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주 법천사지 지광국사탑’ 보존처리 후 이송 결정
일제 때 농민이 매각, 조선 총독이 박람회 용도 반입
고려시대 국사(國師) 해린(海麟, 984~1070)의 사리와 유골이 봉안된 승탑으로, 승탑으로서는 보기 드문 구조와 화려하고 개성 있는 조각이 돋보이는 ‘원주 법천사지 지광국사탑(이하 지광국사탑)’이 112년 만에 제자리로 돌아온다.
문화재청은 국립문화재연구원 문화재보존과학센터가 지난 2016년부터 5년여 보존처리를 마친 국보 ‘지광국사탑’ 부재들을 8월 1일 원래의 위치인 강원 원주시로 이송한다고 밝혔다. 문화재청과 원주시는 10일 원주시 법천사지 유적전시관에서 지광국사탑 귀향식을 개최할 예정이다.
지광국사탑은 화려하고 독특한 형태로 국가유산(문화재)으로서 가치가 큰 것으로 평가된다. 국립문화재연구원 문화재보존과학센터에 따르면 보전된 국내 승탑 대부분이 팔각원당형이다. 하지만 높이 약 5.4미터, 중량 24톤인 지광국사탑은 사각 전각구조인 게 특이하다. 또 탑신의 꽃, 해, 달 모양 무늬 등 우리나라 승탑 가운데 조각이 가장 화려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사각은 통일신라기 이후 고려시대 승탑의 특징이다. 탑비에 승탑의 주인이 명확히 나타난 점도 문화재로서 가치를 높인다.
지광국사탑이 112년 만에 제자리로 돌아가는 사연도 구구절절하다. 국립문화재연구원에 따르면 지광국사탑은 1911년 가을쯤 법천사 인근의 한 농민이 일본인 골동품 매매상에 팔아넘기면서 1912년 일본 오사카 후지타 덴자부로 남작 집안으로 넘어갔다. 하지만 같은 해 가을 조선 총독이었던 데라우치 마사다케(1852-1919)가 1915년 조선총독부가 있던 경복궁 앞에서 박람회를 열기 위해 국내로 들여왔다.
이후 지광국사탑은 경복궁 내 근정문 근처에 있다가 1930년대에 해체된 모습이 사진으로 확인됐고, 1950년 6·25 전쟁 때 포탄까지 맞은 지광국사탑 부재는 1957년 국립박물관 수리를 거쳐 복원됐다. 하지만 이후 정기조사에서 문제가 확인돼 2016년 다시 해체된 뒤 대전 국립문화재연구원 문화재보존과학센터에서 2020년까지 보존처리 됐다. 이태종 국립문화재연구원 문화재보존과학센터 학예연구사는 “옥개석(석탑 위를 덮는 돌)의 절반이 완전 분실돼 있었는데, 새로운 돌을 찾아서 복원하는 작업을 거쳤다”며 “화려한 조각이 많아 복원 작업이 만만치 않았다”고 말했다.
이후 문화재청은 지난 6월 원주 법천사지 유적전시관을 지광국사탑 부재의 임시 보관처로 지정했으며, 총 33개 부재 중 지속적인 점검이 필요한 옥개석과 탑신석을 제외한 31개 부재를 이송하기로 결정했다. 지광국사탑 부재는 복원 위치가 확정될 때까지 기획전시 공간에 상설 전시할 예정이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