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광역시가 조성 중인 ‘정율성 역사공원’ 논란이 증폭되고 있다. 박민식 국가보훈부 장관이 포문을 열고 강기정 광주시장이 응수한 데 이어 연평도 포격전 전사자 고 서정우 하사의 모친이 강 시장을 공박하고 나섰다. 박 장관은 사업 중단을 촉구하는 '헌법소원'도 불사할 태세다. 여기에 여야 정치권까지 찬반으로 나뉘어 가세하면서 걷잡을 수 없는 확전 양상으로 치닫고 있다.
서 하사의 모친 김오복 여사는 23일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메시지에서 “호국 유공자는 무관심하면서 북한·중국 공산세력을 도운 인물을 기념한다는 것은 도저히 이해가 안 된다”며 “보훈 가족에게 피눈물 나게 하고 분노가 치밀어 오르는 사업”이라고 강 시장을 직격했다. 김 여사는 “대한민국 국민 수백만 명이 희생되고 국토가 폐허가 된 전쟁을 부추긴 사람, 김일성에게 상장까지 받은 그런 사람을 위해 기념공원을 만드는 것은 아니다”라고 비판했다. 이에 대해 강 시장은 ‘이미 진행 중인 사업이라 중단하기 어려운 점을 이해해달라’는 취지로 답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율성은 1914년(혹은 1918년생) 광주 출신으로 1933년 중국으로 건너가 피아노, 바이올린, 성악 등을 공부했다. 1939년 중국공산당에 가입해 ‘팔로군 행진곡’을, 해방 후 북한으로 건너가 조선인민군 행진가를 작곡했다. 한중 양국 사이의 '경계인'이지만, 중국 당국은 그의 국적이 중국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광주시는 2020년 5월부터 동구 불로동 일대에 총 48억 원을 투입해 정율성 역사공원을 조성해 왔다. 계획대로라면 올해 말 완공된다.
강 시장은 전날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이념의 색안경을 끼고 세상을 바라보면, 세상은 두 가지 색깔, ‘적과 나’로만 보인다”고 주장했다. 강 시장은 “항일독립운동가의 집안에서 태어나 조국의 독립운동을 위해 중국으로 건너가 항일운동가 겸 음악가로 활동하다 중국인으로 생을 마감한 그의 삶은 시대의 아픔”이라며 “광주는 정율성 선생을 광주의 역사 문화 자원으로 발굴하고 투자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박 장관은 서재필 박사 등 독립유공자와 6·25 전쟁 학도병들을 거론하며 “기억하고 기념해야 할 영웅들이 이렇게나 많은데, 광주시는 이 많은 분들을 두고 왜 하필 정율성 같은 공산당 나팔수의 기념 공원을 짓겠다는 건가”라고 반박했다. 또 “민간모금을 하든, 민간투자를 받든 국민의 혈세는 손대지 마시라”며 “그런 반국가적인 인물 기념하라고 지방정부가 있는 게 아니다”라고 비판했다.
보훈부 관계자는 “지방재정의 자율성이 존중된다고 하더라도 국민의 세금으로 이뤄지는 모든 행위는 헌법 가치 안에서 이뤄져야 한다”고 정율성 공원 반대 이유를 설명했다. 박 장관은 광주시가 세금으로 공원 사업을 계속할 경우 헌법소원도 검토하고 있다고 보훈부 관계자는 밝혔다.
박 장관은 앞서 8일 한국일보 인터뷰에서 “보훈부의 역할은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확고히 하는 것”이라며 “일제로부터 국민의 자유와 기본권을 되찾기 위한 독립운동이어야 하는데, 이게 또 다른 전체주의 국가인 북한에 또 빼앗길 수 있는 활동을 했다면 이걸 과연 독립운동이라고 할 수 있나”라고 밝힌 바 있다. 북한 건국에 기여한 김원봉에게 절대 서훈을 줄 수 없는 것처럼 정율성을 기념하는 것에 세금을 사용할 수 없다는 논리다.
정치권도 목소리를 높였다. 권성동 국민의힘 의원은 “어떤 미사여구로 정율성을 치장하더라도, 그가 대한민국을 침략한 인간이라는 것은 변치 않는 사실”이라면서 “세상에 어떤 나라가 국민 세금 48억을 들여 침략자를 기념한단 말이냐”고 했다. 같은 당 신원식 의원은 “대한민국 국민 혈세를 들여 광역지자체 차원의 기념공원을 조성한다면 누가 납득하겠는가”라며 “호국영령과 보훈가족에게 피눈물 나게 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반면 더불어민주당 광주시당 위원장인 이병훈 의원은 "항일운동가이자 음악가였던 정율성을 공산주의자로 낙인찍어 불온시하는 것은 시대착오적인 매카시즘적 행태"라고 반박했다. 이 의원은 "난데없이 정율성 기념사업을 공격하는 사람들의 본심에는 호남 차별과 중국혐오 감정을 부추겨 정치적 이득을 보려는 의도가 깔린 것으로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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