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란, 한국에 묶였던 이란 석유 대금 해제 합의
"카타르중앙은행 옮겨 이란 인도 물품 구매에 사용"
이란핵합의 복원 동력 확보...미중 중동 경쟁 가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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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축구 팬이 2022 카타르월드컵 당시 미국과 이란의 경기에서 양국 국기 사이에 하트를 그려 넣었다. EPA 연합뉴스
미국과 이란이 한국에 동결돼 있던 이란 석유 대금 약 60억 달러(약 8조 원) 해제 방안에 합의했다. 이 돈을 제3국 은행을 거쳐 카타르로 송금하되 이란 국민을 위한 식량, 의약품 구입에만 사용하기로 했다. 대신 이란은 미국인 5명을 석방한다. 이에 따라 경색됐던 한국·이란 관계가 풀릴 계기가 마련됐다. 미국은 이번 합의를 계기로 이란핵합의(JCPOA)를 복원시켜 중동 정세 안정을 꾀할 것으로 보인다.
미국·이란, '한국 내 동결 60억 달러 해제' 합의
미국은 10일(현지시간)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대변인 명의 성명을 내고 “이란이 부당하게 구금했던 미국인 5명을 석방해 이들이 (이란에서) 가택연금에 들어갔다는 확인을 받았다”라고 발표했다. 이어 “최종 석방을 위한 협상이 계속 진행 중이며 석방까지는 민감한 부분이 있다”면서 자세한 내용은 함구했다.

세예드 에브라힘 라이시 이란 대통령이 지난달 4일 테헤란 대통령실에서 상하이협력기구(SCO) 정상회의에 화상으로 참여하고 있다. 테헤란=로이터 연합뉴스
이란 국영통신 IRNA는 이란 유엔대표부를 인용해 “미국 내 수감자 5명과 이란 내 수감자 5명이 맞교환될 것”이라고 보도했다. 이어 미국과 이란의 협상 타결에 따라 한국에 동결돼 있던 이란 자금이 스위스 은행으로 이체됐다고 전했다. 미 뉴욕타임스(NYT) 역시 미국은 이란이 자국 교도소에 수감 중이던 미국인을 석방하는 대가로 한국 내에 동결된 이란 자금 해제, 미국 내 수감된 일부 이란인 석방 등에 합의했다고 보도했다.
NYT와 AFP통신은 협상에 정통한 소식통을 인용, “다음 단계는 한국에 동결된 60억 달러를 이란이 식량과 의약품 같은 인도주의 물품 구매에 사용할 수 있도록 카타르 중앙은행 계좌에 이전하는 것”이라고 전했다.
한국 외교부 관계자는 사실관계를 확인하지 않은 채 "동결자금 문제 해결을 위해 미국, 이란 등과 긴밀히 협의해 왔다. 원만한 해결을 기대한다"고 말했다.
'한국-스위스-카타르 릴레이 이체' 4~6주 소요
이번 합의는 일단 진행형이다. 한국 우리은행과 IBK기업은행에는 2019년 5월 이후 동결된 이란중앙은행 명의 석유 수입 대금 60억~70억 달러가 예치돼 있었다. 2018년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의 JCPOA 탈퇴 결정 및 이란 제재에 따라 묶여 있던 자금이다.
2021년 조 바이든 대통령 취임 후 미국과 이란은 JCPOA 복원 협상을 벌였고, 이란은 한국과 이라크에 동결돼 있던 자금 해제를 요구해 왔다. 지난 3월 합의 직전까지 갔지만 이란이 추가 요구를 하면서 무산됐고, 오만, 카타르, 스위스 등이 중재에 나서면서 합의에 이르렀다.

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장관이 10일 워싱턴 국무부 청사에서 알리시아 바르세나 멕시코 외교부 장관과 공동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워싱턴= AFP 연합뉴스
이번 협상 과정을 잘 알고 있다는 싱크탱크 국제위기그룹(ICG) 알리 바에즈 이란 국장은 NYT에 “(가택연금 중인) 미국인들은 돈이 카타르 계좌에 입금되면 이란을 떠날 수 있다”며 “거액의 이란 돈을 옮기기 위해서는 복잡한 제재 면제와 허가가 필요하기 때문에 (최종 석방까지는) 4~6주 정도 소요될 것으로 보인다”라고 설명했다.
사우디·이스라엘 중재 이어 미국 중동외교 성과
미국과 이란의 전격적인 합의는 중동 정세에도 영향을 줄 것으로 보인다. 중국이 지난 3월 이슬람 시아파와 수니파 앙숙인 이란과 사우디아라비아의 국교 정상화를 이끌고, 이스라엘ㆍ팔레스타인 중재까지 꾀하면서 영향력 확대를 시도하자 미국은 다급해진 상태였다.
미국은 아랍에미리트(UAE)와 바레인 등이 2020년 9월 ‘아브라함협정’을 통해 이스라엘과 국교를 정상화하는 과정을 중재한 후로는 별다른 성과가 없었다. 지난 9일 사우디아라비아와 이스라엘의 관계 개선 합의를 이끌어낸 후 겨우 숨을 돌렸다.

알리 바게리카니(오른쪽) 이란 측 핵협상 수석대표가 5월 28일 카타르 도하에서 미국과의 핵협상을 중재해 온 엔리케 모라 유럽연합(EU) 대외관계청 사무처장과 대화하고 있다. 도하= AFP 연합뉴스
이 같은 흐름 속에서 미국이 이란과의 관계 복원 전기를 마련한 것은 의미가 크다. 2015년 버락 오바마 행정부 때의 성과인 JCPOA를 트럼프 전 대통령이 깨트렸지만 이번 합의로 협상 복원의 동력을 확보했기 때문이다.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이 10일 “어떤 경우에도 이란의 제재가 완화되는 경우는 없을 것”이라고 했지만 ‘JCPOA 시즌2’에 성공한다면 상황은 달라질 수 있다.
미국 공화당 대선후보들은 이란과의 합의에 반발했다. 동결 해제 자금이 이란혁명수비대 무기 개발이나 작전 자금으로 사용될 것이라는 우려에서다. 마이크 펜스 전 부통령은 “테헤란의 이슬람 율법학자들에게 미국 역사상 가장 거액의 몸값을 지급했다”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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