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양한 이해당사자 얽히고설킨 PF 대출
내부통제 미흡 시 대형사고 발생 가능성↑
1년간 여러 대책에도 몰랐다... 금감원 '뒷북'
BNK경남은행에서 발생한 500억 원대 대형 횡령 사고는 현재까지 한 은행원의 작심 범죄로 보인다. 하지만 이면에는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대출의 복잡한 구조, 그럼에도 내부통제 의무를 등한시한 은행, 금융당국의 감시 소홀 등 금융권 난맥상의 집약체라는 지적이 나온다. 은행과 당국은 뒤늦게 또 내부통제 강화를 되풀이했다.
'깜깜이' PF 구조... 내부통제 안 되면 구멍 '숭숭'
3일 금융권에 따르면 562억 원을 횡령한 혐의를 받고 있는 경남은행 부동산투자금융부 부장 이모(50)씨의 범죄 타깃은 본인이 15년 안팎 담당한 PF 대출 자금이었다. PF 대출은 시행사가 개발하고자 하는 프로젝트의 사업성과 미래 가치를 내세워 자금을 조달하는 방식이다. 시행사엔 적은 자금으로 큰 대출을 일으킬 수 있고, 금융기관도 막대한 개발이익을 기대할 수 있어 대규모 건설에서 자주 이용된다.
문제는 PF 대출 구조가 워낙 복잡해 담당자가 아니면 제대로 흐름을 읽기가 어렵다는 데 있다. 단순화해 설명하더라도 시행사와 시공사, 수분양자, 대출기관, 신탁사, 자산관리사, 자문사 등 자금이 오가는 주체가 얽히고설켜 있다. 자금 관리가 한곳에서 이뤄지는 게 아니라 여러 단계를 거치고, 개발 공정률에 따라 자금 흐름도 빈번하다. 과정마다 입금을 지연시키고 자금을 다른 곳으로 빼돌릴 수 있는 ‘구멍’이 적잖은 셈이다. 이씨의 범행처럼 서류를 위조해 자금을 빼돌리는 사건이 발생해도 오랫동안 발각되지 않을 수 있다. 한 부동산 개발 관계자는 “규모가 큰 PF의 경우 대출을 여러 기관으로부터 받는 데다, 차주가 펀드나 단체인 경우도 있어 누가 마음먹고 중간에서 돈을 빼돌린다 해도 알기 힘들 수 있다”고 귀띔했다.
막대한 자금이 오가는 탓에 사고가 나면 대형 금융범죄로 연결되기도 한다. 지금까지 드러난 이씨의 범행은 7년간 세 차례인데, 한 번에 최소 78억 원에서 최대 326억 원을 빼돌렸다. KB저축은행(94억 원), 모아저축은행(54억 원), 한국투자저축은행(8억 원) 지난해 발각된 유사 PF 대출 횡령 역시 만만찮은 규모였다.
내부통제 혁신방안도 나왔는데…감시기능 먹통
PF 대출이 ‘작심하면 누구나 돈을 가로챌 수 있는 구조’라는 점을 금융권과 금융당국이 모를 리 없다. 그렇기에 관련 내부통제 강화 대책을 쏟아내기도 했다. 실제 우리은행 직원의 약 700억 원에 이르는 횡령 사고가 드러난 이후 금융당국과 은행권은 지난해 10월 '국내은행 내부통제 혁신방안'을 마련했다. 특히 혁신방안엔 부동산 PF 등 ‘고위험 거래’에 대해 각별한 내부통제를 주문하는 내용이 담겼다. 은행권도 특정 업무에서 장기근무를 제한하는 '인사 관련 내부통제 모범규준'을 제정, 각 은행 내규에 반영했다.
그럼에도 또다시 대형 금융사고가 발생했다는 점은 시스템의 허점이 아닌 내부통제, 관리감독의 부재라고 볼 수밖에 없다. 어느 업무보다 강도 높은 내부통제가 필요함에도 경남은행에서는 작동하지 않았다.
금융당국도 면이 서지 않는 것은 마찬가지다. 금감원은 부동산 PF 부실 위험성을 최소화하기 위해 작년부터 전 PF 사업장을 대상으로 전수조사를 펼쳤지만, 정작 경남은행에서 벌어진 대규모 횡령은 잡아내지 못했다. 이씨의 범행이 드러난 계기도 은행이나 금융당국의 조사가 아닌 검찰 수사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씨의 범행이 대형 금융사고인 것으로 알려진 후 금감원이 재차 은행권에 PF 자금관리 전반을 점검하라고 지시한 뒷북 감독도 도마에 오른다. 지난해 7월 "부동산 PF, 브리지 대출이 집중된 업권의 상황을 전체적으로 점검하겠다”던 이복현 금감원장의 호언장담이 무색해진 셈이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치기에 나서는 식의 대응도 되풀이됐다. 이날 예경탁 경남은행장은 기자회견을 열고 공식 사과하면서 “고객의 신뢰를 조속히 회복하기 위해 경남은행 전 임직원은 비장한 각오와 뼈를 깎는 노력으로 새롭게 거듭날 것”이라며 “내부통제 분석팀을 신설하는 등 내부통제 개선을 위한 강도 높은 보완책을 마련하겠다”고 말했다. 금융당국 관계자도 “대규모 횡령 사건이 1년 만에 재발한 만큼, 이제는 실효성 있는 내부통제 시스템이 필요하다"며 “이를 법에 반영할지, 은행 조직문화를 개선하도록 유도할 것인지가 앞으로의 숙제"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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