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1년, F1 전문 매체 ‘더 F1 타임즈(The F1 Times)’는 F1 역사에 있어 가장 아름답고, 특별한 레이스카를 소개했다.
해당 내용에는 당대 F1 무대를 호령하고, 독특함으로 시선을 끌었던 맥라렌 MP4-20(2005년)과 BMW-자우버의 F1.08(2008년) 등은 물론이고 추억의 주인공이라 할 수 있는 페라리 312 T3(1978년), 로터스 72D(1972년) 등과 같은 클래식 레이스카들이 선정되어 많은 이들이 시선을 끌었다.
그리고 영예의 1위에는 지난 1966년 데뷔해 1970년, 차세대 모델인 312 B에게 배턴을 넘긴 312이 선정됐다. 스쿠데리아 페라리 역사에 있어 ‘뛰어난 성과’를 달성한 레이스카는 아니지만 ‘미학적 가치’, 그리고 최초의 ‘리어 윙 스포일러’를 도입한 기술적 가치를 인정 받았다.
과연 가장 아름다운 F1 레이스카, 페라리 312는 어떤 존재일까?
새로운 시작, 그리고 불안감
1966년, 페라리는 새로운 경쟁을 위한 두 대의 레이스카를 선보였다. 하나는 1965년 말에 공개한 246으로 이전의 158 섀시에 디노 V6 2.4L 엔진을 얹은 것이며, 또 다른 차량은 오늘의 주인공, 312이 그 주인공이었다.
새로운 312 F1은 당대 스쿠데리아 페라리의 수석 엔지니어, 마우로 포르기에리(Mauro Forghieri)의 지휘 아래 개발되었으며, 1966년부터 적용되는 새로운 엔진 규정에 맞춰 V12 3.0L 엔진을 탑재해 시선을 집중시켰다.
312 F1은 완전히 새롭게 개발된 레이스카였지만 기본적인 형태는 기존의 158, 그리고 246과 큰 차이가 없었다. 다만 ‘새로운 312’는 트랙 위에서 경쟁자를 압도하는 성능을 가진 레이스카는 아니었다.
특히 V12 엔진을 탑재하며 ‘출력 개선’을 예상했지만, 275P2의 3.3L 엔진의 배기량을 3.0L 줄이는 ‘미봉책’이었다. 이에 따라 기대만큼 출력이 확보되지 않았고, 되려 무거운 엔진으로 인한 ‘무게 부담’이 있었다.
그래도 데뷔 첫 해의 성적은 나쁘지 않았다. 시즌 첫 대회인 모나코 그랑프리에서 존 서티스(John Norman Surtees)는 결국 리타이어로 만족해야 했고 파트너인 로렌조 반디니( Lorenzo Bandini)는 312 대신 246로 출전, 2위의 성과를 이뤄냈다.
이후 존 서티스가 한 차례 우승하고 루도비코 스카피오티(Ludovico Scarfiotti)가 한 차례 우승을 하고 마이크 파크스(Michael Johnson Parkes)가 두 번의 2위를 달성해 스쿠데리아 페라리는 챔피언십 2위에 올랐다.
아쉬운 세 번의 시즌
대부분읜 팬들은 312의 데뷔 시즌을 준수하게 평가했고, 이어질 1967 시즌에서의 도약을 기대했다. 그러나 312의 역사에 있어 1966년이 가장 성공적인 ‘시즌’이 되었다. 그리고 1967년은 상처로 가득했다.
실제 레이스카의 기본적인 퍼포먼스는 개선됐지만 시즌 내내 사고에 휘말리며 안정감이 부족했다. 로렌조 반디니가 시즌 첫 레이스인 모나코 그랑프리 82랩 상황에서 사고로 인한 화재에 휩싸였고, 구조 후 병원으로 이송되었으나 5월 10일 유명을 달리했다.
그러나 사고는 여기에 그치지 않았다. 로렌조 반디니의 빈 자리를 채우기 위해 복귀한 마이크 파크스 또한 벨기에 그랑프리에서 큰 사고에 휘말렸다. 그로 인해 마이크 파크스는 두 다리에 심각한 부상으로 F1 커리어를 마감하게 됐다.
결국 페라리는 312의 ‘안정화’를 기대한 두 번째 시즌에서 5위에 그치며 1966년 세 계단이나 하락한 순위를 마주했다.
리어 윙 스포일러의 시작
1968년, 페라리는 F1 기술 규정의 변화에 따른 새로운 변화를 도모했고 ‘최초의 리어 윙 스포일러’를 탑재한 페라리 F1의 등장으로 이어진다. 새로운 기술 규정, 그리고 늘어난 대회 일정은 페라리는 물론, 모든 팀의 선수들에게 새로운 도전의 장을 제시했다.
시즌 세 번째 레이스인 ‘벨기에 그랑프리’에 등장한 312의 리어 윙 스포일러는 지금의 F1 레이스카의 리어 윙 스포일러와 완전히 다른 형태, 그리고 다른 위치로 시선을 끌었다. 더불어 시즌 첫 포디엄 피니시를 선물했다.
팀에 새로 합류한 재키 익스(Jacky Ickx)는 리어 윙 스포일러를 탑재한 312와 함께 꾸준히 우수한 성적을 이뤄내 드라이버 포인트 부분 4위에 올랐지만, 팀 메이트들의 연이은 리타이어로 인해 팀 성적은 4위에 그쳤다.
새로운 도약을 위한 준비의 시간
1969년, 스쿠데리아 페라리는 말 그대로 ‘시즌을 포기’하고 다가올 1970년을 위해 모든 역량을 집중시한다. 이에 따라 1969년의 312는 지난 시즌과 특별한 차이 없이 시즌에 돌입했다. 말 그대로 ‘구형의 레이스카’가로 전락한 312였다.
드라이버 라인업은 지난해 팀을 지켰던 잭키 익스가 이탈하고 크리스 아몬이 중심이 되었다. 다만 크리스 아몬 역시 출전한 여섯 번의 레이스 중 한 번의 3위를 빼고는 모드 리타이어하는 수모를 겪었다.
결국 페라리는 1969년, 단 7 포인트 획득에 그치며 팀 부분 6위에 머물렀다. 그러나 이러한 선택은 좋은 결고로 이어졌다. 1970년부터 투입된 312B은 완전히 새로운 설계와 F12 엔진을 바탕으로 호성적을 거뒀기 때문이다.
다시 기억된 312
이렇게 페라리의 F1 커리어에 있어 ‘만족스럽지 못한 성적’에 그친 312지만 리어 윙 스포일러를 처음 탑재한, 공기역학에 대한 큰 의미가 있는 레이스카라는 특별함을 갖고 있다.
그래서 그럴까? 지난해 여름, 페라리는 F1 드라이버, 샤를 르클레르(Charles Leclerc)가 직접 312에 올라 피오라노 트랙을 달리는 이벤트 주행을 펼쳤다.
완전한 모습으로 복원된 312의 매끄러운 차체는 물론이고 ‘스파게티’라 불리는 V12 엔진의 복잡한 배기 시스템, 그리고 엔진 위로 툭 튀어 나온 리어 윙 스포일러 등은 모두의 시선을 집중시켰다.
스티어링 휠을 쥔 샤를 르클레르 역시 주행을 마치고 “지금의 F1 레이스카와 비교를 한다면 완전히 다른 차량이며, 레이스 카테고리도 다른 것 같다”라면서도 “페라리가 주는 운전의 즐거움은 여전하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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