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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은 죽었다. 더 많은 실험 연극이 필요하다"… 구순의 연출가가 무대로 돌아온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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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은 죽었다. 더 많은 실험 연극이 필요하다"… 구순의 연출가가 무대로 돌아온 이유

입력
2023.08.22 04:30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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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혁명의 춤' 23년 만에 다시 연출… 27일까지 더줌아트센터

김우옥 연출가는 "무엇이든 새롭지 않으면 관심을 두지 않는다"고 했다. 그가 쓴 모자는 현대음악을 자주 방송하는 뉴욕 클래식 라디오 방송 WQXR에 100달러를 기부하고 받은 것이다. 윤서영 인턴기자

김우옥 연출가는 "무엇이든 새롭지 않으면 관심을 두지 않는다"고 했다. 그가 쓴 모자는 현대음악을 자주 방송하는 뉴욕 클래식 라디오 방송 WQXR에 100달러를 기부하고 받은 것이다. 윤서영 인턴기자

"연극은 생존력이 없어요. 이미 수십 년 전부터 죽는다고 했는데 의외로 끈질기게 살아남았지."

연극 장르의 지속 가능성을 묻는 질문에 구순을 바라보는 원로 연출가는 뜻밖의 대답을 내놓았다.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초대 원장을 지낸 원로 연출가 김우옥(89)은 지난해 구조주의(스토리 대신 소리와 움직임 등 구조를 전면에 내세움)의 대가 마이클 커비(1931~1997)가 쓴 연극 '겹괴기담'으로 22년 만에 다시 현업 연출가로 돌아와 화제가 됐다. 그는 "서사 중심의 전통적 연극은 이미 한계에 부딪혔다"며 "이 시대에 정말 필요한 연극이 무엇인가에 대한 깊은 고민이 나를 다시 무대로 불러 세웠다"고 말했다.

그는 지난해 한국연극평론가협회의 '올해의 연극 베스트3'에 선정된 '겹괴기담'에 이어 지난 17일부터 서울 용산구 더줌아트센터에서 커비의 또 다른 작품 '혁명의 춤'을 무대에 올리고 있다. 연극원장 퇴임 기념 무대 이후 23년 만에 관객과 만나는 작품으로 27일까지 공연된다. 더줌아트센터에서 만난 김 연출가는 "강한 연극성을 표현할 방법을 찾는 연극의 목적에 잘 부합하는 작품"이라며 "지금의 한국 연극계에 변화의 화두를 던질 수 있을 것"이라고 공연을 소개했다.

연극 '혁명의 춤'의 한 장면. 연극은 극장에 설치돼 있는 조명기를 사용하지 않아 시종 어두운 가운데 가끔씩 비치는 빛이 그림 같은 장면을 만들어 낸다. 더줌아트센터 제공

연극 '혁명의 춤'의 한 장면. 연극은 극장에 설치돼 있는 조명기를 사용하지 않아 시종 어두운 가운데 가끔씩 비치는 빛이 그림 같은 장면을 만들어 낸다. 더줌아트센터 제공

'혁명의 춤'은 혁명의 순간을 묘사하는 8개의 독립된 장면으로 구성돼 있다. 13명의 배우들은 조명이 꺼졌다 켜질 때마다 동작을 달리하며 "기다려", "이쪽이야", "누군가 오고 있어", "그들 거야" 같은 짤막한 대사를 각기 다른 장면에서 반복적으로 내뱉는다. 각 장면의 이야기는 서로 연결돼 있지 않지만 연극은 반복되는 배우들의 대사와 음향 효과, 소품 등을 통해 다른 차원의 연결성을 보인다. 1970년대 뉴욕 초연, 1981년 그가 연출한 국내 초연 당시 관객과 평단의 뜨거운 논쟁으로 이어졌던 연극은 이번에도 관객 반응이 크게 엇갈린다. 다만 "새로운 관극 체험"이라는 데에는 이견이 없다. 김 연출가는 "낯선 것을 체험하게 하는 게 연극"이라며 "관객이 '이 공연, 이 시간이 과연 무엇이었을까'라는 물음표를 마음에 품고 극장을 떠날 수 있다면 성공이라고 본다"고 강조했다. "1981년 초연과 2000년 재연 때 달라진 관객 반응을 보면서 사회의 변화를 느낄 수 있었어요. 초연 후 40년 이상 흐른 뒤 올리는 이번 공연은 더 많은 관객이 받아들일 수 있으리라는 기대감이 있어요. 영상적인 공연이어서 영상 세대인 지금 관객에게 더 유효하지 않을까 싶어요."

가수 김진표의 아버지이기도 한 김우옥 연출가는 아들의 음악 활동에 대해 묻자 "대중음악은 관심이 없다"며 "음악은 현대 작곡가의 클래식 음악이 가장 매력 있다"고 답했다. 윤서영 인턴기자

가수 김진표의 아버지이기도 한 김우옥 연출가는 아들의 음악 활동에 대해 묻자 "대중음악은 관심이 없다"며 "음악은 현대 작곡가의 클래식 음악이 가장 매력 있다"고 답했다. 윤서영 인턴기자

30대 중반까지 경기여고 영어교사로 일하다 돌연 미국 유학을 떠나 연극을 공부한 김 연출가는 1980년 미국 뉴욕대에서 연극학 박사학위를 받은 뒤 서울예전(현 서울예대) 교수와 동랑레퍼토리극단 대표를 거쳐 1994∼2000년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원장을 지냈다. 귀국 후 뉴욕대 지도교수였던 커비의 '내·물·빛'을 첫 작품으로 내놓았지만 그야말로 '폭망'했다. 1985년에는 동랑청소년극단을 만들고 한동안 아동청소년극에 매달렸다. 그는 "에너지가 많은 청소년을 대상으로 하는 연극은 성인 대상 작품보다 훨씬 더 새로워야 한다"며 "실험극을 하다가 아동청소년극으로 눈길을 돌린 것도 아동청소년극을 또 다른 실험극으로 봤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나 스스로 의아할 정도로 신체 컨디션이 좋다"는 그는 '혁명의 춤'이 끝난 후에도 할일이 많다. 지난해 인기를 끈 '겹괴기담'이 오는 10월 6~9일 대학로극장 쿼드에서 다시 공연되고, 출간도 준비 중이다. 2006년 서울아동청소년공연예술축제 예술감독을 끝으로 현역에서 은퇴한 그는 팔순을 바라보던 2012년부터 5년간 뉴욕에 머물며 전시, 공연을 관람하고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후기를 남겼다. 이 후기를 모은 책이 조만간 출간된다. '혁명의 춤'의 오미영 조연출은 최근 SNS에 "선생님은 90의 연세에도 여전히 뛰어난 균형감각을 유지하며, 여전히 뜨겁게 작업 중"이라는 글을 남겼다.

"내 공연을 보고 젊은 연극인들이 이렇게도 연극을 할 수 있구나, 하고 느끼면서 틀이 짜인 연극에서 벗어난 연극의 가능성을 발견해 주면 좋겠어요. 모든 것을 해결해 주고, 알려주는 게 연극의 목적은 아니니까."

연극 '혁명의 춤' 의 포스터. 더줌아트센터 제공

연극 '혁명의 춤' 의 포스터. 더줌아트센터 제공


김소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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