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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 속 찰나, 수천만 행운이 겹쳐 만든 오늘의 이야기

입력
2023.08.11 04:30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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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리 '좋은 곳에서 만나요'

편집자주

치열한 경쟁을 버텨내는 청년들에게 문학도 하나의 쉼표가 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수많은 작품 중 빛나는 하나를 골라내기란 어렵지요. 소설집 '여름에 우리가 먹는 것'으로 제55회 한국일보문학상을 수상한 송지현 작가가 청년들의 '자연스러운 독서 자세 추구'를 지지하는 마음을 담아 <한국일보>를 통해 책을 추천합니다.

이유리 작가 ⓒ40factory 안온북스 제공

스티븐 호킹은 죽음이란 작동을 멈추는 컴퓨터와 같다고 말했다. 고장 난 컴퓨터를 위한 천국이나 사후세계는 없다고. 그러니까 죽음은 완전한 끝이라고. 언젠가의 나는 이 말을 보고 적잖이 안도했다. 결국엔 이 모든 게 끝난다니, 어쩐지 홀가분해진 기분.

그러나 불행히도 여기 홀가분해지지 못하고 세상에 들러붙은 유령들이 있다. 이유리의 연작소설 '좋은 곳에서 만나요'에는 매 편마다 유령 화자가 등장한다. 유령들은 이미 끝난 삶의 연장선에서 다시 한번 마지막을 기다린다. 왜 자신들이 유령으로 남아버렸는지는 도무지 알 수 없는 일이고, 할 수 있는 것은 그저 생을 반추하는 일, 그러니까 기억 속에서 삶을 들여다보는(사는) 일이다.

첫 번째 작품인 '오리배'의 유령 화자 신지영은 사고로 죽게 된 후 좋은 일이 있을 때마다 가족들과 함께 오던 오리배 선착장에 머물며 엄마와 배다른 동생 희재를 기다린다. 그들에게 남아있는 좋은 일이 무엇일까 점쳐보면서.

마침내 엄마와 동생이 오리배를 타러 왔을 때, 화자는 그들이 자신이 죽고난 뒤의 슬픔을 극복하고 이곳에 당도했음을 직감한다. 그리고 그것이, 그들이 무사히 삶을 살아내는 것이, 자신이 유일하게 바랐던 것이었음을 깨닫는다.

화자는 오리배를 타는 엄마와 동생 사이에 끼어 앉아 강물을 바라본다. 시선의 끝엔 “찰랑이는 강물, 그 위에 뿌려진 빛의 조각들”이 있다. “그 반짝이는 알갱이들만큼이나 많은 슬픈 일이 있었다”고 주인공은 생각하지만 이내 “이것들은 강물이 한 번 일렁이는 동안만큼만 빛날 뿐”이라는 생의 찰나를 포착한다.

좋은 곳에서 만나요·이유리 지음·안온북스 발행·296쪽·1만6,000원

슬퍼하고 기뻐하고 사랑하고 애도하고 웃고 울던 모든 일들은 우리의 삶과 함께 사라질 것이다. 거대한 우주 속 찰나의 시기가 겹쳐 우리가 만났던 사건 또한 “강 하류로 흘러가면서 거대한 물결에 합쳐져 사라지는” 빛처럼 아득해질 것이다. 우주의 시간 속에서 우리는 아주 무의미해질 것이다. 그렇지만 무의미하다고 가치가 없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오히려 무의미라는 가치를 획득하고 우연에 기대어 살며 찰나를 영원처럼 바라볼 것이다.

그것이 단 하나뿐인 생을 사는 존재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

이유리 작가는 작가의 말에서 삶을 “다채롭고 복잡하고 아름다워서, 한 번 머물다 가기에는 아무래도 아까운 곳”이라고 말하며 “그 세계를 이루는 사람들에 대한 사랑으로” 이 이야기가 존재하게 되었음을 밝혔다.

다음이 없다는 것을 잘 알기에 삶을 더 사랑하게 되는 이야기들로 가득한 이 연작소설에서 이유리 작가가 우리에게 건넨 것은 다름 아닌 빛나는 오늘이다. 우리는 앞으로도 “수천 만의 행운이 겹쳐 만들어낸 오늘을 최대한 즐기고 많은 이야기를 나눌 것”이다. 삶과 달리 끝없이 이어질 것만 같은 이야기 속에서, 멋진 말 대신, 마치 다음이 있는 존재들처럼 이런 말을 슬쩍 던져본다.

그러니까,

우리 모두 좋은 곳에서 다시 만나요.

송지현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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