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친환경 정책 반대 정당 약진
미국서도 기후 예산 축소 움직임
“유럽의 애국자들이여, 기후 광신주의에 저항합시다!”
최고 기온이 40도까지 치솟은 가운데 치러진 지난달 스페인 총선을 앞두고 극우 정당 복스(Vox)의 지지 연설에 나선 조르자 멜로니 이탈리아 총리는 이렇게 호소했다. 멜로니 총리가 이끄는 이탈리아 형제당과 복스는 우파 동맹이다. 그는 올해 5월 이탈리아 북부 에밀리아로마냐주에서 일어난 100년 만의 ‘최악의 홍수’를 두고도 “국가의 안전은 이데올로기적 생태주의자들이 미루거나 막아설 수 없다”고 말했다. 기상재해의 책임을 친환경 정책에 돌린 것이다.
올여름 이상기후 현상이 속출하자 이에 대한 백래시(반발)도 선명해졌다. 각국에서 기후 위기 대응을 거부하는 ‘그린래시(Greenlash·녹색정책에 대한 반발 행동)’가 거세지고 있다.
“기후 위기는 과장” 주장하는 정당 세몰이
미국 워싱턴포스트(WP)는 지난달 31일(현지시간) 유럽 곳곳에서 친환경 정책에 반기를 드는 정당들이 약진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네덜란드에선 '농민의 이익'을 앞세운 신생 정당인 ‘농민-시민운동당(BBB)’이 올해 3월 총선에서 돌풍을 일으켜 상원 제1당이 됐다. 질소 배출 감축을 위해 2030년까지 가축을 3분의 1가량 줄이라는 정부의 정책에 반대하는 유권자들이 몰표를 줬다. “정부의 기후 위기론은 과장”이라고 주장하는 BBB는 최근 정당 지지율 여론조사에서도 꾸준히 1위를 유지하고 있다.
극우 정당 '독일을 위한 대안'(AfD)의 급부상도 같은 맥락이다. 독일 가구 절반이 석유·가스 난방에 의존하는 상황에서 재생에너지 난방 의무화를 밀어붙인 정부에 대한 반감이 AfD 지지로 이어졌다. 영국 가디언은 “유럽의 극우 정당을 뭉치게 하는 전선이 '반(反)이민'에서 '기후 위기' 등으로 넓어지고 있다”고 짚었다.
유럽의 지도자들은 기후 위기 대응에서 슬그머니 발을 빼는 모양새다. 리시 수낵 영국 총리는 이날 기업 100곳에 북해 석유·가스 시추를 허용하면서 논란의 중심에 섰다. 영국 환경단체는 이 사업으로 자동차 1,400만 대 수준의 탄소가 배출된다고 본다. 수낵 총리는 “탄소 순 배출량을 제로(0)로 만들더라도 영국 에너지 수요의 25%는 석유와 가스에서 나올 것”이라고 항변했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아예 유럽연합(EU)의 환경 규제에 대한 ‘일시 중지’를 촉구하기도 했다. 유럽의 산업 경쟁력을 떨어뜨리고, 중국과 미국에 유리하게 작용한다는 주장이었다.
미국도 예외는 아니다. 정부 회계연도 마감일(9월 30일)을 앞두고 기후 대응 지출을 둘러싼 예산 전쟁이 한창이다. 최근 공화당 소속 테드 크루즈 상원 의원은 내년 예산안에서 재생에너지 인프라 설치 비용, 전기차 보조금, 녹색기후기금(GCF) 등 기후 변화와 관련된 항목을 제외해야 한다고 의원들을 설득하기 시작했다고 미국 폭스뉴스는 전했다.
“그린래시, 기후 행동이 현실이라는 방증”
그린래시를 바라보는 시각은 엇갈린다. 친환경 정책을 도입하면 누군가는 손해를 입는다. 화석연료 기반 산업, 농업 분야 등에서 노동자가 일자리를 잃는 등 경제적 타격이 발생한다. 이에 그린래시를 생존과 성장을 위한 불가피한 선택으로 보는 시선이 있다.
국제사회도 '기후'와 '경제' 사이에서 분열하고 있다. 지난달 인도에서 연이어 열린 주요 20개국(G20) 에너지 장관 회의와 환경·기후 장관 회의에서는 화석연료 감축에 대한 합의 도출에 실패했다. 산유국인 사우디아라비아·러시아와 서방이 주도하는 기후대응에 반감을 가진 중국 등의 반대가 발목을 잡았다. 나탈리 토치 이탈리아 국제문제연구소장은 “공개적으로 기후 위기를 부인하는 대신 경제·산업에 끼치는 악영향을 지적하는 방식으로 (그린래시가) 바뀌고 있다”며 “이를 고리로 한 정치적 반발이 기후 위기 대응에서 유럽을 탈선시킬 수 있다”고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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