승기를 잡은 스탈린의 남은 목표는 오로지 베를린이었다. 파시스트 격퇴를 위해 손을 잡은 사이지만 스탈린의 결심은 분명했다. 붉은 군대의 ‘전리품’을 가로채려는 연합국의 어떤 시도도 용납하지 않겠다는 것.
'스페인 내전', '제2차 세계대전' 등을 저술한 전쟁사의 거장 앤터니 비버(73)의 ‘베를린 함락 1945’는 1945년 1월에서 5월까지 베를린 진격을 둘러싼 독일과 소련, 연합국의 움직임을 긴박하게 그려냈다. 독소 전쟁에서 2,000만 명이 희생된 만큼 제3제국의 ‘심장’을 먼저 차지하겠다는 스탈린의 집착은 가히 편집광적이었다. 베를린 선점을 위해 스탈린은 4월 초까지도 연합국 사령관들에게 소련군의 주공세가 남부전선에 집중될 것이고 베를린에는 2급 부대만 보낼 것이라는 거짓말까지 했다.
저자는 스탈린이 이렇게 베를린 진격을 다그친 것이 그의 조바심이나 허영심, 복수심에 기인한 것만으로 보지 않는다. 그는 러시아연방 국립기록보관소의 미공개문서를 입수, 소련이 당시 베를린 외곽 카이저 빌헬름 물리학 연구소가 독일 원자력 연구의 중심임을 파악했던 점에 주목한다. 미국의 원자폭탄 개발 프로젝트(맨해튼 프로젝트)팀에 스파이를 침투시켜 내용을 파악하고 있던 스탈린은 미군이 먼저 이 연구소에 도착하는 걸 용납할 수 없었던 것.
저자는 “스탈린과 원수들은 병사들의 목숨을 신경 쓰지 않는" 이들이라고 평했다. 무리한 진격공세의 대가는 엄청났다. 베를린 작전에 참가한 소련군 전사자는 7만 명, 부상자는 27만 명을 넘었다. 소련군의 베를린 점령이 많은 이들에게는 해방이었지만, 패자는 모든 것을 잃었다. 특히 독일 여성들에게는 재앙이었다. 13만 명의 독일 여성들이 소련 병사들에게 강간을 당했고 그 중 1만 명이 목숨을 끊었다. 2002년 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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