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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앙된 백악관 vs 차분한 시장… 미국 신용등급 강등에 엇갈린 반응,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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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앙된 백악관 vs 차분한 시장… 미국 신용등급 강등에 엇갈린 반응, 왜?

입력
2023.08.03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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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든 재선 차질 생길라… 여권 ‘발끈’
투자자는 미 국채 위상 변함없다 신뢰
“부채 이자 막대, 피치 경고 무시 곤란”

재닛 옐런 미국 재무부 장관이 2일 버지니아주 맥클린의 국세청 청사를 방문해 연설하고 있다. 이날 그는 전날에 이어 피치의 미국 신용등급 강등 결정을 이틀 연속 비난했다. 맥클린=AFP 연합뉴스

재닛 옐런 미국 재무부 장관이 2일 버지니아주 맥클린의 국세청 청사를 방문해 연설하고 있다. 이날 그는 전날에 이어 피치의 미국 신용등급 강등 결정을 이틀 연속 비난했다. 맥클린=AFP 연합뉴스

국제 신용평가사 피치의 미국 신용등급 강등에 대한 조 바이든 미 행정부와 투자자들의 반응이 극명하게 엇갈리고 있다. 격앙된 어조로 억울함을 호소하는 백악관 등 여권과 달리, 자금 시장은 당장 큰 동요 없이 차분한 모습이다. 선심 공약을 불러 국가 재정에는 늘 악재로 작용하는 선거가 가시권인 데다, 증가일로 부채에 이자 부담도 적지 않은 만큼 장기적으로 피치의 경고를 도외시하기는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2일(현지시간) “피치의 미국 신용등급 하향으로 촉발된 대응이 분할 화면에서 재생된 것처럼 대조적”이라며 백악관과 시장을 대비했다. 실제 바이든 행정부의 후속 반응은 분노에 가깝다. 블룸버그통신 등에 따르면, 강등 발표 당일인 전날 성명을 통해 “자의적이고 낡은 데이터를 토대로 삼았다”며 피치 결정을 나무랐던 재닛 옐런 재무부 장관은 이날 버지니아주(州) 맥클린의 국세청을 찾아서도 “(바이든 정부 출범 뒤) 2년 반 동안의 거버넌스(국정 통치 체제) 등 관련 지표의 개선 상황이 반영되지 않았다”며 거듭 발끈했다.

이번 등급 강등을 야당인 공화당은 대여 정치 공세의 빌미로 삼고 있지만, 도리어 전임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탓이라는 게 미국 정부와 여권의 인식이다. 케빈 무노스 바이든 대선 캠프 대변인은 NBC방송 등 언론 인터뷰에서 이번 등급 조정을 ‘트럼프 강등’으로 부른 뒤, “수백만 개의 일자리를 사라지게 만들고, 부자·대기업에 대한 재앙적 감세로 적자를 확대한 것은 트럼프 전 대통령”이라며 화살을 돌렸다.

이런 반발에는 내년 11월 대선을 앞두고 성과를 본격적으로 부각하기 시작한 ‘바이드노믹스’(바이든 대통령의 경제 정책)에 흠집이 날 수 있다는 우려가 작용했을 것으로 미 언론들은 보고 있다. 자신에게 비판적인 국민도 이 정책의 수혜자라는 점을 홍보하려던 재선 전략에 차질이 빚어지게 생겼다고 여긴 바이든 대통령이 이번 결정에 예민한 반응을 보였다고 블룸버그가 전하기도 했다.

반면 미 국채 시장은 비교적 평온한 분위기였다. 10년물 국채 금리가 이날 한때 9개월 만에 최고치로 뛰기도 했으나 금세 제자리 근처까지 돌아와 전날보다 0.04%포인트 오른 4.08%를 기록했다. 대다수 투자자가 미국 신용등급이 내려갔다는 이유로 보유 중인 미 국채를 처분하지 않을 테고, 이에 따라 정부의 자금 차입 비용(국채 금리)도 크게 상승하지 않을 것이라는 FT의 예상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은 결과다.

여기에는 미 국채의 안전자산 위상이 등급과 무관하다는 금융 투자자들의 신뢰가 배경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게 전문가들 설명이다. 자산운용사 얼라이언스번스타인의 선진시장경제조사국장인 에릭 위노그라드는 FT에 “오늘 미국의 디폴트(채무불이행) 확률은 (등급 강등 전인) 어제와 완전히 똑같다”고 말했다. 미국의 등급이 ‘AA+’로 하향됐다고 미 국채를 이보다 상위인 다른 ‘AAA’ 등급 국채로 바꾸는 투자자도 없으리라는 게 FT가 전한 애널리스트들의 중론이다. 시장이 불안해지면 오히려 위험 회피 움직임에 편승해 등급이 떨어진 미 국채 등 안전자산을 사들이는 투자자가 속출하리라는 전망마저 제기된다.

피치, 미국 등급 강등 배경으로 ‘의사당 폭동’ 거론

미국 의회 폭동 사태 발생 1년인 지난해 1월 6일 워싱턴 의사당 앞에서 상하원 의원들이 참석한 가운데 희생자들에 대한 추념식이 열리고 있다. 워싱턴=AP 연합뉴스

미국 의회 폭동 사태 발생 1년인 지난해 1월 6일 워싱턴 의사당 앞에서 상하원 의원들이 참석한 가운데 희생자들에 대한 추념식이 열리고 있다. 워싱턴=AP 연합뉴스

그렇다고 현재로선 피치의 이번 등급 하향을 아예 무시할 수 있는 상황도 아니라는 게 미 월스트리트저널(WSJ)의 분석이다. WSJ에 따르면 무엇보다 문제는 정부의 이자 부담이다. 현재 미 연방정부 부채는 31조 달러(약 4경 원)가 넘는다. 이에 따른 2024년 회계연도 순이자가 7,450억 달러(약 966조 원)라는 게 미 의회예산국(CBO) 예측이다. 이는 국방 분야를 뺀 재량 지출의 4분의 3으로, 지난해 급등한 물가상승률을 잡느라 미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공격적으로 금리를 올리며 규모가 대폭 커졌다.

악화하는 재정 건전성과 더불어 피치가 등급 강등 요인으로 지목한 것은 미국의 ‘정치’다. 양극화 탓에 양당 대치가 갈수록 심해지며 의회가 막판에야 부채한도에 합의하곤 하는데, 이런 관행이 채무 상환 불확실성을 키운다고 피치는 꼬집었다. 피치 수석 이사인 리처드 프랜시스는 2일 로이터통신에 2021년 1월 6일 발생한 ‘의사당 폭동’ 사태도 등급 강등 결정에 영향을 미쳤다고 짚었다. 미국의 거버넌스 약화와 정치 환경 양극화 심화의 단적 사례로 봤다는 것이다.

권경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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