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간 국공립 저연차 교사 589명 퇴직
사명감 컸지만 현실은 '무력한 교권'
교사 신규채용 감소, 업무는 가중
초등 보직교사 18.2%가 10년 차 미만
이주호·조희연은 저연차 교사 달래기
589명. 지난해 3월부터 올해 4월까지 전국 국공립 초중고교에서 퇴직한 근속 5년 미만 교사의 수다. 권은희 국민의힘 의원이 교육부와 시도교육청에서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비교 기간에 차이는 있지만 2017학년(2017년 3월~2018년 2월)부터 2021학년(2021년 3월~2022년 2월)까지는 근속 5년 미만 퇴직 교사가 500명을 넘은 적이 없었다. 최근 서울 서초구 서이초등학교에서 2년 차 교사가 교내에서 극단적 선택을 한 사건까지 맞물려, 우리 교단 미래의 동요가 감지되는 대목이다.
젊은 교사들이 왜 학교를 떠날까. 27일 한국일보 취재에 응한 교사들은 그 원인으로 교직에 대한 사명감이 투철한 시기에 '무력한 교권'이란 현실을 마주하며 느끼는 실망과 환멸을 첫손에 꼽았다. 교사 채용이 갈수록 줄면서 '만년 후배'로 행정업무 부담이 늘고, 선배들이 기피하는 학년이나 보직을 자주 떠맡는 상황도 문제다. '20년간 보직 수당 동결, 담임 수당 2만 원 인상'으로 상징되는 낮은 보상은 저연차 교사 퇴직을 부추기는 또 다른 이유로 지적된다.
"내가 바라던 교직은 이게 아닌데..."
6년 차 초등학교 교사 박모씨는 "신규 교사라면 담임이나 수업 같은 기본 업무만으로도 벅찰 텐데 그 밖에 해야 할 업무가 너무 많다"며 "학부모 민원을 처리하고 행정 업무까지 하다 보면 이게 교사의 일인가 싶고 동기 부여가 안 되니 스트레스가 커진다"고 말했다. 교사 역할에 대해 가졌던 기대와 학교 현장에서 마주한 현실의 격차가 신임 교사들을 괴롭힌다는 것이다.
학생에게 맞아도 대응 방법이 뚜렷하게 없는 교권의 현실은 이들에게 무력감을 넘어 분노까지 불어넣는다.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 2030 청년위원회 교사들은 27일 국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이제 학생들을 어떻게 가르쳐야 할지 막막하고, 학부모를 어떻게 대해야 할지 무섭다"며 "생존권을 위협받는 교실에서 어떤 교사가 소신을 갖고 학생을 지도하겠는가"라고 대책을 촉구했다.
"운동부도 맡고 담임도 맡으라니…"
학령인구 감소와 맞물린 교사 채용 축소는 기존 교사의 업무 부담으로 돌아온다. 한국교육개발원 교육통계에 따르면, 2012년 초등교사 임용시험 합격자는 6,669명이었으나 지난해 합격자 수는 3,565명으로 10년 새 반토막이 났다. 이렇다 보니 경험 많은 고연차 교사가 주로 맡았던 보직을 저연차 교사가 맡는 경우도 늘어나고 있다. 같은 기간 초등학교 보직교사 중 10년 차 미만 교사의 비율은 13.1%에서 18.2%로 늘었고, 중학교(2.1%→8.8%)와 고등학교(7.6%→13.8%)도 마찬가지다.
7년 차 중학교 체육교사 A씨는 "정년에 가까워지면 부장도 안 하고 담임도 맡지 않아도 학교가 배려해주는 경우가 많다"며 "그러다 보니 젊은 교사들의 업무 부담이 늘어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A씨에 따르면 체육교사가 운동부를 담당하면 담임 업무는 빼주는 게 관례였는데, 최근에는 젊은 교사에게 운동부와 담임을 동시에 맡기는 일이 생기고 있다고 한다.
숨진 서이초 교사도 생전 일기에 "업무 폭탄"을 거론하며 고충을 토로했다. 그는 저연차에겐 부담스러운 학년으로 여겨지는 1학년 담임을 부임 첫해부터 2년 연속 배정받았고, 지난달 시스템 개편 이후 장애를 일으켜 학교 행정업무 처리에 지장을 줬던 나이스(교육행정정보시스템) 관련 업무도 담당했다.
교사 처우는 제자리걸음
젊은 교사들 사이에선 업무에 상응하는 보상이 주어지지 않는다는 불만이 적지 않다. 교사노동조합연맹이 올해 스승의날에 발표한 조합원 1만1,377명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부장교사를 희망하지 않는다는 응답은 91.3%에 달했고, 그 이유로 '과도한 업무에 비해 보직 수당이 낮다'(39.2%)는 점을 가장 많이 꼽았다. 실제 보직교사 수당은 월 7만 원으로 20년간 동결돼 왔다. 담임교사 수당 역시 2016년 2만 원 인상된 후 13만 원으로 동결돼 왔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은 25일 열린 4차 공무원보수위원회에서 교사들이 적용받는 6급 이하 임금 인상률이 3.1%로 결정되자 이날 기자회견을 열어 반발했다. 전교조는 "자발적으로 퇴사하는 젊은 교사가 해마다 늘어나는 이유는 다른 데 있지 않다"며 20년째 동결 중인 각종 수당의 현실화를 재차 요구했다.
저연차 교사들의 불만이 서이초 사건을 계기로 분출할 조짐을 보이자 교육당국은 달래기에 나섰다. 이주호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전날 국회에서 '교권보호 및 회복을 위한 당정협의회'를 가진 후 브리핑에서 "새내기 교사들에게 업무가 과중하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며 개선안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조희연 서울시교육감도 이날 3년 차 이하 초등교사 10여 명과 간담회를 갖고 "코로나 위기 속에서 임용돼 교실을 운영하며 겪었을 고충이 남달랐을 것"이라며 "다각도로 의견을 경청하겠다"고 약속했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