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진국들, '고액 연봉·비자 완화'로 영입 경쟁
개도국선 '의료불평등' 심화... WHO도 '우려'
부자 나라들이 전 세계 보건 양극화를 부추기는 행보로 눈살을 찌푸리게 만들고 있다. 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으로 발생한 의료 공백을 메우기 위해 외국인 의료진을 영입하려는 각국 쟁탈전이 치열한 가운데, 개발도상국의 필수 의료 인력에까지 손을 뻗고 있기 때문이다. 급기야 세계보건기구(WHO)도 부국(富國)들의 ‘의료진 약탈’에 대해 공개적으로 우려를 표하고 나섰다.
개도국 의료진 흡수 나선 선진국들
1일(현지시간)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영국, 호주 등 선진국들이 외국 의료진 유치 전쟁에 뛰어들며 전 세계 인재를 흡수하고 있다”며 이같이 보도했다. 팬데믹 장기화로 피로가 누적된 의사와 간호사가 대거 직을 떠난 데다, 고령화 등으로 인해 의료 인력 수요가 급증한 상황이 배경으로 작용했다고 한다. 특히 선진국에선 의료 분야 전문 인력 교육에 수년이 소요되기 때문에, 차라리 해외 숙련 인력을 ‘스카우트’하는 게 더 간편하다는 판단이 깔려 있을 것이라고 WSJ는 설명했다.
실제 코로나19 사태가 진정 국면을 맞고 국경이 다시 열리면서 부국들은 꽤 공격적으로 해외 의료진 영입에 나서고 있다. 고액 급여와 비자 발급 요건 완화 등이 대표적인 유인책이다. 영국은 아예 의료직 종사자를 위한 전용 비자를 새로 도입했다. 호주는 주정부에서 생활보조금을 지원하며, 아일랜드도 지난해 자국 체류 중인 의료 종사자들이 떠나지 않도록 고용 제한을 완화했다. WHO의 조사 결과, 최근 몇 년간 외국인 의료 인력을 더 쉽게 고용하는 법을 도입한 나라는 70여 곳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선진국들의 이런 유치전에 적극 움직이는 건 개도국 의료진이다. 영국 이민시스템 통계에 따르면, 지난 1년간 영국에서 의료직 종사자 대상 비자는 약 10만 건(올해 3월 기준)이 발급됐는데, 이 중 대다수가 인도와 아프리카 짐바브웨, 나이지리아 출신이었다. 독일도 가나, 브라질, 알바니아 출신 의료진을 주로 흡수하고 있다고 WSJ는 전했다.
필수 인력도 빼간다... 세계 '의료 양극화' 우려
자연스레 개도국 보건 실태는 갈수록 열악해지고 있다. 의사와 간호사가 줄줄이 이탈하고 있는 탓이다. 특히 원래부터 필수 의료 인력 부족을 호소해 온 아프리카 국가들의 원성이 높다.
결국 이민 자체를 막는 법안까지 추진되고 있다. 콘스탄티노 치웬가 짐바브웨 보건장관은 “선진국의 편의 때문에 우리나라 병원의 환자 대처가 어려워졌다”며 자국 의료인에 대한 외국의 적극적 채용을 범죄로 규정하는 법안을 통과시키겠다고 밝혔다. 나이지리아 의회도 의사가 외국으로 이주하려면 최소 5년간 본국에서 근무해야 하도록 하는 법안을 검토하고 있다. 두 나라의 의료 인력이 썰물처럼 빠져나가고 있는 현실을 감안한 극약처방이다. 최근 1년간 영국으로 떠난 짐바브웨와 나이지리아 의료진은 각각 1만7,000여 명으로, 전년 대비 5.6배, 2.5배나 늘어났다.
이런 추세가 이어지면 글로벌 의료 양극화가 더 심해질 것이라는 경고음도 울린다. 지난 3월 WHO가 발표한 ‘보건 인력 문제가 가장 시급한 국가’ 55개국(아프리카 37개국)은 인구 1만 명당 의료 종사자가 평균 15명에 불과했다. 고소득 국가(148명 수준)의 10분의 1 수준이다. WHO는 “해당 55개국을 상대로는 의사와 간호사를 적극 모집하지 말아 달라”고 회원국들에 요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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