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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러 무기거래 '심증에서 확증으로'...미그-29 북한 가나

입력
2023.08.22 14:00
2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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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한반도와 남중국해 등 주요국 전략자산이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현장의 다양한 에피소드를 흥미진진하게 전달해 드립니다. 이일우 자주국방네트워크 사무국장이 격주 화요일 풍성한 무기의 세계로 안내합니다.


러시아의 미그-29 전투기가 이륙하고 있다. 타스 연합뉴스

러시아의 미그-29 전투기가 이륙하고 있다. 타스 연합뉴스

지난 7월 29일 평안북도와 자강도 일대 주요 군수공장에는 매주 토요일 이른바 '토요총화' 일정을 맞아 노동당 중앙군사위원회에서 중요한 지시가 하달됐다. 해당 지시에는 "다량의 무기 생산으로 원수님께 충성의 보고를 드려야 한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해당 지시 직후 각 군수공장에는 특별 식량 공급과 함께 24시간 비상 가동 체제가 시행됐고, 8월 초 김정은이 직접 두 차례나 공장들을 찾아 무기 대량 생산을 독려했다. 북한은 지난 7월 열병식을 전후해 재래식 무기 대량 생산에 나서는 움직임을 보였는데, 북한 내 소식통들은 물론이고 한·미 정보당국도 이것이 러시아에 대한 무기 수출과 관련이 있다고 보고 있다.

김정은-러시아 국방장관 무기거래설 '모락모락'

최근 방북한 세르게이 쇼이구 러시아 국방장관과 김정은 사이에 무기 거래에 대한 심도 있는 논의가 있었고, 그 직후 러시아군 실무진을 태운 것으로 추정되는 수송기가 평양에 들어간 것이 확인되면서 북·러 무기 거래설은 심증에서 확증으로 굳어지는 분위기다. 현재까지 취합된 정보들을 종합해 보면 북한은 전술 탄도미사일과 방사포 중심으로 재래식 군사력을 재정비하고, 이 과정에서 발생한 다량의 구형 무기 재고를 러시아에 넘기는 작업을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세르게이 쇼이구 러시아 국방장관이 지난달 31일(현지시간) 모스크바에서 러시아군 지휘부 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모스크바=로이터 연합뉴스

세르게이 쇼이구 러시아 국방장관이 지난달 31일(현지시간) 모스크바에서 러시아군 지휘부 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모스크바=로이터 연합뉴스

러시아 인권단체 ‘굴라구넷’이 국방부 관계자를 인용해 폭로한 바에 따르면, 러시아는 우크라이나군의 서방제 장거리 포병 무기를 제압할 수 있는 170㎜ 자주포와 다양한 종류의 포병·전차 탄약, 보병용 총기 등을 구매하려 하고 있다. 실제로 지난 8월 중순 우크라이나 동부 쿠퍈스크 전선에서 러시아군이 북한제 122㎜ 다연장로켓탄약을 사용하고 있는 것이 확인되면서 일부 무기가 이미 공급되고 있다는 평가도 나온다. 북한이 공급하는 이러한 무기와 탄약은 이번 전쟁 기간 중 막대한 지상 장비 손실을 입은 러시아군에 상당한 도움이 되기는 하겠지만, 전세를 뒤바꿀 수 있는 정도는 아니다.

포병·전차 탄약 필요한 러시아

북한이 공급하려는 무기는 소련군 시절 규격이기 때문에 현용 러시아군 장비와 호환이 되지만, 대단히 낡고 보관 상태도 좋지 않아 정상적인 기능 발휘가 어렵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러시아는 찬밥, 더운밥 가릴 처지가 아니다. 8월 셋째 주부터 우크라이나군이 제10군단 예비대를 투입하며 공세작전 2라운드를 시작했기 때문에 이들을 막으려면 다량의 무기가 시급한 상황이다. 북한이 러시아에 무기 공급을 시작하면 이제 가장 큰 관심은 무기 대금을 어떤 형태로 받을 것이냐 하는 것이다. 러시아는 서방의 제재 때문에 달러나 유로를 북한에 보낼 수 없는 상황이다. 북한 역시 달러나 유로가 아니라면 현물을 요구했을 가능성이 큰데, 문제는 그 현물로 무엇이 북한에 넘어갈지 모른다는 점이다.

우크라이나 군인이 10일(현지시간) 자포리자 지역 전선에 있는 참호에서 분주히 움직이고 있다. 우크라이나는 최근 남부 자포리자에서 '대반격'의 일환으로 2차 공세를 개시해 러시아군과 치열한 전투를 벌이고 있다. 자포리자=AP 연합뉴스

우크라이나 군인이 10일(현지시간) 자포리자 지역 전선에 있는 참호에서 분주히 움직이고 있다. 우크라이나는 최근 남부 자포리자에서 '대반격'의 일환으로 2차 공세를 개시해 러시아군과 치열한 전투를 벌이고 있다. 자포리자=AP 연합뉴스

최근 국가정보원은 국회 정보위 보고에서 북한이 러시아에 노후 장비 수리와 기술이전을 요구했고, 이 가운데는 잠수함과 SLBM, ICBM 관련 기술들이 포함돼 있을 가능성이 있다는 분석을 내놓았다. SLBM과 ICBM 관련 기술은 이미 많은 언론과 전문가들이 분석과 우려를 쏟아내고 있는데, 대단히 가능성 높고 우려스러운 어떤 한 분야에는 관심을 갖는 사람이 거의 없다. 바로 전투기다.

북한은 1988년 김일성의 모스크바 방문 이후 소련에서 MIG-29 전투기를 도입하기로 결정하고 평안북도 구성시 소재 방현항공기제작소에 전투기 조립 라인을 설치했다. 당시 소련이 공급한 MIG-29는 1인승인 C형과 2인승인 UB형이 섞여 있었는데, 11대가 완성기 형태로 북한에 공급됐고, 10대 분량의 부품이 공급돼 3대가 방현에서 조립됐다. 그러나 1993년 러시아의 기술지원 중단으로 모든 기체가 조립되지는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북한은 벨라루스와 우크라이나 등에서 MIG-29 전투기 부품을 밀수하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했지만 큰 성과를 거두지는 못했고, 이후 30년 넘게 북한 공군은 새 전투기를 조달하지 못했다. 이후 방현항공기제작소는 무인기 제작 거점으로 변신했지만, 북한이 큰돈을 들여 만든 MIG-29 조립 라인을 철거한 정황은 보이지 않는다.

미그-29 부품 확보에 목맸던 북한

전투기 자체 개발 능력이 없는 북한은 MIG-29 이후 공군력 현대화를 사실상 포기했다는 분석이 많았다. 사실 공군력을 어느 정도 현대화시킨다고 하더라도 압도적인 질적 우위를 가진 한미연합공군에는 상대가 되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전투기는 투자해 봤자 효과가 미미한 분야로 인식됐을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북한은 최근 단거리 탄도탄과 방사포 전력을 대거 확충하면서 개전 초 남한 내 모든 공군기지를 일격에 초토화시킬 수 있는 능력을 갖추는 데 성공한 뒤 일부 무기 도입 전략을 수정했다. 개전 초기에 대량의 화력을 투사해 남한 내 모든 공군기지를 쓸어버리면 한미연합공군 전투기가 뜰 일이 없다는 판단을 한 것이다. 제공권을 장악한 상태에서만 운용할 수 있는 북한판 글로벌호크 ‘새별-4형’이나 북한판 리퍼 ‘새별-9형’ 도입은 북한의 군사전략 변화를 보여준다. 북한은 이러한 무인기와 함께 제공권을 보다 확실히 유지하기 위해 공군력 현대화도 추진하고 있다. 지난 2021년 무기전시회에 등장한 2종의 신형 공대공 미사일은 북한의 이러한 의지를 보여주는 증거다. 단거리 공대공 미사일로 보이는 새 미사일은 중국의 열추적 단거리 미사일인 PL-10 또는 우리나라의 KF-21에도 탑재되는 독일제 IRIS-T와 매우 유사하다. 중거리 미사일로 보이는 또 다른 미사일은 중국의 PL-11 또는 PL-12와 유사하다.

공대공 미사일은 전투기가 레이다로 적기를 포착한 뒤, 표적 정보를 미사일의 처리장치로 전송해 조준·유도하는 복잡한 프로세스로 작동하는 무기다. 새로운 공대공 미사일을 개발했다는 것은 이 미사일과 연동할 새로운 레이다, 사격통제시스템도 완성됐다는 의미다.

북한은 수년 전부터 신형 전투기 도입이 추진되고 있다는 것을 강하게 암시하는 시그널을 보여 왔다. 평양 방공을 담당하는 순천공군기지가 지난해 가을까지 활주로 확장과 유도로·지하 시설 설치 등의 대공사를 마쳤다. 북한은 2,500m 길이의 활주로를 300m 연장해 2,800m로 만들었는데, 이는 이 기지에서 기존 전투기보다 무거운 항공기를 운용할 준비를 하고 있다는 뜻이다. 가장 유력한 ‘새 전투기’는 최근 중국 해군항공대에서 공군으로 이관된 뒤 대량 퇴역이 준비되고 있는 JH-7 전투폭격기였는데, 최근 북한과 러시아 사이의 무기 거래가 급물살을 타면서 MIG-29가 또 다른 유력 후보로 급부상하고 있다. 이 전투기는 러시아에 엄청난 양의 재고가 쌓여 있고, 러시아가 잘 안 쓰는 기종이기 때문이다.

11일 우크라이나 공군의 수호이(Su)-27기가 미르고로드 지역에서 비행을 준비하고 있다. 미르고로드=AFP 연합뉴스

11일 우크라이나 공군의 수호이(Su)-27기가 미르고로드 지역에서 비행을 준비하고 있다. 미르고로드=AFP 연합뉴스


러시아에 필요 없는 미그-29가 북한으로 가면?

2023년 현재 러시아는 260여 대의 MIG-29 계열 기체를 보유하고 있지만, 운용 중인 기체는 4개 비행연대 70여 대에 불과하다. 러시아 항공우주군은 각 부대의 책임구역이 대단히 넓기 때문에 MIG-29와 같이 항속거리가 짧고 무장 탑재량이 부족한 전투기는 선호하지 않는다. 이보다 성능이 뛰어나면서 유지비도 상대적으로 저렴한 대형 Su-27이나 Su-30과 같은 전투기도 많기 때문에 구태여 쓸 이유가 없는 MIG-29가 대량으로 방치돼 있는 것이다. 러시아군 장비 목록에는 있지만 거의 사용하지 않는 200여 대에 달하는 기체는 물론, 소련 붕괴 이후 경영난으로 문을 닫은 전투기 조립 공장에 방치돼 있는 기체도 많다. 지난 2021년 1월, 러시아 밀블로거들이 모스크바 인근 전투기 공장에 몰래 침입해 다수의 전투기와 대량의 부품이 방치돼 있는 것을 발견해 화제가 된 적도 있었다. 즉, 러시아는 북한에서 공급받는 다량의 포병무기와 탄약에 대한 반대급부로 자신들이 많은 양의 재고를 가지고 있는 MIG-29 전투기나 부품을 북한에 넘길 가능성이 높다. 가지고 있어 봐야 유지비만 들어가는 악성 재고들을 털어내면서 당장 급한 포병무기들도 들여올 수 있으니 러시아 입장에서는 망설일 이유가 없는 거래다.

북한이 가져올 수 있는 MIG-29들은 고성능은 아니지만, 유사시 주요 공군기지가 초토화돼 항공 전력이라고는 기껏해야 육군항공 헬기들 정도만 남아 있을 가능성이 큰 한국군에 큰 위협이 될 수 있다. 한국군이 국산화 제일주의에 빠져 북한 방사포 요격 무기 도입을 10년 뒤로 미룬 덕분에 어쩌면 한반도 유사시 개전 초 상당 기간의 제공권은 북한이 틀어쥐게 될지도 모르겠다.

이일우 자주국방네트워크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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