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위 "권고 후 1년째 4차 계획 수립 안 돼"
향후 5년 청사진 부재... "인권은 뒷전" 비판
"교권 논란도 체계적인 밑그림 있어야 개선"
반년 넘게 한국의 ‘인권 시계’가 멈췄다. 정부가 한 나라의 인권 청사진인 ‘국가인권정책기본계획(NAP)’ 수립을 1년 가까이 미루면서 차별금지법 제정, 취약계층 노동권 개선 등 각종 인권 현안 대응에 경고등이 켜졌다. 최근 사회적 논란이 된 교사ㆍ학생인권 문제도 NAP 같은 장기 계획이 없으면 구조적 대책을 세울 수 없다.
국가인권위원회는 3일 송두환 위원장 명의의 성명을 통해 “지난해 제3차 인권기본계획이 종료되고 1년이 경과한 이날까지 제4차 계획이 만들어지지 않아 인권에 관한 중장기적 종합계획이 부재한 상황”이라며 “정책적 개선이 시급한 인권문제가 상당하다는 점을 감안할 때 4차 계획이 조속히 수립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NAP는 국가가 향후 5년간 인권보호와 증진을 위해 관련 법ㆍ제도ㆍ관행을 어떻게 바꿀지 큰 틀의 방향성을 정하는 작업이다. 유엔은 1993년 세계인권회의 이후 각국에 인권기본계획 수립을 권고하고 있다. 한국도 2007년 제1차 계획(2007~11년)을 시작으로 2차(2012~16년), 3차(2017~22년) 계획을 만들어 시대에 맞는 인권정책의 토대로 삼았다.
하지만 올해 1월부터 적용돼야 할 4차 계획은 반년 넘게 감감무소식이다. 인권위가 지난해 8월 권고안을 정부에 제출한 것을 고려하면 1년간 관련 논의가 정체된 셈이다. 법무부는 당초 지난해 11월 계획 수립에 필요한 공청회를 열기로 했지만, ‘이태원 참사’ 수습 등의 이유로 행사를 연기했다가 9개월 만인 이달 29일 일정을 다시 잡았다. 법무부 관계자는 “과거에도 정부 교체기에는 새 정부 정책기조에 맞는 인권 수요를 반영하는 과정에서 NAP 수립에 다소 시간이 걸렸다”고 해명했다.
시민사회는 인권을 도외시한 윤석열 정부의 정책 기조가 사회 곳곳에서 파열음을 내고 있다고 비판한다. 정부에 반발하는 집회ㆍ시위와 노조에 강경 대응으로 일관하는 태도나, 장애인 등 약자혐오 정서가 점증한 배경에 인권 경시 풍토가 있다는 것이다. 박찬운 한양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NAP 수립이 지연되는 데는 윤 대통령의 인권관이 반영돼 있다”며 “인권 속성 자체가 진보적인 데다, 현 정부가 전임 정부 정책을 부정하다 보니 제대로 된 인권정책을 세울 수 없는 것”이라고 진단했다.
NAP 마련을 명문화하는 ‘인권정책기본법’ 입법을 촉구하는 여론이 커지는 것도 이 때문이다. 현재 NAP 수립은 인권위 정책권고에 불과해 강제성이 없다. 이를 개선할 목적으로 법무부와 인권위가 인권정책기본법 제정안을 마련해 지난해 국무회의를 통과했으나 아직 국회 문턱을 넘지 못했다. 다른 정쟁에 밀려 제정안을 만든 정부도, 야당도 사실상 손을 놓고 있는 실정이다.
NAP 수립이 계속 표류하면 최근 교권 침해 논란 등 쟁점이 첨예한 현안에 체계적으로 대응할 수 없다는 지적도 나온다. 황필규 공익인권법재단 공감 변호사는 “2018년 ‘스쿨 미투’처럼 인권문제는 거대한 사회적 이슈가 됐다가도 금방 수그러들기 마련”이라며 “대중과 언론이 외면해도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려면 NAP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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