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아나키스트 로빈 후드’는 왜 은행을 증오했을까

입력
2023.08.05 10:00
19면
0 0

넷플릭스 영화 '맨 오브 액션'

편집자주

※ 차고 넘치는 OTT 콘텐츠 무엇을 봐야 할까요. 무얼 볼까 고르다가 시간만 허비한다는 '넷플릭스 증후군'이라는 말까지 생긴 시대입니다. 라제기 한국일보 영화전문기자가 당신이 주말에 함께 보낼 수 있는 OTT 콘텐츠를 2편씩 매주 토요일 오전 소개합니다.

은행강도였던 루시오 우르투비오(왼쪽)는 달러를 위조해 미국 경제를 무너뜨리겠다는, 원대한 계획을 세우고 이를 실천한다. 넷플릭스 제공

은행강도였던 루시오 우르투비오(왼쪽)는 달러를 위조해 미국 경제를 무너뜨리겠다는, 원대한 계획을 세우고 이를 실천한다. 넷플릭스 제공

넷플릭스 바로 보기 | 15세 이상

1950년대 루시오 우르투비오(후안 호세 발레스타)는 스페인에서 군대를 탈영해 프랑스 파리에 산다. 파리에는 그처럼 가난한 스페인 노동자들이 적지 않다. 우르투비오는 동료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아나키즘을 접하고 금세 빠져든다. 전설적인 아나키스트 사바테 퀴시오(미키 에스파르베)와 만나면서 그의 신념은 더욱 단단해진다. 퀴시오는 우르투비오 인생에 큰 영향을 끼친다. 퀴시오는 돈을 모든 악의 근원이라고 설파한다. 퀴시오는 은행을 털어 가난한 자들에게 돈 일부를 나누어주고 나머지는 스페인 동지들에게 혁명 자금으로 보낸다. 우르투비오는 그런 퀴시오를 돕다가 인생의 길을 정한다.

①은행털이에서 위조범으로

우르투비오는 전설적인 아나키스트 사바테 퀴시오와 은행을 털면서 아나키즘을 신봉하게 된다. 넷플릭스 제공

우르투비오는 전설적인 아나키스트 사바테 퀴시오와 은행을 털면서 아나키즘을 신봉하게 된다. 넷플릭스 제공

우르투비오는 퀴시오와 은행강도가 된다. 퀴시오에게 범죄 노하우와 아나키스트로서의 규범을 배운다. 형사가 둘을 쫓으면서 은행털이는 힘들어진다. 우르투비오는 좀 더 대범한 생각을 하게 된다. 혁명의 훼방꾼 미국의 경제질서를 어지럽히겠다며 달러를 대량으로 위조해 유포할 계획을 세운다. 우연히 만난 대학생 안(리아 오프레이)은 우르투비오의 연인이자 든든한 동지가 돼 준다. 우르투비오는 쿠바 혁명을 이끈 체 게바라에게 접근해 위조 달러 유포를 함께 하자는 제안까지 한다. 요주의 인물로 눈여겨보던 경찰들이 우르투비오를 놓아둘 리 없다.

②행동하는 인간의 전형

우르투비오는 거대 은행과 공권력을 상대로 대범한 '작전'을 펼치나 결국 경찰에 체포된다. 하지만 이야기는 여기에서 끝나지 않는다. 넷플릭스 제공

우르투비오는 거대 은행과 공권력을 상대로 대범한 '작전'을 펼치나 결국 경찰에 체포된다. 하지만 이야기는 여기에서 끝나지 않는다. 넷플릭스 제공

시간이 흐르고 경찰의 감시가 계속되어도 우르투비오는 신념을 꺾지 않는다. 시대 변화에 맞춰 새로운 방식의 혁명을 꿈꾼다. 제목이 의미하는 ‘행동하는 인간’ 그대로다. 아나키즘을 현실에서 구현하기 위해 은행 돈을 훔치고 이를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눠 주기를 반복한다.

우르투비오는 돈키호테 같은 인물이다. 현실을 전혀 고려하지 않는 이상주의자다. 영화 속에나 존재할 만하다. 놀랍게도 그는 실존(1931~2020)했다. ‘맨 오브 액션’은 우르투비오의 삶을 뼈대로 허구를 보탠 영화다. 스페인 유명 극작가 알베르 보아데르는 그를 “풍차가 아닌 진짜 거인과 싸웠던 돈키호테”라고 평가했다.

③매력적인 인물에 대한 허술한 묘사

우르투비오는 은행을 털고 달러와 수표를 위조하고도 감옥에서 삶을 마감하지 않는다. 넷플릭스 제공

우르투비오는 은행을 털고 달러와 수표를 위조하고도 감옥에서 삶을 마감하지 않는다. 넷플릭스 제공

우르투비오는 프랑코 독재에 맞서 싸웠던 아버지의 영향을 받은 듯하다. 어린 그가 아버지를 위해 동네 은행을 찾아가 돈을 빌리려 할 때 은행 직원은 ‘공화주의파’라고 아버지를 비난한다. 기성체제에 대한 반감, 은행에 대한 적개심이 우르투비오의 마음에 어떻게 싹텄는지 보여주는 대목이다.

영화 만듦새는 현대판 로빈 후드라 할 매력적인 인물을 따라잡지 못한다. 은행강도와 달러 위조라는 범죄가 수시로 등장하고, 끈끈한 동지애가 화면에 스미나 스릴이나 감동으로 이어지진 않는다. 우르투비오라는, 우리에게는 잘 알려지지 않은 인물의 행적은 그래도 흥미롭고 여운을 남긴다.

뷰+포인트

20세기 후반 자본주의 한복판에 섰던 혁명가는 고립된 채 비극적으로 죽어 가기 마련이다. 하지만 우르투비오는 놀라운 해피 엔딩을 이끌어낸다. 미국의 거대 은행 시티은행과 공권력을 상대로 얻은 꿈 같은 결말이라서 실화라고 믿기 어려울 정도다. 우르투비오는 거대 은행에서 얻어낸 ‘승리’의 성취를 혼자만을 위해 활용하지 않는다. 그는 끝까지 아나키즘 신봉자답게 행동하는 인물로 남는다. ”세상이 변했다”는 주변인들의 만류에도 오직 하나의 길을 우직하게 걸었던 우르투비오 삶은 어느 영화 속 내용보다 경이롭다.
***로튼토마토 신선도 지수: 관객 71%
***한국일보 권장 지수: ***한국일보 권장 지수: ★★★(★ 5개 만점, ☆ 반 개)


라제기 영화전문기자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