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든이 트럼프 사령부 이전 계획 뒤집자
경제 효과 기회 놓친 지역 공화 의원 반발
보혁 갈등 사회쟁점이 초당적 영역에 영향
우주군과 임신중지(낙태). 언뜻 동떨어져 보이지만 현재 미국에서 함께 묶여 정쟁의 복판에 놓인 두 단어다. 우주군사령부 본부를 앨라배마주(州)로 옮기겠다는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결정을 조 바이든 대통령이 백지화하자 일부 공화당 의원이 임신중지 정책 반대에 대한 정치적 보복 아니냐고 반발하며 이런 특이한 조합이 만들어졌다.
바이든, 우주군사령부 이전 계획 백지화
지난달 31일(현지시간) AP통신에 따르면, 최근 바이든 대통령은 미 우주군사령부를 현 위치인 콜로라도주 스프링스에 유지하기로 결정했다. 지금 사령부를 옮기면 군사 준비 태세가 2030년대 중반까지 줄곧 뒤처진 상태로 남을 수 있다는 제임스 디킨슨 우주사령관의 우려를 바이든 대통령이 수용한 결과라는 게 행정부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우주군은 트럼프 행정부가 2019년 육군, 해군, 공군, 해병대, 해안경비대에 이어 창설한 6번째 군이다. 위성 방어 등 해발 100㎞ 이상에서의 미군 작전을 담당한다. 일단 콜로라도 스프링스에 임시로 사령부를 뒀다가 트럼프 전 대통령이 퇴임 직전 부랴부랴 앨라배마 헌츠빌로 위치를 이전하겠다고 발표했다.
문제는 바이든 대통령의 번복으로 콜로라도와 앨라배마의 희비가 엇갈렸다는 사실이다. 앨라배마로서는 1,400개의 일자리와 10억 달러(약 1조3,000억 원)의 경제적 이익을 창출할 수 있는 기회가 날아간 셈이다. 콜로라도는 민주당, 앨라배마는 공화당 성향이 강한 주다.
공화당은 발끈했다. 이번 결정이 “정치적 조치”라며 임신중지 정책에 대한 양당의 입장 차이를 배경으로 지목했다. 최근 ‘군인 임신중지 지원 정책’ 중단을 요구하고 나선 공화당과 민주당 정부 간 대립이 격화하자 바이든 대통령이 이에 불만을 품고 이전 방침을 뒤집었다는 것이다. 이날 하원 군사위원장인 마이크 로저스 의원(앨라배마·공화당)은 “국가 안보 관련 결정이 ‘극좌 정치’에 의해 좌우됐다”고 비난했다.
국방 분야까지 번진 미국 ‘문화 전쟁’
요즘 국방 분야에서 양당 간 마찰이 첨예한 쟁점은 ‘여군 임신중지’다. 6주 이내이면 임신중지권을 보장한 ‘로 앤 웨이드’ 판결이 지난해 미 연방대법원에서 49년 만에 뒤집히자 올해 2월 국방부가 “임신중지가 제한된 주에 거주하는 여성 군인이 낙태 시술을 받기 위해 다른 주로 이동할 때는 경비를 지급하고 휴가를 주겠다”는 지침을 밝혔고, 이게 공화당의 표적이 됐다.
우주군 기지 이전 부지였던 앨라배마가 지역구인 토미 튜버빌 공화당 의원은 이 정책에 공개적으로 반대하는 대표적 인사다. 상원 군사위 소속인 튜버빌 의원은 군 인사안에 대한 의회 인준 권한을 무기 삼아 ‘국방부가 세금 사용을 제한하는 연방법을 위반하고 있다’며 정책 폐기를 요구했고, 이로 인해 3월 이후 미군 고위 장교 280명 이상이 임명 절차를 밟지 못했다. 해병대 사령관 자리가 164년 만에 공석이 되는 ‘안보 공백’ 사태까지 벌어졌다.
지난달 14일에는 공화당이 다수인 하원이 이듬해 국방 예산과 정책을 결정하는 국방수권법안에 ‘원정 낙태 시술을 받는 군인에게 비용을 지원하는 정책을 중단한다’는 조항을 추가하며 안보 분야의 임신중지 갈등은 더 심해졌다. 미 워싱턴포스트는 “보수 가치 수호를 앞세운 공화당의 ‘문화 전쟁’이 초당적 영역인 국방·안보 분야까지 확장됐다”고 분석했다.
“이번 결정은 임신중지 정책과 무관하다”는 게 행정부 입장이다. 바이든 대통령 의중도 알 수 없다. 다만 정황상 연관성을 완전히 지우기는 어렵다. ”백악관이 앨라배마의 강력한 낙태금지법 등을 이유로 기지 이전 계획 이행을 지연시키고 있다”는 정부 관계자의 발언을 인용한 5월 미 NBC방송 보도 내용 등이 공화당이 내세우는 근거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