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진석 유죄 판사, 정치적 성격 글 올려
"사법의 정치화 유발하는 글, 자제해야"
"판사의 사회적 참여 전적인 금지는 과해"
노무현 전 대통령 명예훼손 혐의로 기소된 정진석 국민의힘 의원에게 실형을 선고한 판사가 재직 중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정치적 의견을 개진한 사실이 드러나며, 법관의 SNS 발언을 어디까지 인정해야 하는지 논란이 거세지고 있다. 법조계에선 정치적 중립성을 지켜야 할 법관이 과도한 정치적 호오(好惡)를 드러내는 것은 부적절하다는 지적이 나오지만, 개인 공간인 SNS에서의 발언 권리를 과하게 제한하는 것도 적절하지 않다는 의견이 맞선다.
15일 법조계에 따르면 박병곤 서울중앙지법 판사(형사5단독 재판장)는 2018년부터 지난해까지 정치적으로 해석될 수 있는 글을 여러 차례 개인 SNS에 게재했다. 박 판사는 지난해 3월 15일 페이스북에 "이틀 정도 소주 한잔하고, 울분을 터뜨리고, 절망도 하고, 슬퍼도 했다가 사흘째부터는 일어나야 한다"고 적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가 대통령 선거에서 패한 지 6일 만이었다.
박 판사는 박영선 민주당 후보가 서울시장 재보궐 선거에서 낙선한 지 이틀이 지난 2021년 4월 9일 중국 드라마 '삼국지' 장면을 캡처한 사진을 올리기도 했다. 여기엔 "승패는 병가지상사(兵家之常事)"라는 내용이 포함돼 있었는데, 이는 전쟁에 패배해 낙심한 임금이나 장군들을 위로하는 뜻을 담고 있다. 서울중앙지법 관계자는 "박 판사가 올해 2월 형사 단독 재판부로 배치된 뒤 페이스북 글을 삭제했다"고 전했다.
법관이 SNS에 정치색 강한 글을 올려 입길에 오른 것은 과거에도 종종 있던 일이다. 김동진 서울남부지법 부장판사는 2020년 페이스북에 문재인 대통령 하야를 요구하는 글을 올렸다가 파문이 일자 삭제했다. 최은배 전 부장판사는 2013년 페이스북에 박근혜 대통령이 임명한 김병관 국방부 장관 후보자를 공개적으로 반대하는 글을 게재했다. 서기호 전 판사는 2011년 페이스북에 "분식집에서 쫄면 시켰다가는 가카의 빅엿까지 먹게 된다"며 이명박 대통령을 조롱한 글을 올리기도 했다.
판사들 사이에선 법관이 SNS를 통해 '사법의 정치화'를 자초하는 건 적절치 않다는 의견이 나온다. 수도권의 한 부장판사는 "소송 당사자 입장에선 정치색을 드러낸 판사에게 재판을 받으면 수긍하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며 "(판사가 정치적 의도를 의심받으면) 재판의 공정성이 훼손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정진아 전 사법연수원 교수와 김기수 전 대법원 재판연구관은 지난해 1월 논문에서 "SNS 글이 퍼질 것을 의도하지 않았더라도 글 내용이 사법부 신뢰를 저해하는 결과를 초래했다면 법관이 윤리적·법적 책임을 질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법관윤리강령 7조는 법관이 직무 수행 과정에서 정치적 중립을 지킬 것을 정하고 있다.
외국도 정치적 중립을 해칠 우려가 있는 법관의 SNS 글에는 엄격하다. 한국처럼 법조 경력을 갖춘 법조인을 판사로 임용(경력법관제)하는 영국은 "법관은 블로그 글을 게시한 자가 법관이라는 사실이 드러나는 경우를 가정하여, 사법부의 공정성에 대한 신뢰를 훼손할 수 있는 표현을 피해야 한다"는 지침을 제시한다. 일부 판사를 선거로 뽑는 미국도 "법관은 자신의 SNS 글에 특정한 정치적 입장에 대한 지지 등 법관행위규범이 금지하는 부적절한 외관이 있는지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고 권고한다.
다만 법관 역시 표현의 자유를 가진 한 사람의 시민이라는 점에서, SNS를 통한 사회 참여를 전적으로 부정해서는 안 된다는 반론도 설득력이 있다. 강민구 서울고법 부장판사나 류영재 의정부지법 남양주지원 판사의 경우처럼 토론을 통해 여론과 접점을 넓히고 국민의 생생한 의견을 수렴하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지방법원의 한 판사는 "'정치적으로 해석될' 여지가 있는 SNS 활동마저 못하게 하는 것은 과도한 재갈 물리기가 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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