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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기의 대결

입력
2023.08.24 04:30
2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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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크 저커버그(왼쪽 사진) 메타 최고경영자와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 AP 연합뉴스

마크 저커버그(왼쪽 사진) 메타 최고경영자와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 AP 연합뉴스


최근 몇 달 동안 테크업계 최대 관심사였던 '세기의 대결'이 흐지부지되는 분위기다. 메타의 스레드 출시를 계기로 "철창 싸움을 벌이자"고 으르렁댔던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와 마크 저커버그 메타 CEO의 '현피'(온라인 싸움이 현실 세계의 실제 싸움으로 이어지는 것) 얘기다.

현피의 날짜는 26일, 장소는 이탈리아 콜로세움 같은 역사적 명소가 될 것이란 언급까지 나온 걸 보면 거의 성사될 뻔하긴 했던 듯하다. 하지만 저커버그가 최근 싸움에 대한 머스크의 진정성을 의심하며 사실상 '현피 추진 종료'를 외친 만큼 논의는 더 진전되지 않을 가능성이 커졌다.

두 사람은 원래도 좋은 사이가 아니었다. 몇 년 전 인공지능의 위험성을 두고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공개 설전을 벌인 일도 있다. 다만 몸싸움 직전까지 간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머스크로선 SNS 최강자인 메타가 엑스(옛 트위터)를 빼닮은 스레드로 엑스의 입지를 흔들려 하는 걸 보고 화가 났을 수 있다. 그러나 실리콘밸리에선 기분파인 머스크야 그렇다 쳐도 저커버그까지 왜 정면 대결을 택했는지 의아하다는 반응이 많았다.

가장 설득력 있다는 평가를 받은 해석은 '남성성을 과시하기 위해서'란 것이었다. 몸싸움을 피하지 않음으로써 머리싸움뿐 아니라 몸 씨름에도 능하다는 것을 보여주고자 하는 의도라는 분석이다. 특히 저커버그는 회사의 역점 사업이었던 메타버스가 '돈 먹는 하마' 처지를 벗어나지 못하는 등 최근 몇 년 동안 사업적으로 부진한 모습을 보여 리더십이 위태로워진 상태였다. '무능한 리더' 이미지를 뒤집기 위해 머스크와 다툼을 전략적으로 이용했을 가능성이 있다.

갈등이 결국 말싸움에 그치는 건 다행스럽다. 두 사람은 "수익금 전부를 재향군인을 위해 기부하겠다"며 결투를 세상에 도움 되는 일인 양 포장했지만 실상은 "난 당신이 싫으니 몸으로 붙어보자"는 선언에 지나지 않았다. 정말로 결투가 '남자다운'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라면 그런 구시대적 발상 역시 그만 거둬야 한다. 진짜 사회에 보탬이 되는 세기의 대결은 혁신 싸움이지 몸싸움이 아니다.

실리콘밸리= 이서희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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