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브로드웨이 뮤지컬 'K팝' 작곡가 헬렌 박
76회 토니상 작곡상 후보 이어 토니상 후보 추천위원 지명
"브로드웨이 변화 상징된 것 같아 책임감 느껴"
카세트테이프로 듣던 룰라의 '3!4!'와 H.O.T.의 '캔디'를 좋아했던 소녀는 중학교 3학년 때 캐나다로 유학을 떠난 후에도 꾸준히 'K팝 열병'을 앓았다. 한국 대중가요는 언제 어디서든 고향을 상기시켜 주고 위안을 주는 좋은 친구였다. 그리고 "희로애락의 감정을 고조시키고 기억하기 쉬운 멜로디를 지닌" K팝을 향한 그의 열정은 브로드웨이 뮤지컬로 승화됐다.
운명처럼 브로드웨이 첫 번째 아시아 여성 작곡가가 된 뮤지컬 'K팝'의 헬렌 박(37·한국명 박현정)에게 지난 7개월은 롤러코스터 같은 시간이었다. 8년간 공들인 뮤지컬 'K팝'이 2017년 오프브로드웨이 공연을 거쳐 지난해 11월 마침내 브로드웨이에 입성했지만 개막 2주 만에 막을 내렸기 때문. 그러나 'K팝'은 지난 6월 11일 열린 제76회 토니상에서 3개(작곡·안무·의상) 부문 후보에 오르며 작품성을 인정받았다. 맥스 버논과 공동으로 작곡상 후보에 올랐던 헬렌 박은 60인으로 구성된 3년 임기의 토니상 후보 추천위원회 위원으로도 새롭게 이름을 올렸다.
지난달 21일 뉴욕 브로드웨이 극장가의 한 레스토랑에서 만난 헬렌 박은 "작년만 해도 뮤지컬 'K팝'을 잘 만들고 싶다는 생각뿐이었는데 지금은 브로드웨이 변화의 상징으로 나를 바라보는 사람이 많아 책임감을 느낀다"고 했다. "'K팝'처럼 일찍 막을 내린 연극 '앤트 노 모(Ain't No Mo)'의 극작가 조던 쿠퍼도 이번에 저와 함께 토니상 후보 추천위원이 됐는데 브로드웨이 역사상 가장 젊은 극작가예요. 브로드웨이가 변해야 하고 우리가 그 변화의 한 부분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방증이겠죠."
헬렌 박은 토니상 작곡상 후보 지명 소식이 처음 알려진 지난 5월 초 뉴욕타임스가 곧장 그의 인터뷰 기사를 실은 것도 같은 의미로 받아들이고 있다. 그는 "코로나19 팬데믹 이후로 새로운 이야기와 새로운 노래로 만든 뮤지컬을 브로드웨이 무대에 올리는 것 자체가 어려워졌다"며 "저 개인에 대한 관심보다 독창적 작품이 더 나올 수 있는 환경이 돼야 한다는 의미일 것"이라고 말했다.
팬데믹을 겪은 후 브로드웨이는 브랜드 평판이 높은 작품만 살아남는 혹독한 환경이 됐다. 스타 배우 없는 신작의 생존은 더욱 어려워졌다. 헬렌 박은 "'K팝'은 기존 뮤지컬을 바라보던 잣대로 새로운 쇼를 판단해도 될 것인가에 대해 질문을 던진 작품"이라고 말했다. "전통적 뮤지컬보다 사랑 노래가 많다고들 하는데 K팝에서 사랑은 단순한 남녀관계 묘사가 아닌 개인의 성장 서사 등 은유적 표현인 경우가 많아요. 뮤지컬 'K팝'의 '하프웨이'(중간 지점)라는 곡은 붙잡아도 잡히지 않는 사랑을 노래하지만 어느 곳에도 속하지 못하는 아시안 혼혈 캐릭터(브래드)의 정체성에 대한 노래죠." 그는 고집스럽게 대사와 가사에 자막 없이 한국어를 섞어 쓴 데 대해서도 "모두 영어로 된 노래는 K팝이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K팝의 정통성을 지키고 싶었다"고 말했다.
인종적으로 백인에 편중된 브로드웨이는 최근 다양성 강화 움직임이 일고 있다. 헬렌 박은 일부 극 중 캐릭터를 소수인종으로 설정하는 수준을 넘어 진솔한 경험을 풀어낼 수 있는 자신과 같은 소수인종 극작가나 작곡가가 더 많이 나와야 한다고 강조했다.
"내 고향의 일부를 브로드웨이 무대와 공유할 수 있게 된 것은 꿈의 실현이자, 결코 당연하게 받아들여서는 안 될 거칠게 상상만 했던 목소리를 세상에 영원히 각인시키게 된 선물이다."
소니뮤직에서 발매된 뮤지컬 'K팝' 브로드웨이 캐스팅 앨범에 그는 이렇게 적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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