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직 영어강사, SNS에 '토익만점' 광고 게시
시나리오별 치밀한 범행... 23차례 부정행위
최고 500만 원 수수료에도 의뢰인 만족도↑
“토익(TOEIC), 텝스(TEPS) ‘만점’ 무조건 가능합니다.”
20대 남성 A씨가 2021년 7월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올린 이 광고가 시작이었다. 어학점수에 목맬 수밖에 없는 수많은 취업준비생들의 귀가 솔깃해진 건 당연지사. ‘어떻게 만점을 받느냐’는 몇몇 수험생의 의심 가득한 질문에도, A씨는 “절대 걸리지 않는 커닝(cunning) 방법이 있다”고 자신 있게 답했다.
그럴 만도 했다. A씨의 수법은 취준생들이 혹할 만큼 치밀했다. 큰 틀에서 두 가지 경우의 수를 가정해 계획을 짰다. 그는 먼저 의뢰인과 같은 시험에 응시했다. ①만약 A씨가 의뢰인과 동일한 고사장에 배치돼 같은 화장실을 사용할 수 있게 되면, 범행은 수월해진다. 듣기평가 후 통제 아래 한 명씩 화장실 이용이 가능하다는 점을 노린 것이다. 그는 시험 종료 30분 전에 문제를 다 풀고 답안을 종이에 옮겨 적은 뒤 쪽지를 화장실에 두고 왔다. 그러면 의뢰인이 시간차를 두고 화장실에서 쪽지를 가져와 감독관 눈을 피해 몰래 받아 적었다.
②다른 고사장에 배치돼도 다 방법이 있었다. A씨와 의뢰인은 공기계 휴대폰을 하나씩 준비했다. 이들은 시험 감독관에게 공기계를 제출하고 진짜 휴대폰은 화장실 양변기 뒤쪽에 숨겨놨다. 이후 A씨는 마찬가지로 종료 30분 전 작성한 답안 쪽지를 들고 화장실로 향했고, 휴대폰으로 답안 사진을 찍어 텔레그램 메시지로 전송했다. 의뢰인도 화장실에서 전송받은 답안을 쪽지에 옮겨 적고 고사장으로 돌아왔다.
범행이 완성되려면 당연히 A씨의 실력이 출중해야 한다. 그는 음지의 고수였다. 미국의 한 대학을 졸업하고 국내 유명 어학원에서 일했을 정도로 영어능력이 빼어났다. 하지만 불미스러운 일로 해고된 뒤 스포츠토토에 빠져 살았다. 도박으로 수천만 원을 탕진한 그는 도박자금과 생활비를 벌 요량으로 범행을 계획했다.
건당 300만~500만 원의 수수료를 냈지만, 의뢰인들의 만족도는 상당히 높았다. A씨는 원하는 점수대에 맞춰 답안을 제공했고, 혹여 의뢰인이 답안을 잘못 옮겨 적거나 광학마크판독기(OMR)에 답을 밀려 작성해도 추가 금액 없이 확실히 애프터서비스를 해줬다.
A씨가 던진 미끼를 문 사람은 19명. 이들은 총 23회에 걸쳐 부정시험을 치렀고, 대부분 목표 점수에 도달했다. 부당하게 취득한 점수는 취업과 대학원 졸업 등에 활용됐다.
반복된 범행은 지난해 11월 한 의뢰인이 쪽지 답안을 OMR에 옮겨 적다 감독관에게 적발되면서 꼬리가 잡혔다. 한국토익위원회는 “부정시험이 의심된다”며 경찰에 제보했고, 서울경찰청 광역수사단 국제범죄수사계는 수사를 거쳐 관련자들을 모두 검거했다. 경찰은 3일 A씨와 의뢰인 19명을 업무방해 등 혐의로 검찰에 송치했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