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과 악'에 대한 심도 있는 질문 던지는 영화
스피디한 전개와 감각적인 연출이 압권
이병헌의 존재감, 배우들의 폭발적 시너지
폐허가 된 세상에 단 한 채의 아파트만 남고, 절체절명의 상황이 닥친다면 당신은 어떤 선택을 하겠는가. '콘크리트 유토피아'는 재난의 상황 속 다양한 인간군상과 집단 이기주의의 불편한 진실을 파헤치는 영화다.
이 작품은 대지진으로 폐허가 되어 버린 서울, 유일하게 남은 황궁 아파트 103동으로 생존자들이 모여들며 시작되는 이야기를 그린다. 김숭늉 작가의 인기 웹툰 '유쾌한 왕따'의 2부 '유쾌한 이웃'을 원작으로 했다. 단편영화 '숲'으로 제11회 미쟝센단편영화제에서 대상을 수상하고 '가려진 시간'으로 제54회 대종상영화제 신인감독상을 수상했던 엄태화 감독은 이번 작품을 통해 진일보한 연출력을 과시한다.
'콘크리트 유토피아'는 130분의 짧지 않은 러닝타임이지만 끝나는 게 아쉬울 정도로 높은 몰입도를 자랑한다. 무엇보다 비현실적인 상황을 사실적으로 구현해낸 제작진의 노력이 박수 받을 만하다. 실제 아파트 3층에 달하는 세트를 직접 지었고, 대지진으로 폐허가 된 서울과 극한의 추위를 효과적으로 표현했다. 또한 적절한 조명 활용을 통해 서늘한 분위기를 연출하면서 극 전체의 톤을 영리하게 잡아나갔다. 정교한 분장과 재해로 발생한 먼지까지 살린 디테일함도 실로 놀랍다. "레퍼런스로 피카소의 게르니카를 스태프들에게 공유했다"는 엄 감독의 귀띔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폭염에 한겨울 옷을 입고 촬영하며 육체적으로 고단한 시간을 보낸 배우들의 연기도 압권이다. 이병헌은 외부인들로부터 아파트를 지키기 위해 어떤 위험도 마다하지 않는 새로운 주민 대표 영탁 역을 맡았다. 매 작품마다 기대 이상의 연기를 보여줬던 이병헌은 '콘크리트 유토피아'에서도 단단히 극의 중심을 잡으며 대체불가 연기력을 과시한다.
아파트와 가족을 지키기 위해 헌신하는 민성 역의 박서준과 그의 아내 명화를 연기한 박보영의 세밀한 캐릭터 묘사도 훌륭하다. 박서준은 보편적인 인간의 감정을 따라가며 관객과 공감대를 형성하고 화장기 없는 얼굴의 박보영 역시 깊어진 연기력을 뽐낸다. 두 사람은 훈훈한 가족의 모습은 물론, 다양한 선택지를 마주하며 펼쳐지는 위태로운 순간까지 현실적으로 담아낸다.
문제 해결을 위해 발 벗고 나서는 황궁 아파트 부녀회장 금애 역을 맡은 김선영은 늘 그렇듯 제몫을 다해내며 극에 재미를 더했다. 박지후와 김도윤도 새로운 얼굴을 보여주며 매력적인 캐릭터를 만들어냈다. 이 밖에도 '콘크리트 유토피아' 속 수많은 조단역 배우들이 열연을 펼쳐 배우들의 시너지가 돋보이는 영화로 완성됐다.
'콘크리트 유토피아'는 이병헌의 말처럼 '극단적으로 선이거나 악인 캐릭터'가 아니라 상식적인 선 안에서 선과 악이 존재하는 사람들이 모였다는 점이 흥미롭다. 보통의 인간이 극단적 상황을 마주했을 때 보이는 인간성을 현실적으로 그려 영화가 끝난 뒤에도 긴 여운을 남긴다. 관객이 스스로 질문하게 만드는 작품이란 점에서도 의미가 남다르다. 자랑스러운 K-콘텐츠의 새로운 탄생임에 틀림없다. 내달 9일 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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