캔자스 매리언 경찰, '직원 7명' 매체 압수수색
"개인정보 불법 취득" 혐의 vs "제보받아" 반박
'경찰서장 성범죄 비위 취재 앙갚음' 의혹 제기
수정헌법 1조 위반 지적... 유력 언론들도 '분노'
주민 1,900명 정도에 불과한 미국의 한 시골 마을에서 신문을 펴내는 작은 지역 매체가 돌연 '언론 자유의 전쟁터'로 떠올랐다. 뉴욕타임스(NYT)와 워싱턴포스트(WP), 월스트리트저널 등 유력 신문사들까지 이 군소 매체를 돕기 위한 '지원 사격'에 나섰다. 대체 어떤 일이 벌어진 것일까.
13일(현지시간) NYT·WP 등에 따르면, 미 캔자스주(州) 매리언카운티 경찰서는 지난 11일 지역신문사인 '매리언카운티레코드'(이하 레코드) 사무실과 편집·발행인 자택 등을 압수수색했다. 언론사 서버와 컴퓨터는 물론, 소속 기자들의 휴대폰 등도 대거 압수했다. 레코드는 직원 7명, 발행부수 4,000부 규모의 작은 신문사다. 주요 매체는 아니라 해도, 언론의 자유를 매우 중시하는 미국에선 대단히 이례적인 일이었다.
제보받았을 뿐인데… "불법 취재"라는 경찰
경찰은 레코드가 지역 식당 주인인 캐리 뉴얼의 개인정보를 불법 취득했다는 혐의를 적용했다. 레코드는 지난 2일 뉴얼의 식당에서 열린 공화당 지역 의원의 정치 행사를 취재하려다 뉴얼과 경찰의 제지로 실패했고, 이를 보도해 양측 간 갈등이 불거졌다. 그러다 '뉴얼이 2008년 음주운전으로 면허를 박탈당한 뒤에 운전을 하고 있었고, 경찰이 이를 묵인한다'는 제보를 받았다.
레코드는 그러나 관련 기사를 쓰는 대신 경찰에 신고했다. 제보에 △주정부가 뉴얼에게 보낸 이메일 △뉴얼의 면허 취소 이력 △운전면허증 정보 등 민감한 정보들이 대거 담겨 있었던 탓이다. 뉴얼의 남편이 이혼을 앞두고 자동차 소유권을 가져오려 음해했다고 볼 만한 정황도 포착됐다. 적절한 조치였다.
그럼에도 뉴얼과 현지 경찰은 ‘레코드가 시의원으로부터 불법적으로 정보를 취득했다'는 혐의를 제기했다. 공교롭게도 이 무렵 루스 허벨 매리언 시의원이 뉴얼의 음주운전 이력을 보건 당국에 제보했는데, 이를 문제 삼으며 '정언유착'으로 몰아세운 것이다. 당시 뉴얼은 주류 취급 면허 심사를 앞두고 있었다. 주법(州法)상 음주운전 전력자는 주류 관련 면허를 받을 수 없다.
레코드와 허벨 의원은 "정보를 공유한 적이 없다"고 반박하고 있다. 하지만 법원과 경찰은 수색영장을 발부한 근거를 구체적으로 공개하지 않고 있다. 기디언 코디 매리언 경찰서장은 “수사가 종결되면 사법 절차의 정당성이 입증될 것"이라고만 주장했다.
미 언론들 "취재 활동에 강제 수사라니" 경악
미국 언론계는 분노로 들끓고 있다. 세스 스턴 언론자유재단 옹호 이사는 NYT에 "특정 취재 기록에 소환장을 발부하는 방안도 있다"며 "취재 활동에 대한 압수수색은 용납될 수 없다"고 말했다. 미국 헌법 수정헌법 1조가 보장하는 언론의 자유에 대한 심각한 공격이라는 뜻이다. 레코드 발행인 겸 편집인인 에릭 마이어는 압수수색에 대해 "(나치 비밀경찰인) 게슈타포 전술"이라고 비난했다.
특히 의심스러운 대목은 레코드가 최근 코디 서장의 성범죄 의혹을 취재 중이었다는 점이다. '코디 서장이 종전 근무지에서 성추행 혐의로 징계를 받을 예정이었고, 이를 피하려 근무지를 옮겼다'는 전 직장 동료들의 제보를 확인하고 있었던 것이다. NYT는 "레코드는 규모에 비해 드물게 (부정행위를 저지른) 공무원에 대한 비판적 보도를 해 온 매체"라고 전했다. 설상가상 마이어의 모친이자 신문의 공동 소유주인 조앤 마이어(98)는 압수수색 이튿날 충격으로 쓰러져 숨졌다. 레코드는 "조앤은 한계를 넘어선 스트레스를 받았다"고 전했다.
미국 사회 전역에선 경찰의 압수수색을 두고 격렬한 논란과 함께, 언론의 자유 위축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미 주요 언론 34곳이 포함된 ‘언론자유를위한기자위원회(RCFP)’는 이날 코디 서장에게 공개 서한을 보내 “압수수색은 수정헌법 1조가 보장하는 취재 권한을 심각하게 침해한다”고 규탄했다. 이어 “압수한 물품을 언론사에 돌려주고 압수수색 행위에 대한 독립적 감사를 촉구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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