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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 논설위원들이 쓰는 칼럼 '지평선'은 미처 생각지 못했던 문제의식을 던지며 뉴스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하는 코너입니다.
영화감독 노아 바움백은 미국 뉴욕을 중심으로 활동하고 있다. 뉴요커들의 사랑이 주요 소재이고 가족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내는 경우가 많다. 소소한 일상을 보여주면서 사람들의 여러 정서를 포착해내는 연출력이 탁월하다. ‘뉴욕의 홍상수’라 수식해도 무리는 아니다. 그가 연출한 ‘결혼 이야기’(2019)는 미국 아카데미상 작품상과 각본상 등 6개 부문 후보에 올라 여우조연상(로라 던)을 수상했다. 바움백은 독립ㆍ예술영화 진영에서 주목하는 감독이나 흥행과는 거리가 멀다.
□ 바움백 초기 작품에는 아내인 배우 제니퍼 제이슨 리가 종종 함께 했다. 2010년 ‘그린버그’에 신진 배우 그레타 거윅이 출연하면서 상황이 돌변했다. 바움백과 거윅은 사랑에 빠졌고, 리의 자리는 거윅이 대신했다. 거윅은 독립영화 진영에서 유망 배우로 꼽혔는데, 바움백과 협업하며 이름값을 올렸다. ‘프란시스 하’(2012)로 골든글로브상 여우주연상 후보가 됐다. 바움백과 각본을 함께 쓰며 재능을 드러냈으나 연인의 그림자에 가려져 있었다. ‘바움백의 여자’로 호명되고는 했다.
□ 거윅은 ‘레이디 버드’(2017)를 연출하며 홀로서기에 성공했다. 아카데미상 작품상과 감독상, 각본상 후보에 올랐다. 신인 감독으로서는 놀라운 성취였다. 두 번째 연출작 ‘작은 아씨들’(2019)의 성과는 더 눈에 띄었다. 작품상과 각색상 등 오스카 6개 부문 후보가 됐다. 제작비 4,000만 달러의 5배 넘는 흥행 수입(2억1,890만 달러)을 전 세계에서 거두기도 했다. 거윅에게 스포트라이트가 쏟아지면서 바움백의 그림자는 사라졌다.
□ 미국에서 흥행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바비’는 감독 거윅의 세 번째 영화다. ‘바비’는 전 세계에서 11억8,700만 달러(13일 기준)를 벌어들였다. 여성 감독이 연출한 영화가 매출 10억 달러를 돌파한 건 ‘바비’가 사상 최초다. 지난 11일 미 연예전문매체 버라이어티에 따르면 ‘바비’의 미국 관객 4분의 1이 코로나19 유행 이후 처음으로 극장을 찾은 이들이라고 한다. ‘바비’가 미국 극장가를 구원한 셈이다. ‘바비’는 전형적인 바비 인형(마고 로비)의 자아 찾기를 그렸다. 거윅의 인생행보가 스며 있다. 바움백은 ‘거윅의 남자’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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