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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집사'의 베란다를 망친 건, 요동치는 아파트값?

입력
2023.08.02 04:30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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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민실 '홈 가드닝 블루'(백조 2023 여름호)

편집자주

단편소설은 한국 문학의 최전선입니다. 하지만 책으로 묶여나오기 전까지 널리 읽히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한국일보는 '이 단편소설 아시나요?(이단아)' 코너를 통해 흥미로운 단편소설을 소개해드립니다.

고민실 작가. 고민실 작가 제공

"에코프로 샀어?" 코스닥시장 2차전지주 에코프로의 롤러코스터 행보가 최근 각종 모임에서 최고 얘깃거리다. 큰돈을 벌었다는 소문을 들으면, 주식 투자를 안 하는 사람까지도 괜히 손해 본 기분이 든다. 기시감이 느껴진다. 비트코인이나 부동산 시장이 활황일 때도 그랬다. '나만 뒤처지는 건 아닌가'하는 불안감이 퍼져 나간다. 내 중심을 잡기란 참 어렵다.

계간 문예지 '백조'(2023 여름호)에 실린 고민실 작가의 '홈 가드닝 블루'는 그런 우리네 모습을 핍진하게 펼쳐냈다. 소설은 부동산 폭등 시기에 빌라 전세를 사는 부부가 아파트 자가 구입을 목표로 삼으면서 일상에 균열이 생기는 과정을, 집에서 식물을 기르는 취미인 '홈 가드닝'을 소재로 그려냈다. 빌라와 아파트, 전세와 자가, 수도권과 지방 등으로 나뉘는 미묘한 부동산 계급의식이 자리 잡은 우리 사회를 파고들며 작가는 '집'의 의미에 질문을 던진다.

신혼부부인 '리안'과 '지훈'은 반려식물이란 공통분모 덕분에 결혼까지 골인했다. 낯을 꽤 가리는 성격인 리안은 프리랜서 일러스트레이터로 집에서 일했다.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길다 보니 언제부턴가 빛과 초목이 그리워 로즈메리 화분을 하나 들였는데, 그 화분을 기르는 데 애를 먹고 있을 때 '반려식물'에 관심이 있던 지훈을 만나게 된 것. 둘의 신혼집에는 자연스레 많은 식물들이 자리를 차지했다. 채광도 좋지 않고 베란다도 없었던 첫 전셋집과 달리 두 번째 집은 식물을 키우기 딱 좋았다. 작은 온실처럼 꾸민 베란다. 겨울이면 옮겨진 반려식물들로 채워지는 거실. 리안은 그 집에서 "더 바랄 게 없는 생활"을 했다.

게티이미지뱅크

균열이 생긴 건 지훈이 아파트 매수를 결심하면서다. 결혼하는 아들에게 아파트를 사준 백부가 전세로 빌라에 사는 자신을 은근히 무시하는 말에 상처를 받은 게 발단이 됐다. 아파트값이 치솟는 상황에 자가를 소유한 친구들의 대화에 끼기가 민망했던 일도 자극이 됐다. 처음엔 무리라고 생각했던 리안도 빌라 주민들과의 껄끄러운 사건을 계기로 남편의 심정을 이해하게 된다. 그렇게 둘은 자가 마련을 위한 자금을 모으려 더 열심히 일한다.

하지만 그럴수록 집은 황폐해졌다. 야근이 잦은 지훈과 외주 작업을 늘린 리안 사이에 대화는 사라지고 싸움은 잦아진다. 주인의 관심을 받지 못한 반려식물들은 하나둘씩 '초록별로 떠난다.'(반려식물의 죽음을 뜻하는 표현) 그리고 그 자리엔 날벌레만 날아다닌다. 최선을 다한다는 게 절대 선은 아니란 걸 생각해보게 하는 대목이다. 어떤 여력도 남기지 않고 일에 몰두한다는 건 삶의 균형이 깨진다는 의미기도 하다는 걸 작가는 두 인물을 통해 보여준다.

식물을 가꾼다는 건 살아있음을 강렬하게 감각하는 일이다. 소설 속 식물의 죽음은 목표를 향해 달리던 인물들이 놓친 수많은 '지금'의 총합이다. 그래서 더 안타깝다. 부동산 시장이 안정화되면 그들은 과연 소중한 현재를 충분히 느끼며 일상을 누릴 수 있을까.

진달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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