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대출 상환 유예, 종료 임박]
만기연장·상환 유예 소상공인 30만 명 훌쩍
원금 상환 시작 앞둬 "지금이 더 어려운데"
자영업자 대출 연체율, 2015년 이후 최고
금융당국 "채무자들 빠르게 빚 갚고 있다"
"주변 미용실, 슈퍼마켓, 김밥집 사장님들 대부분 카드 돌려막기하고 있어요. 경기가 워낙 안 좋으니 업종마다 시한폭탄을 안고 사는 셈이죠. 정부는 코로나19도 풀렸으니 대출을 갚기 시작하라는데, 앞이 깜깜합니다. 시한폭탄이 터지는 것은 한순간이죠."
서울 강서구에서 10년 넘게 학원을 운영한 최모(58)씨는 최근 폐업을 결심했다. ‘코로나19 충격’을 어찌어찌 버텨 냈더니 후폭풍이 이제야 몰아치고 있기 때문이다. 최씨는 코로나19로 학원 운영이 힘들었던 2020년 초 3,500만 원을 빌린 데 이어 2,000만 원을 추가로 대출했는데, 매달 이자에 이어 최근 원금까지 갚기 시작하면서 사정이 부쩍 어려워졌다. 월세 460만 원에 더해 강사 급여로 1,200만 원 이상을 주고 나면 매달 100만 원 넘는 원금 상환은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설상가상 최근 건물주는 코로나19 시기 월세를 몇 달 연체했다는 점을 빌미로 권리금(약 5,000만 원)도 없이 최씨를 내쫓겠다고 엄포를 놓았다. 카드 돌려막기에 파산 위기까지 몰리자 최씨에겐 선택의 여지가 남아 있지 않았다. "차라리 코로나19 시기가 버티기 더 쉬웠어요. 오히려 지금이 너무 힘드네요. 정부는 상황이 회복됐다며 '정상화'를 얘기하는데, 정작 학생 수는 줄어들고 경기침체로 물가에 월세까지 오르니 버티는 게 현실적으로 거의 불가능하네요."
빚내 코로나 버텼으나... '금융채무불이행자' 딱지
코로나19 기간 소상공인과 중소기업이 무너지지 않도록 2020년 4월 도입했던 만기 연장·상환 유예 조치가 다섯 차례의 연장 끝에 공식적인 종료를 향해 달려가고 있다.
지난해 9월 금융당국은 만기 연장은 2025년 9월까지, 상환 유예는 2028년 9월까지 지원하는 내용의 '연착륙 지원 방안'을 마련했다. 상환 유예 조치를 이용하고 있던 차주들은 아무리 늦어도 10월부터는 상환을 시작, 향후 60개월 동안 빚을 갚아 나가야 한다. 미뤄 왔던 '폭탄 처리'가 시작되는 셈이다. 금융당국은 수차례 연장해 온 데다가 코로나19 거리 두기 해제 등의 조치가 이어지면서 연착륙이 이뤄지고 있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소상공인들은 정부의 인식과 현실 사이에 괴리가 있다고 토로한다. 경남에서 작은 광고회사를 운영하고 있는 박모(51)씨는 코로나19 시기 세 군데에서 총 6,000만 원을 빌렸지만, 최근 빚을 갚아 가는 과정에서 대부업체까지 찾았다가 금융채무불이행자 신세로 전락할 위기에 처했다. '어차피 갚아야 할 돈'이라는 생각에 3년간 조금씩 빚을 갚아 왔는데, 경기가 가라앉으면서 일거리가 오히려 줄었기 때문이다. 박씨는 "정부에서 뭐라고 하는지 모르겠지만 밑바닥에선 오히려 코로나19 때보다 경기가 나빠진 게 느껴진다"며 "이때까지는 그래도 꼬박꼬박 대출을 갚아 왔는데, 내년도 내후년도 업황이 나아질 기미가 안 보이니 지금이 외려 버티기가 더 힘들다"고 말했다.
상환 유예 종료, 정부 "문제없다"지만...
코로나19 시기 버티기 위해 낸 빚이 최근 소상공인들에게 부메랑으로 다가오기 시작한 만큼, 상환 유예 조치가 종료되는 9월 이후부터 본격적으로 위기가 찾아올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소상공인연합회(연합회)가 올해 초 실시한 실태조사에서 소상공인 63.4%는 전년 대비 부채가 늘었다고 답했고, 89.7%는 현재 대출 이자 부담으로 힘들다고 토로했다. 연합회는 “이런 상황에서 상환 유예를 종료하고 원금 상환을 본격적으로 압박하는 것은 불쏘시개를 지고 불 속으로 뛰어들라고 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실제 급격히 높아지는 자영업자 대출 연체율은 골목상권의 위기를 점쳐볼 수 있다. 한국은행이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양경숙 의원에게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2020년 1분기(0.87%)를 정점으로 낮아졌던 자영업자 연체율은 지난해 3분기(0.53%)부터 다시 오르기 시작해 4분기 0.65%를 거쳐 올해 1분기 1.0%까지 치솟았다. 2015년 1분기 이후 8년 만에 가장 높은 연체율이다.
한국은행은 올해 6월 금융안정보고서에서 "지난해 자영업자 부채가 취약차주·비은행권·대면 서비스업 위주로 늘어난 점에 비춰 자영업자 부채의 전반적인 질이 다소 악화된 것으로 판단된다"며 "자영업자 대출 연체율도 지난해 하반기부터 취약 부문을 중심으로 상승 전환되는 등 대출 건전성 역시 저하되고 있다"고 분석하기도 했다.
특히 문제가 되는 건 이자조차 내지 못하고 있는 차주들이다. 가장 위험한 뇌관으로 꼽히는 이자상환 유예 차주는 3월 기준 1,100명 남았으며, 이들의 대출금은 1조4,000억 원이다. 단순 계산하면 이자도 못 낼 정도로 상황이 어려운 차주들이 1인당 평균 13억 원에 달하는 원리금을 떠안고 있다는 뜻이다. 물론 지난해 9월 대비 6개월 만에 차주 700명(7,000억 원)이 줄어들긴 했지만, 고금리 상황에선 남은 차주들일수록 취약할 확률이 높다.
금융당국은 "이자상환 유예 대출 규모는 전체의 2% 수준으로 금액 절대치가 크지 않고 상환 추이도 가팔라 부실률이 그렇게 많이 올라가진 않을 것"이라며 자신하고 있다. 실제 지난해 9월 43만4,000명에 달했던 만기 연장·상환 유예 차주는 올해 3월 기준 38만8,000명으로 10.6% 줄었다. 대출 규모도 같은 기간 100조1,000억 원에서 85조3,000억 원으로 14.7% 감소했다. 특히 만기연장이 적용된 대출 감소분 중 87.4%는 상환을 완료한 경우로 분석했다. 금융당국이 “차주들이 빠르게 빚을 갚아 나가고 있다”고 보는 이유다.
하지만 소상공인들은 "숫자로만 분석해서는 안 된다”며 당국의 안이함을 지적하고 있다. 1%대 저성장이 내년까지 이어질 것으로 전망되는 등 경기가 좀처럼 살아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 데다, 고금리 기조가 당분간 유지될 것으로 보이는 상황에서 취약계층 부실이 연쇄 반응을 일으킬 가능성을 무시할 수 없다는 것이다.
코로나19 기간 2억 원가량을 대출하며 겨우 버텼지만 여전히 매출 회복이 30%밖에 되지 않았다는 세종시 소재 노래방 업주 황모씨는 "상환이 시작되면 영세 소상공인 줄 폐업이 시작될 것"이라며 "소상공인들이 버텨서 끝까지 채무를 해결할 수 있게 정부는 책임지고 더 장기적인 계획을 세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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