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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을 상대로 체스를 둔 마르셀 뒤샹

입력
2023.08.07 16:00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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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 ‘레디메이드’로 새로운 예술 탄생시킨 '신의 한 수'

편집자주

아무리 유명한 예술작품도 나에게 의미가 없다면 텅 빈 감상에 그칩니다. 한 장의 그림이 한 사람의 삶을 바꿀 수도 있습니다. 맛있게 그림보기는 삶의 의미를 찾아가는 그림 이야기입니다. 미술교육자 송주영이 안내합니다.

모리츠 레츠슈, 체스 플레이어들, 유화, 32.3x39cm, 1830년.

모리츠 레츠슈, 체스 플레이어들, 유화, 32.3x39cm, 1830년.

에바 바비츠와 체스를 두고 있는 마르셀 뒤샹, LA 파세데나 뮤지엄, 1963년. ©1963 Julian Wasser

에바 바비츠와 체스를 두고 있는 마르셀 뒤샹, LA 파세데나 뮤지엄, 1963년. ©1963 Julian Wasser

얼마 전 아는 목사님이 내게 물었다. "독일 화가 모리츠 레츠슈가 그린 이 체스 그림이 기독교 서적과 설교에 자주 등장하는데, 출처가 애매해요. 미국의 체스 천재 폴 머피가 이 그림 속 청년에게 '마지막 신의 한 수가 있다'고 외친 일이 사실인가요?" 나도 호기심이 생겼다. 체스를 즐겨하는 중학생 아들을 불러 그림을 보여줬더니 "이상한데? 체스의 기물(말)은 16개씩인데 그 수도 부족하고 기물도 특정할 수 없는데요?" 더 궁금해졌다. 이 체스 그림과 미술사 속 체스를 조사해 보기로 했다. 그리고 그 여정의 끝은 놀라웠다. 이 글은 그 기록이다.

각색된 실화와 새로운 게임 플레이어의 등장

모리츠 레츠슈는 괴테의 '파우스트 2권' 초판본(1832년)의 삽화를 그렸던 독일 화가다. '체스 플레이어들'(1830년)은 레츠슈가 ‘파우스트 1권’에서 모티브를 얻어 따로 제작한 작품으로, 악마 메피스토와 영혼 계약을 맺은 파우스트가 수세에 몰리며 위기를 겪는 모습을 담았다. 죽음을 상징하는 관 위에 체스판이 펼쳐져 있고, 악을 상징하는 붉은 깃털 모자를 쓴 악마, 안타까워하는 천사, 손으로 이마를 짚으며 고민에 빠진 위기의 청년 등 한눈에 봐도 오른쪽 플레이어가 곧 패배할 것 같다. 사진이 없던 시기여서 이 그림은 여러 사본으로 그려졌고, 그중 몇 점이 미국에 있었다.

시작은 1888년 8월 18일, '콜롬비아 체스 클로니클'이라는 잡지에 실린 익명의 기고문이었다. 당시 미국에서 폴 머피는 전설이었다. 공식 세계 챔피언 타이틀이 없던 시절이었지만 머피는 이미 9세에 대적할 사람이 없었던 최강자였고, 특히 킹을 한 번만 움직여 승리하는 역전의 기보(경기과정)는 지금도 유명하다. 그랬던 머피가 미국의 어느 집 서재에서 모리츠 레츠슈의 '체스 플레이어들' 사본을 봤고 "저 청년에게는 아직 신의 한 수가 남았다!"고 외쳤다는 일화가 잡지에 소개됐다. 이후 약 6개월 동안 관련 기사와 기고문이 쏟아졌다. 당시 머피는 정신질환으로 체스를 할 수 없다는 주장에서부터 그림 속 기물로는 기판을 구성할 수 없다는 반박 등이 이어졌다. 그러다가 1889년 1월 3일 일화 속 목사가 등판해 "일화를 소개했던 지인이 연도를 착각했을 뿐, 오래전 일이라 기억이 흐릿하나 폴 머피가 실제로 우리 집에 왔고 그림을 보며 비슷한 발언을 했다"며 "손님들이 함께 기물을 배치해 그림 속과 유사한 형태, 즉 더는 이길 수 없을 것 같은 상태에서 폴 머피가 역전승을 거두는 것을 보았다"고 입장문을 발표했다.

정리하자면 머피가 이 그림을 본 후 역전승을 거두는 여러 사례의 기보를 시연한 정도가 사실이다. 그러나 최근까지도 머피의 '신의 한 수' 일화는 다양하게 각색돼 심지어 프랑스 파리 루브르박물관에서 있었던 실화라며 설교 연설에 등장한다. 사실 관계가 다른 데도 사람들이 감동하는 이유는 악마를 굴복시킨 체스 천재가 구원의 하나님이라는 상징을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나약해 실수를 반복하는 파우스트를 결국 하나님이 구원한다는 것과 같다. 도무지 이길 수 없는 상대라도 신(천재)이 개입하면 이길 수 있다는 희망이다. 그러나 1997년 체스 천재 카스파로프는 IBM의 딥 블루에게 패배했다. 체스보다 더 많은 경우의 수를 가진 바둑 경기에서 이세돌은 인공지능을 이기지 못했다. 이제 악마 메피스토의 자리에 인공지능이 앉아 있다. 그런데 100년 전에 이미 이 상황을 예견한 예술가가 있다. 마르셀 뒤샹이다.

뒤샹, 예술과 체스를 두다

1887년 프랑스 노르망디에서 태어난 마르셀 뒤샹은 다양한 문화적 경험을 누리는 가정에서 자랐다. 어려서부터 함께 체스를 두며 자랐던 그의 형제 모두 화가나 조각가였다. 자연스럽게 뒤샹도 미술 아카데미를 다니며 후기인상주의, 입체파 등 당시 유행하는 화풍의 평면회화에 집중했다. 그가 1910년에 처음으로 발표한 작품은 '체스 게임'이었고 1911년에는 확연한 입체파 화풍으로 '체스 선수의 초상'을 그렸다. 미술사책에 뒤샹을 소개할 때 반드시 나오는 작품, '계단을 내려오는 나부'(1912)가 전시 거부되는 사건을 계기로 그는 기존 미술계에 의문을 가지기 시작했다. 같은 해인 1912년 파리의 비행기 전시장 방문은 마르셀 뒤샹의 인생을 바꾼 모멘텀이었다. 새로운 기술력으로 만들어진 전투기의 프로펠러를 주의 깊게 살펴보던 그는 외쳤다. "회화는 이제 끝났어! 저 프로펠러보다 더 나은 것을 어떤 예술가가 만들겠나!" 언젠가 과학기술이 인간의 손끝 재주를 뛰어넘을 것을 내다본 뒤샹은 이날부터 평면회화를 버렸다. 그리고 돌연 도서관 사서가 된다.

1913년 파리 세인트 제네비브 도서관 사서가 된 마르셀 뒤샹은 2년 가까이 수학과 물리학 책 속에 파묻혀 지냈다. 어린시절 수학대회에서 상을 받았을 정도로 수학에 뛰어났던 뒤샹은 특히 프랑스 수학자 앙리 푸앵카레(1854~1912)의 열렬한 팬이었다. 뒤샹 예술세계의 핵심인 '레디메이드'(readymade·기성품) 개념이 푸앵카레가 쓴 문장에서 왔다는 주장도 있다. (1999년 미국 하버드대 '뒤샹과 푸앵카레' 학술회, 론다 시어러 논문 참조) 도서관 사서로 일하면서 그는 '레디메이드' 작업을 시작했고, 1915년 미국으로 이민을 떠났다.

뒤샹은 화가들이 쓰는 물감도 레디메이드로 보았다. 그는 "이 세상의 모든 그림은 레디메이드의 도움을 받는 것이자 '아상블라주(assemblage·여러 물품을 모아 만든 작품)'"라고 말하면서 1917년 뉴욕 앙데팡당전에 남성용 변기를 '샘'이라는 제목으로 몰래 출품했다. 이 일로 그는 예술계의 스타가 되었고, 이후로도 '뒤샹'하면 '샘'을 떠올리게 되는 현대미술의 아이콘이 됐다.

1917년 뉴욕 67번가의 마르셀 뒤샹 스튜디오 한편에 1916년의 레디메이드 '자전거 바퀴'(두 번째 버전)가 놓여 있고, 벽에 붙어 있는 체스판을 배경으로 바닥에 고정한 옷걸이 '덫'이 '놓여 있다.(왼쪽 사진) 마르셀 뒤샹, '로즈 세라비는 왜 재채기를 하지 않지?''. 152개의 각설탕·온도계·그릇이 담긴 새장, 12.4x22.2x16.2cm, 1921년.

1917년 뉴욕 67번가의 마르셀 뒤샹 스튜디오 한편에 1916년의 레디메이드 '자전거 바퀴'(두 번째 버전)가 놓여 있고, 벽에 붙어 있는 체스판을 배경으로 바닥에 고정한 옷걸이 '덫'이 '놓여 있다.(왼쪽 사진) 마르셀 뒤샹, '로즈 세라비는 왜 재채기를 하지 않지?''. 152개의 각설탕·온도계·그릇이 담긴 새장, 12.4x22.2x16.2cm, 1921년.

역사적인 '샘'을 선보였던 1917년, 뒤샹은 뉴욕의 작업실에서 예술과의 체스 경기 첫수를 뒀다. 작업실 벽의 체스판을 배경으로 바닥에 옷걸이를 고정한 후 '덫'이라는 제목을 붙였다. 덫은 미리 말 하나를 미끼로 내어주는 체스의 전략 용어다. 뒤샹은 2차원 평면에 놓인 체스 기물을 3차원 현실 공간으로 끌어내며 '개념미술'을 시작한 것이다. 그즈음 뒤샹은 미국의 사진작가 맨 레이와 교류하면서 '로즈 세라비'라는 여성으로 분장하는 행위예술도 시작했다. 로즈 세라비는 프랑스어로 ‘에로스, 그것이 인생이다’라는 말로 들리는데, 뒤샹은 이러한 언어유희를 즐겨 사용하면서 로즈 세라비의 이름을 차용한 작품들을 발표했다. ‘로즈 세라비는 왜 재채기를 하지 않지?’(1921)는 온도계, 접시, 오징어뼈, 152개의 각설탕 육면체들을 새장 속에 넣은 설치미술로, 체스판 보드를 3차원으로 해석한 육면체들이 엉키면서 완성된 새로운 예술 프로젝트였다.

마르셀 뒤샹, 16마일의 줄, 1942년. © Leo Baeck Institute.(왼쪽 사진) 마르셀 뒤샹, '고무장갑이 있는 포켓 체스', 1944년. 맨 레이 촬영

마르셀 뒤샹, 16마일의 줄, 1942년. © Leo Baeck Institute.(왼쪽 사진) 마르셀 뒤샹, '고무장갑이 있는 포켓 체스', 1944년. 맨 레이 촬영

뒤샹은 1923년부터 더욱 체스에 매달렸다. 1925년에는 체스대회 포스터를 디자인했고, 이 대회에 직접 출전해 체스 마스터가 되더니, 1932년에는 체스 전략집을 출간하기에 이른다. 이 책에는 뒤샹이 제작한 ‘녹색상자’가 나오는데, 이는 초기 컴퓨터 언어에 대한 일종의 실험이었다. 1940년대 뉴욕의 갤러리에서 전시회를 열었을 때도 그는 여전히 체스 프로젝트에 몰두했다. 1942년의 '16마일의 줄'은 갤러리에 전시된 작품들을 거미줄처럼 연결한 설치미술 작품으로 16개의 기물로 상징되는 체스 플레이어의 머릿속 계산 과정을 상징한다. 1943년에 만든 '포켓 체스' 세트는 고무 스탬프로 만든 체스를 사용해 서신으로 진행하는 비대면 원격 게임 아이디어가 담겨 있다. 1944년의 '고무장갑이 있는 포켓 체스'는 오늘날 키보드 위에 올려진 사람의 손이 원격 온라인 게임을 하는 듯한 느낌이다. 뒤샹은 체스 기물 총 32개를 상징하는 32명의 다양한 분야 전문가들을 초청해 뉴욕 줄리앙레비 갤러리에서 이벤트를 개최했고, 최초의 비대면 체스게임 퍼포먼스도 선보였다.

1952년, 65세의 뒤샹은 "모든 예술가가 체스 선수는 아니지만, 모든 체스 선수는 예술가다"라는 말을 남겼다. 1963년, 76세의 뒤샹은 로스앤젤레스 패서디나 미술관 한가운데에서 누드모델 에바 바비츠와 조용히 체스를 두고 자리를 떠났다. 그것이 마르셀 뒤샹의 ‘예술가 은퇴식’이었다. 1917년에 첫수를 둔 지 48년 만에 마지막 수를 두며 '예술'과의 체스 게임을 끝내는 순간이다. 1968년 뒤샹은 미국의 전위음악가 존 케이지(1912~1992)와 전자 체스를 두는 퍼포먼스를 한 후, 고향 프랑스에서 조용히 숨을 거뒀다.

파우스트, 뒤샹, 그리고 인간

뒤샹은 죽는 순간에도 게임을 했다. 자신의 사후에 공개하라고 남긴 작품 '에땅 도네'는 문구멍으로 누드를 보는 투시화 형태의 설치미술로서, 뒤샹이 체스를 위해 미술을 포기했다고 여기던 사람들의 뒤통수를 쳤다. 많은 미술사가가 뒤샹이 미술을 접고 체스나 두며 '놀았다'고 봤지만 이는 사실이 아니다. 뒤샹은 체스라는 매개체를 활용하여 과학이론과 예술이론 양쪽 모두를 공략하며 자기 평생을 작품으로 엮어낸 예술가다."그림이나 조각을 만들며 시간을 보내기보다는 차라리 내 인생 자체를 예술작품으로 창조하기 위해 노력한 것이 가장 만족스럽다." 뒤샹의 말이다. 괴테 역시 평생 '파우스트'를 썼지만 당대 사람들이 이해하지 못할 것이라 판단하고 자신의 작품을 사후에 공개하라고 했다. 난해하지만 깊은 의미를 담은 작품을 평생에 걸쳐 남긴 괴테와 뒤샹, 이들이 결국 탐구했던 것은 '인간'이었을 것이다.

뒤샹이 비행기 프로펠러 앞에서 "과학기술이 결국 인간을 뛰어넘을 것"을 눈치챈 지 111년이 지난 지금, 실제로 우리는 도무지 이길 수 없는 플레이어가 된 인공지능 앞에서 손을 이마에 짚고 고민 중이다. 사진기보다, 기계보다, 인공지능보다 뛰어날 수 없는 인간, 그것이 우리들이다. 창의성마저 인간 고유의 영역이 아닐 수 있다. 하지만 뒤샹이 우리에게 슬쩍 남겨준 힌트가 있다. 도무지 이길 수 없는 상대(사진기, 기계, 인공지능, 또는 악마)를 이기는 일은 가능하다. 왜냐하면 뒤샹은 도무지 예술이라고 볼 수 없는 변기를 완전히 새로운 예술로 만드는 데 성공했기 때문이다. 뒤샹의 '레디메이드'는 기존의 예술을 벗고 새로운 예술을 탄생시킨 신의 한 수였다. 괴테가 파우스트에 남긴 말이 있다. "인간은 지향이 있는 한 방황한다." 방황하며 질문하며 새로운 가능성을 찾는 인간에게 '신의 한 수'가 있다.

마르셀 뒤샹, ‘샘’ (1964년 복제본), 슈바르츠 갤러리 소장

마르셀 뒤샹, ‘샘’ (1964년 복제본), 슈바르츠 갤러리 소장



미술교육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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