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뱀 포획·구조 건수, 6월만 2300건
녹·습지 많은 환경, 폭우·폭염 이상기후
"함부로 잡지 말고 피하거나 신고해야"
“으앗, 왕지렁이가 아니라 뱀이었네!”
# 서울 강남구 대치동에서 공인중개사사무소를 운영하는 이성민씨는 지난달 28일 여느 때처럼 점심식사를 마치고 인근 양재천을 산책하다가 깜짝 놀라 주저앉을 뻔했다. 산책로와 경계석 틈새로 뱀이 머리를 내밀고 있었던 것. 이씨는 “무심코 지나갔으면 나뭇가지로 착각했을 것”이라며 “뱀도 인기척에 놀랐는지 미처 신고할 새도 없이 번개처럼 사라졌다”고 말했다.
# 충북 청주시에서 대학 교직원으로 일하는 양진석씨는 이제 뱀을 봐도 무덤덤하다. 올 4월 캠퍼스 내 도로에서 처음 뱀을 목격했을 때는 기겁하며 도망쳤으나, 출퇴근 길에 워낙 자주 마주치다 보니 친근감마저 느낀다. 양씨는 “먹을 게 없어서 사람이 많은 곳까지 나왔나 싶어 안쓰럽다”고 했다.
깊은 산속이나 수풀, 시골 논두렁에서나 사는 줄 알았던 야생 뱀이 요즘 서울을 비롯한 도시 한복판에 수시로 출몰하고 있다. 1일 소방청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전국에서 뱀 포획ㆍ구조를 위해 소방대원이 출동한 건수는 뱀의 동면이 끝나는 3월만 해도 106건에 그쳤으나, 4월 399건, 5월 1,616건, 6월 2,323건으로 매달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서울과 경기 지역도 예외는 아니어서 3월엔 각각 6건, 28건, 4월엔 16건, 88건, 5월엔 72건, 429건, 6월엔 97건, 591건으로 나란히 상승 그래프를 그렸다. 뱀이 활동하는 4~10월 포획 신고가 집중되는 패턴도 반복되고 있다.
뱀은 하천 주변뿐 아니라 고층 아파트 단지로도 진출했다. 경기 성남시 분당과 고양시 일산, 파주시처럼 공원이 많은 신도시 아파트 입주민 커뮤니티에는 뱀 목격담이 종종 올라온다. ‘뱀 조심’ 푯말을 붙여 놓은 곳도 적지 않다. 5월 서울 마포구 한 아파트에선 평소 뱀에 관심이 많던 어린이가 우연히 발견한 뱀이 독사라는 사실을 알아채고 119에 신고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도시 뱀 물림 사고도 극히 드물긴 하지만 아예 없진 않다. 얼마 전 인천 중구 한 아파트에선 강아지가 뱀에 물렸고, 배우 임강성씨는 산책 도중 살모사에 물려 입원까지 했다.
뱀의 잦은 출몰은 도시 생태계가 회복된 덕이다. 도시에도 녹지와 습지가 많아져 뱀이 서식하기에 좋은 환경이 만들어진 데다, 여름엔 뱀이 산란을 위해 이동하느라 사람과 마주치기 훨씬 쉽다는 것이다. 박창득 국립생태원 멸종위기종복원센터 전임연구원은 “뱀이 있다는 건 쥐, 개구리 같은 먹이가 많다는 뜻”이라며 “생태계 먹이사슬이 잘 이뤄져 있다는 방증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폭우와 폭염을 오가는 극단적 날씨도 영향을 미쳤다. 박 연구원은 “뱀은 변온동물이라 한여름 무더위에는 체온을 낮추기 위해 하천변과 풀숲, 바위 아래 같은 서늘한 그늘을 찾아다닌다”며 “사람도 뜨거운 햇볕을 피해 나무 그늘이나 강변으로 향하다 보니 서로 동선이 겹친다”고 설명했다. 이상돈 이화여대 환경공학과 교수도 “여름엔 사람들이 수변에 자주 나오기 때문에 음식물 쓰레기도 많아져 설치류가 늘어나고 이를 먹이로 삼는 뱀도 모여들 수 있다”면서 “집중호우로 상류에서 떠내려온 뱀도 적지 않을 것”이라고 짚었다.
뱀이 무섭다고 함부로 잡아선 안 된다. 유혈목이와 능구렁이, 누룩뱀, 살모사 등 자주 눈에 띄는 뱀은 야생생물 보호 및 관리에 관한 법률에 따라 포획이 금지돼 있다. 뱀을 발견하면 조용히 피해 가거나 소방당국에 신고하는 게 가장 좋다. 대다수 뱀은 독이 없지만 간혹 살모사처럼 독사도 있으니 조심할 필요가 있다. 이 교수는 “뱀이 사람을 더 무서워해 먼저 도망간다”며 “호기심에 막대기로 찌르는 등 사람이 건드리지만 않으면 먼저 공격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나아가 뱀이 서식할 수 있는 녹지가 점차 증가하는 만큼 장기적으로 생태보존지역을 조성하는 등 공존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조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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