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연구원 '근로자 특수건강진단 통계'
야간 근로자 63만 명 건강 이상 소견
"제도적 규제, 인식 변화 동시 필요"
지난해 11월부터 쿠팡에서 야간 택배기사로 일한 김지혁(가명·21)씨는 육체적·정신적 한계를 절감하고 있다. 퇴근 뒤 잠을 청해도 한두 시간 만에 깰 정도로 불면증을 겪고 일 시작 전 68㎏이었던 몸무게는 56㎏으로 줄었다. 김씨는 "젊으니까 야간 근무가 대수냐고 호기롭게 덤볐는데 이제는 일할 체력만 간신히 유지하는 상황"이라며 "임금이 높아 야간 일을 택했는데 양질의 근무 환경도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했다.
야간 노동 '2급 발암물질'만큼 유해하지만
야간(오후 10시~오전 5시) 근로자 10명 중 5명은 김씨처럼 건강에 이상을 겪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 인원도 폭증세라 야간 근로자 건강을 보호하기 위한 제도적 개선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14일 한국노동연구원의 '근로자 특수건강진단 실시결과 통계' 보고서에 따르면 '작업 관련 질병'이나 '추적관찰 필요' 등의 건강 이상 소견을 받은 야간 근로자는 2021년 기준 63만3,000명에 이른다. 특수건강진단 대상인 야간 근로자 115만7,000명 중 54.7%의 건강에 적신호가 켜진 셈이다. 국제노동기구(ILO)가 2급 발암물질로 규정한 야간 노동은 국내에서도 산업안전보건법상 '유해(위험) 요인'이라 근로자들은 특수건강진단을 받는다.
"유럽처럼 과도한 야간 노동 규제해야"
건강 이상 소견이 나온 야간 근로자 규모는 해마다 증가하고 있다. 특수건강검진을 처음 시행한 2014년에는 14만142명이었는데, 2018년 52만3,166명으로 늘었고 2021년에는 첫해의 4.5배로 불어났다. 특히 택배 등 운수창고업 야간 근로자는 71.6%, 외환 등 금융보험업 야간 근로자는 83%로 건강 이상 소견 비율이 더 높다.
건강 이상 소견 근로자의 86.8%는 '근무 중 치료' 권고를 받지만 야간 노동-주간 휴식의 근무 패턴상 쉽지 않다고 한다. 한국노동연구원은 "야간 택배 수요가 증가하고 금융업계 야간 종사자가 늘고 있어도 건강 관리가 이뤄지는 근로자는 감소하는 추세"라며 "야간 근로자는 병원 운영시간에 치료를 받기 어렵기 때문에 실질적인 진료가 가능하도록 사업장에서 적극적으로 환경을 개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근무 환경 개선을 넘어 야간 노동 최소화가 필요하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최민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직업환경의학 전문의는 "야간 노동이 너무 쉽게 이뤄지고 근로기준법에도 관련 규제 자체가 전혀 없는 게 문제"라며 "유럽처럼 과도한 야간 노동을 제도적으로 규제하고 꼭 필요한 노동만 허용하도록 사회적 인식이 변화해야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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